[쏘Young의 쏘Diverse] 유엔장애인권리협약 11조와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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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통역의 좋은 예, 유엔웹티비에서는 발화자와 비슷한 배율로 수어통역사 화면을 배치하고 있다
유엔웹티비에서는 발화자와 비슷한 배율로 수어통역사 화면 배치(출처_유엔웹티비)
  • UN CRPD와 사회이슈 ①
  • 장애인 재난 대응 체계 마련은 포괄적이고 장애 특화된 관점의 이중트랙(twin-track)으로 접근해야
김소영
김소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김소영 집필위원] 코로나19로 세계 곳곳이 시끄럽다. 계속 증가하는 국내 확진자 소식과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에 대한 우려, 그리고 방역에 실패한 이웃 국가들을 지켜보는 우리국민들의 불안감도 날로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매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국민에게 알리고 있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과 공공시설에서도 세계 다양한 언어로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대응 방안이 안내방송, 동영상 등을 통해 수시로 전파를 타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가 「한국수화언어법」을 통해 대한민국 공용어로 지정한 한국수어 안내는 TV 화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장애계가 나서 비판 기자회견을 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하고 나서야 정례브리핑 현장에 수어통역사가 배치되었다.

장애인단체 기자회견 이후 코로나 19 정례브리핑에 수어통역 배치, 그러나 유엔웹티비에 비해 통역 화면이 작다(캡처_KBS뉴스)

2019년 4월 강원도 고성을 덮친 화마에도 대피요령과 장소, 피해 상황 등이 실시간으로 TV나 라디오를 통해 전달되었지만 정작 농인들은 정보제공의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이렇듯 재난위기 상황 시 적절한 대응 조치의 대상에서 장애인은 항상 배제되어 왔다. 최근 중국에서는 코로나19 환자로 의심되는 아버지가 격리되자, 뇌병변장애인인 아들이 수일간 방치된 채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국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유행할 당시 확진자와의 접촉 우려로 자가 격리 통보를 받은 뇌병변장애인 A씨뿐 아니라 자가 격리 대상자도 아닌 지체장애인 B씨도 감염 우려 때문에 활동지원 인력이 연결되지 않았다. 이번 코로나 19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확진자와 같은 예배를 드렸던 C씨는 그야말로 활동가들의 도움을 통해 ‘자가 격리’를 택해야 했다. 정부 지원은 고작 마스크와 손소독제 정도였다.

전쟁 및 무력 충돌, 감염병 등 위험상황은 예고 없이 닥치고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낸다. 이러한 상황에 항상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취약’하다. 아니,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장애인은 언제나 위급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대응책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위급상황에 ‘방치’되기 때문이다.

비단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상황은 비슷하다. 재난대응에 뛰어나다는 일본에서도 2011년 관동 대지진 당시 장애인의 사망률이 두 배 가까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대응방안 수립은 물론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인을 규명하는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위와 같은 상황을 인정하여,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CRPD) 제11조(위험상황과 인도적 차원의 긴급사태)는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을 포함한 국제법적 의무에 따라 무력충돌, 인도적 차원의 긴급사태 및 자연재해의 발생을 포함하는 위험상황의 발생 시 장애인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CRPD위원회)는 2014년 최종견해를 통해 우리나라에 △장애의 특성을 고려하여 장애인들의 보호 및 안전을 보장하고 △재난위험 감소정책 및 그 이행의 모든 단계와 단위에서 보편적인 접근성 및 장애포괄성이 더욱 보장될 수 있도록 포괄적인 계획을 채택, 시행할 것을 권고하였다.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 이상 기후 변화 등으로 재난 안전은 장애 분야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동 대응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이슈다.

2015년에는 제3차 세계재난위험경감총회가 열렸다. 이 총회에서는 10년을 주기로 국제재난경감을 위한 국제행동계획을 수립하는데, 당시 총회에서 수립한 ‘센다이 강령’에는 △장애인이 위기 상황 대응에 취약한 상황에 놓인 점을 인정하고 △이를 대응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 때 유엔에스캅과 일본장애인재활협회는 ‘장애포괄적인 재난위험감소에 관한 아시아·태평양회의’를 공동주최하였는데, 차후 장애인의 재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실행 계획을 제시하는 센다이 선언문도 채택하였다.

CRPD위원회의 2014년 최종견해 이후, 국내에서도 2017년에 장애인재난대응매뉴얼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도 장애인, 노인, 아동을 재난약자로 규정하고, 재난약자에 대한 정책을 별도로 수립해야 한다는 조항을 새롭게 추가하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 졌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상황만 보더라도 재난정보가 수어로 제공되지 않았고, 혼자 이동이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경우 의심 증상 발현 시 대응 방침, 격리 시 활동지원사 지원 여부 등에 대해 선제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함에도, 장애인에 대한 특별한 대책은 전무하였다. 장애인 재난 전담 대응 팀 설치, 포괄적인 매뉴얼 마련 및 관계자 훈련, 보급, BF인증제도에 장애인 재난 대피 시설 기준 마련 등을 통한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물론 재난 상황은 결코 장애인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재난 시 특화된 지원 체계가 필요한 이유는 장애인은 누구보다 취약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재난 대응 체계 마련은 이렇게 포괄적이고 장애 특화된 관점의 이중트랙(twin-track)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이 안전한 세상은 우리 모두가 안전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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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냥치별
4 years ago

유엔에서도 장애인 재난 관련한 대응책이 모색되고 있군요. 잘 접할 수 없는 정보여서 유익하게 잘 봤습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글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열렬 애독자가 되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