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우정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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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터처블의 한 장면으로 드리스가 필립의 휠체어를 밀면서 달리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https://www.youtube.com/watch?v=rnaHjvr6CHg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최상류층 완벽한 남자의 우정(?)

최상류층 완벽한 남자의 우정…? 쓰고 보니 꽤 낯설고도 우스운 소제목이 돼 버렸다. 흥행한 우리나라 드라마들을 가져다가 패러디한 중국 드라마의 제목이 ‘별에서 온 상속자들’이었다는데 슬쩍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중국 드라마의 제목만으로도 대충 우리나라의 어떤 드라마들을 패러디해 그런 제목을 달았는지 바로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최상류층 완벽한 남자의 우정’이란 이 소제목에도 어떤 영화들이 들어 있는지 쉽게 연상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Untouchable, 2011)’과 ‘업사이드(The Upside, 2017)’, 그리고 ‘퍼펙트맨(Man of Men, 2019)’. 이 세 편의 영화 제목을 대충 섞어 버무리니 이런 소제목이 탄생했다.

‘언터쳐블 1%의 우정’은 전신 마비 장애가 있는 상위 1% 백만장자 필립(프랑수아 클루제)과 하위 1% 무일푼 백수 드리스(오마 사이)의 우정을 다룬 프랑스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를 다시 미국판으로 리메이크한 것이 영화 ‘업사이드’이고 이것의 한국판이 바로 ‘퍼펙트맨’으로 설경구와 조진웅이 주연을 맡았다. 물론 ‘퍼펙트맨’의 제작사 측은 리메이크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언터쳐블 1%의 우정’이나 ‘업사이드’와 전혀 무관한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언터쳐블 1%의 우정’은 역대 프랑스 영화 중 흥행 2위, 역대 박스 오피스 3위를 기록했고, 개봉 후 전 세계 흥행 수익은 모두 4억 2650만 달러로 이는 미국 영화를 제외한 외국 영화 중 세계 흥행 1위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런 흥행이 ‘업사이드’란 미국판 리메이크작의 자양분이 됐으며 ‘업사이드’ 역시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다. 나이와 인종, 장애나 계층 간 차이를 뛰어넘는 두 남자의 우정에 많은 관객이 따뜻한 감동을 받았다, 인생 영화다, 재미있다… 등의 호평과 찬사를 보태며 여전히 감동 실화로 많은 사람에게 손꼽히는 영화들이다.

그런데 나는 왜 불편한가?

학창 시절에 내 친구들은 다 천사였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모두 그렇게 여겼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나를 업어주던 친구나 내 가방을 들던 친구에게 만나는 어른마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그렇게 말하곤 했다. “아이구, 참 착하구나”…

그런 찬사와 함께 어김없이 내게 이런 말도 덧붙였다.
“네가 친구들한테 참 잘해야겠다!”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가끔 친구들 숙제도 내가 해주고 그림 그리기, 글짓기 숙제 거의 다 내가 해주는데, 내가 쓰던 학용품도 다 나눠 쓰는데 나는 친구들에게 얼마나 더 많이 잘 해줘야 하는 걸까…

이 비슷한 장면이 동화 ‘가방 들어주는 아이’에도 등장한다. 영택이의 가방을 들어주는 석우는 만나는 모든 어른에게 칭찬을 듣는다. 너 참 착한 일 하는구나… 심지어 문방구 아저씨는 석우에게 착한 일 한다며 학용품도 공짜로 주기도 한다. 결국, 석우는 전교에서 착한 아이로 모범상을 타기도 한다. 내 친구들 역시 그랬다.

이런 일은 커서도 계속 이어졌다. 나와 함께 있는 친구들에겐 착한 사람이란 칭찬이 꼭 이어졌고 나와 다정했던 연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상하고 착한 남자라는 칭송과 함께 천사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비단 내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장애인 친구는 남편과 함께 탄 지하철에서 ‘장애 있는 여자가 멀쩡한 남자와 있는 걸 보니 돈이 많은가 보다’고 쑤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던 경험을 얘기해 준 적이 있다. 본의 아니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친구나 연인은 다 천사로 승격된다.

이 영화들에서 내가 불편해지는 지점도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이 영화들에 느끼는 그 따뜻한 감동이란 것이 혹시 나와 함께 있는 친구들이나 연인이 천사로 보일 때의 그런 마음은 아닐까 하는 것은 지나친 예민함에서 오는 과잉한 우려일까.

벌써 제목부터가 언터쳐블이다. 백만장자로 불리는 1% 최상류층, 감히 다가갈 수도 없는 언터쳐블한 남자가 무일푼 흑인 전과자 백수와 친구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통념이 이미 담긴 제목이 아닌가. 그런 통념에서 희박한 1% 우정의 가능성을 그의 장애에서 찾는다면 장애는 결핍이나 흠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동등한 관계의 우정이라기보다 일종의 결핍된 존재에게 베풀어주는 온정 같은 것 말이다.

왜 그렇지 않던가. 장애인 친구와 노는 것을 기껏 ‘놀아 준다’고 표현하거나 장애인 친구 대신 가방을 드는 일도 ‘가방을 들어주는’ 선행이 되는 세상에서 마치 호흡처럼 무심한 습관이 돼 버린 생각들… 그래서 그런 언터쳐블한 우정이 감동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또 영화 초반에서 보여주는 드리스(언터쳐블), 혹은 델(업사이드)이 필립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많은 사람은 필립을 동정하거나 불쌍하게 대하지 않는, 편견 없이 솔직한 모습이라고 여기는데 내게는 그 모습이 꽤 무례해 보인다는 것도 또 하나의 불편한 지점이기도 하다.

동정하거나 불쌍히 여길 필요도 없지만, 상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직설적인 언행 역시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진심으로 서로를 지지하고 인정해 주는 친구가 되는 모습은 아름답고 감동적이긴 하다. 그리고 분명 재미있고 좋은 영화임은 틀림없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도 여럿 있지만, 이 지면에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굳이 이 영화들을 불러내어 불편하다는 잔소리를 덧붙이는 이유는 장애나 계급, 혹은 환경이나 인종의 차이를 언터쳐블한 결핍이나 약점으로 인식하지 않기를 바람에서다. 나와 친구들을 바라보던 어른들의 시선이 ‘착한 아이’만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좋은 친구 사이’를 봐주는 눈이었기를 바랬던 그 마음으로 말이다.

일방적으로 ‘착한’ 한 사람만이 아니라 ‘좋은 친구 사이’를 볼 수 있는 눈이라면 최상류층 완벽한 남자의 우정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나를 돌이켜 보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꼽아 보는 우정의 조건은 무엇인가. [더인디고 THE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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