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검은 꽃배추가 하얀 파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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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서서히 경작되는 농작물입니다라는 글이 써 있는 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그를 처음 만난 건 신입사원 환영회에서였다. 1년 먼저 입사한 것이 큰 벼슬인 양 한 해 위 선배들은 우리에게 이런저런 조언과 직장예절에 대해 많은 조언을 했다.

유독 열심히 먹는 일에만 집중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한 선배가 있었다. 곱슬머리가 길어 마치 검은색 꽃배추를 머리에 이고 있는 듯 보였다. 공중을 헤매던 날파리가 실수로 그 속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고객 응대가 많은 직장에서 요구하는 ‘용모 단정한 자’와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이는 외모였다. 거기다 눈이 아주 나쁜지 두꺼운 안경알은 그의 작은 눈을 더 조그맣게 했다. 여러모로, 좀 많이 이상해 보이는 선배였다.

업무적으로 연관 없는 일을 하면서도 이상한 선배의 행동은 자꾸 눈에 거슬렸다. 창구에서 책을 보다가 상사에게 불려가 질책당하는 걸 보면서 그가 야간대학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고,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는 걸 보니 사회성이 좀 부족한가 싶기도 했다. 본인은 과묵해서 그렇다고 했지만 사귀기 시작하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말이 많은 남자였다.

나중에 안 것은 언니 친구의 잘 아는 후배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작은 인연이 되어 그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딴에는 농담이라고 하는데 나는 전혀 웃을 타이밍을 찾지 못해 어정쩡한 미소를 보낼 뿐이었고 맞장구도 쳐주질 못했다.

그는 언니 친구와 함께 하는 독서 모임을 소개하면서 나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월 1회 모임을 함께 하며 그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처음에 이상해 보였던 그의 꽃배추 머리는 점점 희미해지고 풍성한 머리숱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고 시간이 갈수록 괜찮은 남자로 다가왔다.

업무 변경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되어 그는 퇴사했다. 퇴사 후 좀 더 적극적인 데이트로 우리는 서서히 연인이 되어갔다. 헤어지기 아쉬워 광안리 해변을 몇 번씩 거닐면서 발아래까지 밀려온 바닷물에 화들짝 놀라 모래사장을 빠져나갈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작은 일에 마음이 상해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하다가 둘 다 나이가 들고 보니 결혼이란 걸 하고 싶었다.

가족들에게 인사를 시키려고 그를 우리 집에 초대했다. 엄마는 그의 첫인상이 맘에 든다고 하셨다.

“어휴~ 총각이 환하게 웃는데 치아가 참 가지런하고, 정직해 보여 좋더라.”

하지만 언니들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급기야 그를 보내고 온 내게 언니들의 반응은 좀 심했다.

“어째 사람이 좀 모자라 보인다, 말하는 건 뭐 괜찮긴 하지만…”
“넌 저런 사람하고 길거릴 어떻게 같이 다니냐? 좀 창피하겠다…”

언니들의 반응은 무시하고 엄마 말씀만 그에게 전해주니 기분 좋아서 눈이 보이지 않게 활짝 웃는 모습에 ‘엄마 느낌이 이거였구나!’ 생각되었다.

많은 일을 겪은 후 우리는 결혼했고 그와 함께 산 지 31년이 되었다. 그동안 남편은 자잘한 사고 한번 없이 열심히 살아줬고 시가와 친정에 최선을 다한 덕분에 점수를 많이 가져왔다.

언제나 나보다 남편 편이었던 친정엄마는 돌아가셨다. 남편의 외모에 싫은 티 팍팍 냈던 언니들은 이제야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정서방은 진짜 진국이다. 어디 버릴 데가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악평을 남겼던 남편의 첫인상에 대해 많이 무안해하고 미안해한다. 물론 언니들이 보는 것과 함께 사는 내가 느끼는 남편의 다른 점은 있지만, 외모로 평가했던 그 옛날의 과오는 아직도 잊지 않고 우리를 웃게 만든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다 보니 외모가 능력이고 경쟁력이란 말이 나온다. 가벼운 시술은 너무도 일반화되었고,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얼굴과 몸을 바꾸는 수술을 서슴지 않고 행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얼마 전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우 원미경 씨를 보고 깜짝 놀랐다. 연기와 외모로 사는 배우인데 그녀의 얼굴은 자연스럽게 나이 든 티가 보여 친근감과 동시에 손대지 않은 아름다움이 배여 있어 보기 좋았다.

외모를 바꾸거나 가꾸는 것은 각자의 취향 문제니 그러한 것을 옳다 그르다 말할 수는 없지만,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더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 많은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그런 면에서 예전에 남편의 외모만 보고 멀리하지 않았던 나의 선택과 결정은 참 잘한 것이었다고 셀프 칭찬한다. 물론 외모만 빼고 나머지가 다 맘에 드는 건 아니지만 심성이 나쁘지 않으니 다행이란 뜻이다.

머리숱이 급격히 줄어든 남편 머리 위의 검은 꽃배추는 언제부턴가 세월의 손길로 하얀 파뿌리로 변해 있다. 그 질기던 곱슬머리가 히마리 하나 없는 백발이 될 줄 정말 몰랐다. 그렇지만 젊었을 때의 이상한 외모가 중년이 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그때보다는 지금이 낫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에 이유가 있으면 오래 가지 못한다. 그 이유가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질 수 있으니 사랑한다면 굳이 이유를 찾지 않아야 한다. 특히 외모에 방점을 찍는다면 내면을 다시 한번 더 살펴봐야 할 일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 외모부터 부끄러워 하지 않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크게 외쳐본다. [더인디고 THE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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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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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bk21@hanmail.net'
장명슥
3 years ago

아, 기대했던 야릇하고 짜릿한 첫사랑얘기가 아니어서 적잖이 실망하였지만, 이렇게 따뜻하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작가님!!! 이 가을도 풍성히 누리시길

cooksyk@naver.com'
김서영
3 years ago

안에서 맴도는 이야기를 일케 설득력있게 잘 풀어주시니 속이 다 시원합니다
나이들수록 인상이 외모고 성품이지요
조작가님 사랑합니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