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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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를 알아보는 카드
심리를 알아보는 카드/ⓒPixabay
박세진 집필위원
더인디고 박세진 집필위원

[더인디고=박세진 집필위원] ‘뭣이 중헌디?’ 몇 년 전 개봉한 영화에서 나온 유명한 대사다. 유행이 다 지난 최근에야 저 말이 자꾸 머릿속에 떠다니고 있다. ‘무엇이 중요할까?,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직업재활을 전공했다. 성적에 맞추어서 대학을 가서 그런지, 안타깝게도 대학에 입학할 때도 그랬지만 졸업할 때도 내가 평생 해야 할 일, 재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것 같다.

남들은 듣기 좋은 말로 좋은 일 한다고 그랬지만 재활・장애를 그저 평생 먹고 살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인식했으며 나뿐만 아니라 또래의 대부분의 동료가 그러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그때에는 이러한 것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잘 모르기도 했고, 대표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만 일을 했고 또 내가 비장애인이라 그런지 지금 생각하면 철없는 행동도 많이 한 것 같다.

이후 시간이 흘러 몇몇 유형의 직장을 거치며 많은 사람도 만나보고 학위도 취득하고 현재는 지방의 자회사형장애인표준사업장에서 장애인 재활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채용된 장애 직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정기적으로 상담하고 관련한 사내제도를 정비하고 지원하는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과거 여러 직장과는 달리 조금 더 여유가 있어서일까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최근 들어 장애 당사자인 우리 팀장이 부쩍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뭔가 일을 계획하거나 중간보고를 할 때가 되면 ‘이걸 왜 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밑도 끝도 없는 반응인가?’라고 고민했지만, 요즘은 ‘내가 하는 일에 문제가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하는 일의 의미를 알고 본질을 생각하라’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한참을 고민하다 다시 돌이켜 ‘이걸 왜 해?’라고 고민해 보면 질문의 답, 즉 그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일을 왜 하는 것일까? 장애 직원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예산이 잡혀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일까? 진짜 장애인 분들에게 필요해서 하는 일일까?, 아니면 내가 월급을 받기 위해 하는 일일까?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계속 찝찝함과 의심이 남는다.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장애 직원들에게 진정 필요하니까….’라고 한 번에 답이 명확히 나오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고민과 비판은 조금 더 확장되어 일상생활의 다양한 영역을 넘어, 장애와 관련한 정책에까지 이르게 된다. 양적 성장에만 몰두해 있는 듯한 장애인 고용정책, 온라인으로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직장내) 장애인식개선교육, 당사자는 체감하지 못하는 등급제 폐지, 선택의정서 채택 없는 CRPD 비준 등 모든 것이 왜?? 하는지 모를 일들뿐이다.

이러한 정책들에 ‘이걸 왜 해?’에 대한 답을 내보자면 결국 ‘장애인들의 삶의 질 향상’ 혹은 궁극적으로 ‘장애인들의 사회통합(social inclusion)’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장애와 관련된 정책이나 사업들은 보여주기 위해서, 보고하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다룰 대상이 아니다. 대신 양보다는 질적으로, 실적보다는 체감으로 접근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정책은 정책이 아닌 숫자놀음이나 먹고 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정책 목표인 장애인들의 사회통합에 결코 이를 수 없게 된다.

과거 대학 졸업 후 갓 보호작업장에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 한 어르신이 ‘우리가 있어 당신들이 먹고 살고 있다’라고 한, 지금 생각하면 뼈아픈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걸 왜 해?’ 장애나 재활, 복지를 커리어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항상 이 말을 되새긴다면, 그나마 지금보다는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내일 있을 장애 직원과의 상담에 앞서 ‘이걸 왜 해?’라고 다시 한 번 나에게 물어본다.
[더인디고 THEINDIGO]

장애인의 인권과 노동권의 관점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장애인재활상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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