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완벽하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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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으로 오케이 표시를 한 모양
ⓒPixabay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내가 속한 밴드 ‘플라마’의 멤버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절대음감이기도 하고 여러 악기가 동시에 연주되는 중에도 작은 소리를 놓치지 않고 잡아낸다.

도미넌트세븐(Dominant 7)과 메이저세븐(Major 7)의 소리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나에게 있어 이름도 생소한 텐션 코드들을 조합하고 편곡해 가는 멤버를 보고 있으면 존경심을 넘어서 나에겐 할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도 존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학원도 다녀보고 여러 자료도 찾아보면서 음악가 흉내라도 내보려고 노력도 했지만, 나의 레벨이 오르는 것보다 스트레스가 상승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만 확인했다. 지금은 훌륭한 형들이 정해 놓은 대로 노래하고 가끔 단순한 기타 코드 몇 번 뚱땅거리는 것으로 나의 위치를 스스로 고정했다.

그래도 괜찮은 것은 나에겐 예민한 음감이나 섬세한 귀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상황이 밴드 활동을 즐기는 것에 큰 장애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선율의 조합과 고급스러운 코드들을 연주하는 기술의 화려함을 무대 위에서 즐기는 멤버들도 있지만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래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기쁘다.

얼마 전부터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위스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수십만 원 이상 하는 위스키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합리적 가격대의 위스키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자료들도 찾아보고 여러 시음 영상도 시청했다. 향을 느끼고 맛을 보고 가치를 느끼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과 영상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여러 증류소와 증류 방법 그리고 개성 뚜렷한 오크통을 알아가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단 만만한 가격대의 술과 전용 잔을 구입하고 그동안 공부한 방법대로 시음을 시작했다. 알콜부즈, 피트향, 시트러스향, 바디감, 꽃향기까지 들어보고 기대했던 여러 느낌이 있었지만 내게 그런 것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뭔가 비슷한 감각이 나는 듯도 했지만 기분 탓인지 정말 명확히 구분될 만큼 유의미하지는 않았다.

다른 한 병을 더 구매해서 비교 시음도 해 보았지만, 전문가들이 말하는 맛과 향의 차이 같은 것은 뚜렷하게 실감 나지 않았다. 한 잔을 더 마시고 또 한 잔을 더 마시는 동안 취기만 오를 뿐 상상했던 오묘한 세상은 펼쳐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위스키를 즐길 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참 좋았다.

살면서 많은 시간을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했던 것 같다. 99점을 맞아도 100점을 동경하느라 기쁘지 않았고 충분히 먹고 살 만큼 벌고 있으면서도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의 삶을 이유 없이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장애를 힘들어하는 것도 같은 선상에 있는 것 같다. 여행을 가면 매우 즐겁지만, 눈으로 보면 더 즐겁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편안히 타고 있으면서도 운전하지 못하는 것을 괴로워한다.

각각 다른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겐 어느 부분만큼은 남들 같지 못한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교사인 나는 가르치는 전문가일 수 있지만 위스키를 세밀하게 구분하고 절대음감까지 가지는 것은 불가능한 영역일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영역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난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음악 전문가는 아니지만 밴드 활동을 하면서 음악가 이상으로 전율을 느낀다. 한잔의 위스키를 마시면서 그것의 가치를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뱃속이 따듯해지는 약간의 취기만으로도 짜릿하다.

경치를 보지는 못하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나의 여행은 맛보고 숨 쉬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 모든 것에 완벽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사람이라는 명확한 증거이다. 항상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완벽하지 않아도 즐거울 수 있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인간이 행복해지는 길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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