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줄어든 옷 되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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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팔 셔츠들
긴팔 셔츠들/ⓒunsplash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가을을 맞이하여 꺼내 입은 셔츠가 이상스럽게 작아져 있다. 다른 것을 꺼내 입어 보아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몸에 딱 맞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나마 나은 것을 골라 입고 나가면서 혼자 생각했다.

‘옷을 이렇게 잘 줄어드는 천으로 만들면 어떡하지?’

‘빨래 몇 번 했다고 이렇게 되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새 옷을 사러 갈 시간도 마땅치 않아서 불편한 착용감을 감수하고 며칠의 출퇴근을 반복하던 지난주에는 우리 학교 졸업생들의 앨범 촬영이 있었다.

매년 그렇듯 교사인 나도 제자들의 기념 한구석을 채워주고 싶은 욕심에 정장 한 벌을 꺼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경조사에 직접 참석할 일도 없어서 몇 달 만에 꺼내 보는지 잘 기억도 안 나는 옷이었다.

세탁과 다림질까지 말끔하게 되어 있는 한 벌의 정장은 그냥 한 번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단정해지는 묘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내일로 다가온 행사를 위해 셔츠와 상・하의를 차례로 입어보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라 익숙한 편안함은 없었겠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내 옷 같지 않은 불편함으로 팔을 끼워 넣고 다리를 집어넣었는데 마무리 작업이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지퍼를 올리고 단추를 채우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피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 몸은 생각보다 많이 커져 있었다. 셔츠 대신 스웨터를 입고 이런저런 임시 조치를 하고 나서야 하루 동안의 사진 촬영을 그럭저럭 넘겼다.

퇴근 후 옷을 벗는 순간이 이렇게 행복했던 건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었다. 중세시대 철로 만든 코르셋을 벗을 때 여성들의 느낌이 이랬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체중계에 올라보고 또 다른 가을옷들을 하나하나 몸에 대어보면서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다. 옷이 줄어든 게 아니었다. 옷은 작년 그대로의 사이즈를 유지하고 있었다.

문제는 천이 아니라 소리 없이 부쩍 불어난 나의 몸에 있었다. 셔츠도 바지도 작년에 보여주던 그 맵시가 나지 않았다. 급기야 한 녀석은 내 몸을 담아내려던 마지막 발악을 하다 부드드드득 실밥 터지는 소리를 내고 사망했다.

한 벌 한 벌 옷을 꺼내면서 소재를 의심하고 제조회사를 원망하고 세탁기를 불평하던 내 모습이 정말 부끄럽게 느껴졌다. 원인은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나에게 있었는데, 사고 발생 근원에서 나 자신을 완벽하게 제외한 것이다.

내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문제는 나로 인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 대상의 수가 전체 중 다수일 때는 더욱 더 그렇다.

모든 음식이 맛없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요리사의 기술 부족이라기보다는 나의 건강 상태나 기분 탓일 확률이 높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내 말에 동의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초인류적 선구자일 가능성보다는 나의 판단이 틀렸을 확률이 훨씬 크다.

내 모든 옷이 한날한시에 동일한 비율로 줄어들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에 비해 내가 살이 쪘을 확률은 현실에서 언제나 벌어질 수 있는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살면서 가장 풀기 힘든 문제 중 하나는 현존하는 세상이 나와 전혀 맞는 구석이 없다고 느껴질 때이다. 이런 일을 해도 저런 의견을 내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을 때의 해법은 의외로 가장 간단하다. 나를 바꾸면 모든 것이 나에게 맞춰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운동량과 강도를 다시 올려 볼 생각이다. 줄어들었다고 느꼈던 옷들이 원래의 크기로 커지는 기적이 일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옷의 사이즈를 키우는 방법은 나를 줄이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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