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면접에서 탈락한 청각장애인, 2심에서 ‘승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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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고등법원
수원고등법원/사진=더인디고
  • 재판부, “면접절차 위법으로 편견 갖게 해…면접위원은 재량권 남용”
  • 류 씨, “나쁜 선례로 남지 않아서 다행”
  • 변호인, “인식의 문제라 생각… 당사자의 재판 참여도 영향을 준 듯”

지난 2018년 여주시 지방공무원 공개경쟁임용시험 9급 일반행정 장애인 구분모집에서 필기시험 합격 후 면접시험에서 탈락해 소송을 제기한 청각장애인이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18일 수원고등법원에서 열린 민사 제1행정부(재판장 이광만, 주심 도정원 사건번호 2019누13363)는 면접시험의 절차상 위법성, 면접위원의 차별적 질문의 위법성을 인정하고, 여주시 인사위원회 위원장에게 불합격처분 취소와 원고의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500만 원을 손해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앞서 원고는 불합격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1심에서 패소하여 항소를 제기했다. 2심에서는 면접시험과 추가면접시험의 전담보조요원(문자통역 담당) 2명에 대한 증인신문, 원고 본인에 대한 당사자신문을 진행했다. 또 지난 9월 23일 항소심 마지막 변론에서 이 사건을 맡은 최현정 변호사가 ▲절차상의 위법성 ▲면접위원의 차별적 질문의 위법성 등 면접시험 과정에서의 차별성을 중심으로 구두변론을 진행한 바 있다.

본지 9월 24일 기사, 공무원 면접 탈락한 청각장애인, 항소심 최후 변론… “특혜 아닌 공정 기회 요구”
(https://theindigo.co.kr/archives/10069) 참조

재판부는 절차적 위법성 판결 이유로 “여주시 인사위원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과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정당한 편의제공을 미리 공고하지 않았고 원고의 장애특성을 수어 불가능으로만 기재함으로써 원고가 수어를 못하여 의사소통을 못 한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면서 “또 통상의 구술면접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문자통역방식으로 면접이 진행되었음에도 시험시간 연장 및 충분한 속기능력을 보유한 의사전달보조인 등을 배치하지 않아 면접절차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면접질문에 대해서도 “면접위원들은 최초 면접시험에서 SNS를 쓸 줄 모르는 민원인을 어떻게 응대할 것인지 등 장애 관련 질문을 하였는데 청각장애인 공무원은 근로지원인으로부터 대화, 전화통화 지원 등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들이 원고가 공무원으로 임용되고 수행하는 업무와 관련된 사항이라고 할 수 없다.”며 “장애 관련 질문들은 모두 원고의 의사소통 방법과 능력을 묻는 것으로서 원고의 장애를 평가 요소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면접위원 모두 의사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을 ‘하’ 평정을 한 점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한 차별이며 재량권을 남용했다고 판단된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당사자 류 씨는 “이번 사건에서 승소해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18일 항소심 판결 후 노트북 등을 이용한 문자통역을 통해 당사자 류 씨가 인터뷰하는 장면
18일 항소심 판결 후 노트북 등을 이용한 문자통역을 통해 당사자 류 씨가 인터뷰하는 장면/사진=더인디고

면접과정에서 청각장애인이 응시할 때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할까라는 질문에 류 씨는 “면접내용이 문자통역할 때 작성된 한글 파일로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중요한 쟁점인 면접관의 질문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저장이 되어 있지 않아 직접 물어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재판 과정에서 여주시는 면접관의 질문 내용을 인정하면서도 직무관련 질문이라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1심 진행과정에 이 정도 증거면 차별이 확실하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재판부의 인식에 차이가 큼을 느껴졌다.”면서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라 생각하고 더 꼼꼼하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2심에서는 1심 판결의 문제와 비슷한 판례 등을 정리해서 첨부자료로 제출했고 또 당사자가 재판에 계속 참가해서 문자통역 등을 통해 당사자 심문도 진행했다.”며 “청각장애인 당사자가 재판과정에서 속기사가 치는 것을 스크린을 통해 문자로 보고 대답하는 과정 등도 재판관들의 인식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강조했다.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의 김철환 활동가는 “이번 판결로 청각장애인들이 직업선택에 있어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면서 “사무직종에서는 대화, 전화, 대민서비스 등이 문제인데 활동보조나 근로지원인 등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판결이다.”고 설명했다.

류 씨의 아버지도 “장애인식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이 면접관일 경우 장애인은 잘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기 쉽다”면서 “면접시험에서 경증 장애인만 받아들이려고 하고 중증장애인은 불합격시키는 것 같다. 중증장애인이 억울하게 불합격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앞으로 14일 내 여주시에서 상고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상고를 안 하면 이번 판결로 불합격 취소가 확정되지만 면접시험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당한 편의제공이 된 상태에서 다시 면접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면접시험은 해당 직무 수행에 필요한 능력 및 적격성을 검정하는 것인데 문제가 된 의사 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을 제대로 묻는 면접시험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더인디고 THEINDIGO]

20년 넘게 과학교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1년간 더인디고 기자로 활동하며 사회적 소수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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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ame@iii.com'
농인공무원응원합니다.
3 years ago

아주 훌륭합니다. 역시 김철환 활동가님의 힘이 돋보이는군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간 류씨 지원자를 칭찬합니다.!!! 여주시도 청각장애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하는 공직사회를 열어주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