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낮은 시선으로부터] 내가 이제 듣고 싶지 않은 말들

똥, 엿같은을 뜻하는 영어 단어 shit
ⓒPixabay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위원]

, 씻어낼 수 없는 상스러움

이용석 편집위원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위원

되지도 않는 일을 빌미로 쌍욕 한 바가지를 듣고 나니 그 노골적인 상스러움으로 정신을 찾을 수가 없다. 가로수 아래로 수북하게 쌓인 그 앳되고 여린 노란 은행나무 잎이 그저 쓰레기로만 보이고, 겨울을 재촉하는 서늘한 가을비 한소끔도 거추장스럽게만 여겨져 마음 한 귀가 속 빈 강정처럼 허랑하기만 하다. 나름대로 그동안 살아온 내력이 제법 탄탄하게 쌓였다고 여겼는데, 쉴 새 없이 쏟아붓는 욕지거리를 당최 당해낼 재간이 없다. 속절없이 무너진 마음 자락 틀어쥐고 술 한 잔으로 겨우 견디는 중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장혜영 국회의원의 글을 읽었다.

“우리가 관습과 도덕만으로 충분히 서로가 서로를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존중하는 사회를 자발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입법할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2020년 현재 우리는 아직 그런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 인식이 제도의 자리를 충분히 채우지 못하는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이 부당한 차별로 고통을 받았다.”

맞는 말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차별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우리는 차별금지법 따위는 애초에 상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용과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과 이용, 행정 서비스라는 일상의 필수적 영역에서 성별, 연령, 장애, 학력, 성적 지향을 이유로 위계를 만들어 차별하고 혐오하는 방식이 상사의 지시거나 윗사람의 훈계가 무심코 내뱉은 말실수쯤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 상스러운 말버릇조차 듣기를 강요해도 비난받지 않는 사회에서는 ‘더 나은 언어, 더 나은 태도’가 항명이나 버릇없음으로 매도되고 도리어 처벌의 이유가 된다. 그래서 장혜영 의원은 ‘한때는 썼고, 지금도 쓸 수 있지만, 윤리적인 이유로 더는 쓰지 않는 말들에 대한 글을 써주실 수 있겠느냐’고, 작가들에게 요청했고 답장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이제 쓰지 않을 말들

‘절름발이’, ‘앉은뱅이’, ‘순혈’, ‘단일민족’, ‘암 걸리겠다’, ‘여자답다’, ‘남자답다’, ‘외가와 친가’, ‘성적 수치심’, ‘병신’, ‘아줌마’, ‘선택장애’, ‘ㅇ밍아웃’, ‘ㅇ린이’, ‘여교사’, ‘여배우’ 등

작가들은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이라는 태그를 달고 페이스북에 그동안 무심하게 써왔던 말 들을 적고 그 말들을 왜 쓰지 않아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적었다. 장애를 비하하거나, 여성을 혐오하는 말들, 성 소수자들에 대한 밈 등 다양하게 화답해 왔다. 장 의원의 제안에 응한 작가들의 답변은 망설임 없이 분명했다 어느 작가는 변명 대신에 반성했고, 또 어떤 이는 경험을 공유하며 자신이 무심코 썼던 말들을 회고하며 아파했다.

장 의원의 제안과 작가들의 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위한 노력이겠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말자는 거다. 그 대상이 누구든 무시하거나 혐오하는 말을 말자는 아주 쉬운 다짐일 텐데 말을 다루는 작가들 입장에서는 쉬운 다짐은 아닐 것이다.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혹은 작중 인물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은연중에 썼을 무수한 욕들과 혐오표현들은 어쩌면 언어를 다루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상상을 표현하는 유효한 재료들이었을 테니까. 그럼에도 참여 작가들은 기꺼이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을 밝혔다. 이는 글쓰기의 소재로서의 언어를 기꺼이 포기하는 대신에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선택한 것이어서 값지고 소중하다.

내가 이제 듣고 싶지 않은 말들

하지만 고민이다. 일상은 그리 녹록지 않아 수시로 들려오는 비하와 혐오의 날 선 악다구니들은 잘 벼린 칼끝이 되어 사람을 향하고, 그 칼끝에 선 사람들은 마음이 배이고 잘려 아프다. 설사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도 일상 속 차별과 혐오는 계속될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일상을 살아야 하고 주먹을 쥔 손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은 곁에 있다. 법의 목적은 통제와 규율이지 ‘더 나은 언어, 더 나은 태도’를 위한 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바란다. 법은 통제와 규율을 통해 ‘하면 안 됨’을 강제적으로 요구할 수 있으니까.

곧 눈이 내릴까? 한바탕 짙고 무거운 함박눈이라도 우악스럽게 쏟아졌으면 싶다. 아주 잠깐이라도 세상을 감추고 그저 희디흰 눈의 빛들로 가득한 풍경 안에 ‘나’를 감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감추고 이제는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들만을 골라 눈 속에 파묻고 싶지만, 또다시 눈이 녹으면 그 말들은 다시 되살아나겠지. 아, 대체 이 속수무책을 어쩌란 말인가?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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