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테라스의 스승들

0
114
식물들
식물들/사진=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우리 집 테라스에는 식물들이 많다. 공기 정화를 해준다고 해서 산세비에리아 하나, 미세먼지를 줄여준다고 벵골고무나무 하나, 꽃말이 좋아서 남천 하나, 은은한 향기가 좋아서 허브 하나… 이렇게 들여놓다 보니 10개도 넘는 화분들이 작은 숲을 이루게 되었다.

물을 주고 만져주는 별것 아닌 것을 해 줄 뿐인데 초록색 친구들은 맑은 공기와 기분 좋은 향기를 아낌없이 선물한다.

꽃 피고 열매 맺고 성장하는 녀석들의 매력에 빠지다 보니 어떤 화분은 나와 함께한 시간이 벌써 10년도 넘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첫사랑의 매력을 자랑하는 것만큼이나 쉼 없이 말할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매력은 삶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는 점이다.

식물들은 스스로 주어진 환경을 탓하거나 거스르려고 하지 않는다. 양분이 모자란다고 흙을 벗어나지도 않고 햇볕이 너무 강하거나 약해도 그늘을 찾는다든지 밝은 곳을 찾지 않는다. 오랫동안 물을 주지 않거나 생장에 맞지 않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언젠가 주어질 더 나은 시간을 묵묵히 기다린다. 몸이 줄어들고 색이 변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예외가 아니면 주어질 또 다른 양분과 물에 희망을 품는다.

어쩌면 조금 쪼그라들고 휘어지고 하는 시간마저도 식물 친구들은 삶의 여러 시간 중 지나쳐 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느끼는지 모르겠다. 겨우내 얼어서 죽은 것만 같던 화분에서 새로운 새싹이 움트기도 하고 작은 잎사귀의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강력함으로 막혀있는 돌을 뚫어내고 햇볕을 바라기도 한다.

시력이 없는 주인 때문에 우리 집 식물들은 예쁘게 단정하게 자라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겪어 온 시간과 지나 온 과정을 알기에 어떤 예술작품보다 아름답고 어떤 천연기념물보다도 의미 있는 친구들이다. 부러지고 말라지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한 녀석이 어느새 다시 꽃을 피웠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지치고 쓰러질 것 같은 지금의 시간도 또 다른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내는 과정일 뿐이다. 혹시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피우지 못해도 좋다.

각각의 화분들은 함께 지내온 시간, 그리고 이름 지어지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다. 모든 사람의 시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승인
알림
662357004d222@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