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부산 일광 해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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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 바다
사진=더인디고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엄마는 아들 하나에 딸 일곱을 키우고도 아기가 예쁘다며 이웃집 아기들을 돌봐 주셨다. 사실은 대식구의 생활비가 필요하기도 했었다.

어느 날 이웃에 이사 온 젊은 엄마가 아이 맡길 데가 없어 난감해하는 것을 아시고 바로 그 아이와 인연을 맺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젊은 엄마는 그 당시 흔했던 첩이었다. 본가는 일광 유지인데 본처가 딸 하나를 낳고 단산하는 바람에 첩을 두 명이나 거느리고 살았다. 공교롭게도 그 두 명이 우리 동네 아랫집 윗집에 살면서 똑같이 임신했고 둘은 상대방이 아들 낳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사이가 꽤 좋아 보였다.

엄마가 보던 아이가 서너 살이 되었을 때 아이 엄마는 혼자 벌어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이를 본가에 데려다주었다. 아이를 떠나보내는 친엄마보다 그동안 정이 든 우리 엄마가 더 안타까워했고 그렇게 그 아이와의 짧은 인연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 중반, 넷째 언니가 초 5, 내가 초 3이던 여름방학 때, 옆집 아이 엄마는 아이가 보고 싶다며 우리 둘에게 심부름을 보냈다. 주소 한 장 달랑 적어주며 일광에 가서 자신의 아이를 데려오라는 거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 허락한 우리 엄마도 신기했지만, 어린아이들에게 그런 부탁한 젊은 엄마는 아이가 얼마나 보고팠으면 그랬을까 안쓰럽고 안타깝다.

언니와 나는 해운대역에서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 일광으로 갔다. 다리를 건너 주소를 물어물어 도착한 집은 낮은 담 너머로 마당이 죄 보였고 조용했다. 어촌답게 그물망이며 조개 캐는 도구들이 마당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인상 좋은 중년 여자가 나와서 우리를 반겼다. 본처의 위엄보다는 첩이 보낸 사람들이 어린 학생이었음을 안도하는 눈치였다. 아이를 도로 데려갈 생각은 안 할 거라는 믿음이 작용하는 듯 보였다.

아이가 우릴 알아보고 고개를 돌렸는데 언니와 나는 깜짝 놀랐다. 외꺼풀이었지만 유난히 똘망똘망하고 반짝이던 눈이, 한쪽 눈동자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놀란 우리 표정에 그녀는 조심스레 말했다.

“어린 것이 혼자 막대기를 갖고 놀다가 다쳤는데 치료가 이기 최선이라 카더라. 야아 엄마 놀라지 않구로 이야기 좀 잘 해도라.”

어린 우리 자매 표정이 일그러진 것을 보고 그녀는 많이 불안해했다.

내어 준 과일을 입에도 안 대고 일어서려는데 작은방에서 세련된 젊은 여자가 거실로 나왔다. 긴 생머리에 하얀 얼굴이 그녀가 어촌에 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산에 있는 전문대에 다니는 본처의 유일한 딸이었다. 그녀는 우리의 방문이 불쾌한 듯 새초롬한 표정으로 언니와 나를 힐끗 보더니,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한쪽 눈이 안 보이는 배다른 동생을 어떻게 대하는지 우리 자매는 짐작이 갔다. 쌀쌀맞아 보이는 게 그녀의 친엄마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우리를 따라가는 게 아이는 좋았는지 연신 표정이 즐거워 보였다. 아이를 언니가 포대기로 업고 나는 기저귀 가방을 들고 다시 일광역에서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 해운대역에서 내렸다.

아이 엄마와 우리 엄마가 아이 눈을 보고 까무러칠 걸 생각하니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그 후의 기억은 언니도 나도 희미했다. 어린 우리 자매가 그 아이의 불행을 기억하고 살아가는 게 너무 가슴 아파서 아마도 의도적 망각을 선택한 결과인 것 같다.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아이는 다시 아버지한테 맡겨졌고 아이 엄마는 또 한 명의 딸을 낳았다. 그 딸은 남편에게 보내지 않고 자신이 키웠고 고교 교사가 되었다는 말을 끝으로 더 들은 말은 없었다.

서울과 부산에 떨어져 사는 우리 자매들이 만나 몇십 년 만에 찾아간 일광 해변에서, 거의 반백 년 전 이야기를 나누는데도 우리들의 기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래 맞다, 그랬었다. 참 갸들도 갸들 엄마도 고생 많이 했다.”

“아이고~ 그땐 왜 그러고 살았나 몰라~~”

한참을 과거로 회귀하여 아파하고 안타까워했다. 친정엄마가 계셨으면 그 후의 일들도 더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이래저래 친정엄마의 부재가 더 아렸던 부산 일광 해변에서의 자매들 수다였다. [더인디고 THE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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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na@naver.com'
famina
3 years ago

재미있게 읽었어요
어린자매의 모습이 .다른사람들의 표정이 동영상 보는듯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