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욕망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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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난 여느 사람과 조금 다르게 하고픈 것이 있다.
여러 명이 함께 식당에 갔을 때 냅킨을 깔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단정히 놓아주고 싶고, 정수기에서 식전에 마실 물을 동행한 사람의 숫자만큼 나눠주고 싶다.

늦은 밤 모임이 끝났을 때 지하철이 끊긴 동료를 내 차로 데려다주고 싶고, 갑자기 아픈 친구를 위해 얼른 달려가서 약을 사 오거나 병원까지 업고 달려가고 싶다.

어머니 가게에 갑자기 들이닥친 단체 손님을 맞이하여 서빙하는 것이나 눈 내린 골목에 소복이 쌓인 눈을 아침 일찍 쓸어 치우는 것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그 모든 것은 내가 하기 힘들거나 내가 하도록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낯선 식당에서 더듬거리면서 수저를 놓고 정수기를 찾는 동안 누군가는 얼른 나를 대신하여 그 일을 할 것이고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것을 원하는 이는 적어도 현시점에는 없다.

아픈 친구가 있을 때는 나보다 먼저 뛰어나가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것이고 시각장애인이 아침부터 하얀 눈을 치우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이웃도 별로 없다.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귀찮을 수도, 하기 싫을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이 내겐 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너무도 하고 싶을 때가 많다.

스무 살 무렵에는 어떻게든 군대에 가고 싶었고 어느 비가 오던 MT 날엔 텐트 주변에 고랑을 파는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무겁거나 위험한 짐을 앞장서서 나르는 것도 복잡한 번화가에서 선발대로 뛰어다니면서 식당이나 술집을 섭외하는 것도 내겐 그저 할 수 없기에 해 보고 싶은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나의 삶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도 아니고 공동체의 입장으로 보아도 내가 하지 못함으로 인해 큰 손해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기에 난 그런 상황을 슬퍼하거나, 극복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다. 차라리 그런 일 대신 나만의 역할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적지 않게 경험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나의 반사적 반응은 반복적으로 무기력함을 일으킨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난 쓸데없는 욕구를 느끼고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하는 자아에 작아짐을 느끼고 때로는 장애의 소수약자성까지 고민한다. 그것은 정말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하고 싶은 본능적 욕망 그 이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사람들이 가지는 대부분의 욕심도 나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수천만 원을 벌면서 수억 원을 버는 사람의 삶을 부러워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수억 원짜리 집을 소유하면서도 수십억짜리 집을 동경하고 스스로 서민이라고 부른다.

충분히 잘 먹고 잘살고 있으면서도 더 비싼 것을 먹지 못하고 더 큰 것을 누리지 못함으로 다른 이의 ‘성공’을 쫒는다. 그것은 건강한 목표를 향한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과는 구별되는 단순하고 무의미한 욕심이다.

처음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이유 중 대부분도 신체의 변화 그 자체와 관련한 것이라기보다는 상실하거나 할 수 없어진 것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욕구와 더 깊은 관련이 있다.

실명한 사람들은 책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슬퍼한다기보다는 남들처럼 자신의 눈으로 글자를 볼 수 없다는 것에 감정을 이입한다. 걷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움직일 수 없다는 상태보다는 남들처럼 두 다리를 이용해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에 상실감을 느낀다.

시각장애가 있어도 다른 방법으로 책을 볼 수 있고 지체장애가 있어도 이동할 수 있지만 그런 보완 장치들은 장애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남들처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인간에겐 다른 모양의 보완 조치보다 훨씬 강력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는 신체적 상태를 바라는 것은 장애인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허황한 바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기에 현재의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고 갖고 싶어 하는 많은 것도 필요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이 내포하는 상대적 크기 혹은 지금 불가능으로 인한 무의미한 욕구일 때가 많다. 막연한 부를 바라는 로또의 마음도 여느 연예인처럼 되고 싶은 외모에 대한 집착도 그렇다.

난 친구의 냅킨과 수저를 놓지 못하지만, 그것에 대해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맛집을 미리 찾아놓거나 여유가 된다면 밥값을 내주면 된다. 늦은 밤 동료를 내 차로 데려다줄 수는 없지만. 함께 택시를 탈 수도 있고 아침에 쌓여있는 흰 눈을 치우는 대신 열심히 일하시는 경비 아저씨의 간식을 사 드릴 수 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나에게 어울리는 일이고 내가 기쁠 일이다.

우리는 이미 많이 가지고 있고 많은 것을 하고 있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해 힘들어할 시간에 가진 것에 대한 가치 있는 활용과 감사를 되돌아보자.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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