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주민과 함께하는 정신장애인직업재활시설, ‘희망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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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후 강화 들녁
추수 후 강화 들녁/사진=더인디고
  • 주민이 근로지원인과 운영위원 참여… 편견 해소와 사업안정 꾀해
  • 근로자 최모 씨, “적금 부으며 자립생활 희망 키워”
  • 지속가능한 희망일터 위해 저장창고와 셔틀버스 필수
  • 같은 직업재활시설인데 법 때문에 불이익 감수… 제도개선 시급

“매달 15만 원씩 적금을 부은지 7개월이 넘었다. 몇 년 모으면 현재 거주하는 곳(강서구 소재 정신장애인 복귀시설)에서 나와 집도 구하고, 일자리도 있으니 자립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집은 일터와 가까운 강화에서 구할 계획이다”

최모(51) 씨는 쉴 새 없이 진공 쌀 포장작업을 하며 말을 이어갔다. 최 씨는 지난 2월 중순부터 강화도에 있는 정신장애인직업재활시설, ‘희망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희망일터는 서울시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정신장애인의 일자리를 통한 지역사회 자립과 자연환경에서의 치유를 위해 2016년 강화도에 설립한 정신보건법상의 직업재활시설이다. 강화 주민들이 생산한 쌀을 농협이나 타 정미소와 같은 가격으로 수매하여 도정과 포장 및 판매 등을 하고 있다.

분야별로 작업공정이 진행되는 동안 김혜정 희망일터 원장은 “그동안 적자를 면치 못하다가 지난 연말부터는 흑자로 돌아섰다”며, “희망일터를 믿고 쌀을 맡기는 강화지역 농민들의 참여와 다양한 판로개척 및 진공포장 방식의 선물용 상품 개발 등이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킨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희망일터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희망일터에서 판매하는 상품들을 전시하고 있다./사진=더인디고

그러면서 “이제는 한 달 30톤을 찧어서 25명의 정신장애인 직원들에게 월 50만 원 이상의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누구나 거를 수 없는 한 끼 식사로 희망일터에서 생산하는 ‘강화섬쌀’을 구매해 주면 정신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당부의 말을 이어갔다.

본지가 현장을 찾았을 때는 큰 트럭에 ‘강화섬쌀’이 가득 실린 채 곧 배송할 준비를 마쳤고, 한쪽에서는 도정된 백미와 현미가 진공포장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마침 간식을 마친 직원들은 각자 맡은 영역에서 분주히 손놀림하기 시작했고, 한쪽 벽면에 부착된 월별 현황판에는 병원, 식당, 대학 등 배달할 곳이 빼곡히 적혀 있다.

직원들이 진공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더인디고
직원들이 진공포장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더인디고

김 원장에 따르면 가을 추수 후에는 일손이 달려 일일이 기록할 시간도 없다고 한다. 단체 급식을 위한 대량 주문도 들어오지만, 인터넷을 통한 선물용 진공포장 쌀 주문이 늘어나고 있어 바짝 긴장할 때도 많다고.

그 사이 500g, 1kg 등 각각 다른 비닐 포장 용기에 쌀을 담고, 나무 방망이로 두들겨 압축하고, 진공포장 기계에 넣어 밀폐한다. 또 한편에서는 강화섬쌀의 정보가 담긴 상품용 포장지를 접고, 다시 최종 선물용 박스에 넣는 등 빠른 손놀림과 함께 마스크 속 이야기도 분주하다.

포장 용기 가장자리에 1cm 미만의 양면테이프를 붙이는 최 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뭐라도 거들어 볼 요양으로 양면테이프를 포장지에 붙이려고 하자, 최 씨는 대뜸 “접지선을 기준으로 테이프가 어긋나지 않게 해 달라, 장당 150원이니 더 조심하라”며 자신만의 처리 방법을 시연했다.

최 씨가 강화섬쌀 판매를 위한 포장지를 접고 있다
최 씨가 강화섬쌀 판매를 위한 포장지를 접고 있다./사진=더인디고

최 씨가 희망일터를 찾은 것은 올해 2월 중순이다. 모 정신요양병원에서 7년간 입원했다가 퇴원 후 서울시 강서구에 있는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다. 김포공항역까지만 가면 나머지는 희망일터 종사자들이 차량지원을 한다.

한 달 수입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수급비와 장애수당, 그리고 희망일터에서 받는 월급을 포함하면 100여만 원이다. 여기에서 시설 거주비와 식비, 용돈 등을 제외하고 남는 15만 원은 적금을 붓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지만 각자 역할에 따라 일을 나누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한다. 특히 선물용 포장 접기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라고 덧붙였다.

또 그의 노동은 하루 6시간. 동료들과 식사와 간식, 그리고 서예 등 취미활동 등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가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일을 못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최 씨는 “또 그런 일이 있을까봐 걱정”이라며, 특히 “코로나로 인해 중국에 있는 유일한 가족인 동생을 올해는 전혀 만날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년 봄이 되면 다시 텃밭도 가꾸고, 동생도 올 수 있지 않을까?, (동생이) 한국에 오면 모아 놓은 용돈이 좀 있으니 요양시설에 있었던 때보다는 잘 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7월부터 희망일터의 책임을 맡았다는 김 원장은 이제 절반의 성공이라고 한다.

김 원장은 “정신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은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직업재활시설이 아니어서 연계고용제도 대상 자체가 안 된다. 게다가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직업재활시설보다 인력과 운영비가 절반에 불과하다”며, “어떻게 3~4명의 인원으로 심리치료나 상담을 더 강화하라고 하면서, 실제 요구하는 내용은 일반 직업재활시설과 똑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기존 정부의 인식이 정신장애인의 경우 직업재활보다는 치료와 보호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며, “이제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제도적으로도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계고용은 부담금 납부 의무가 있는 사업주가 연계고용 대상 사업장에 도급을 하여 생산품을 납품받는 경우 연계고용 대상 사업장에서 종사한 장애인 근로자를 부담금 납부 의무 사업주가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여 부담금을 감면하는 제도이다.

문제는 대상 사업장이 ‘장애인복지법’ 제58조 제1항 제3호에 의해 설치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나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22조의4에 따라 인증받은 ‘장애인 표준사업장’으로만 한정된 것.

제도적 한계에 김 원장이 꺼내든 카드는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희망일터’였다.
최저임금 적용제외 장애인도 근로지원인을 신청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주민들을 설득한 결과 현재 5명이 활동하고 있다. 또 운영위원회에는 마을 이장과 강화군 내 가장 큰 정미소 운영 대표가 참여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편견 해소는 물론 축적된 농사 및 사업 경험 등이 희망일터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큰 힘이 된다고 한다.

희망일터 정미소 내부/사진=더인디고
희망일터 정미소 내부/사진=더인디고

김 원장은 취재와 인터뷰 말미에 “한 달에 벼 30톤을 도정해서 쌀로 팔아야 월급을 줄 수 있다. 농사의 특성상 수매 후 저장을 해야 하는데 그 저장창고가 이번에 서울시 기능보강 예산에서 빠진 것이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능보강과 더불어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을 위한 마을버스나 셔틀 차량이 배치되면, 정신장애인의 근무 여건뿐 아니라 생산성도 크게 나아질 것”이라며 “임기 동안 두 가지 일은 꼭 해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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