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말하다] 장애 정책에 막힌 잠재력 가진 정신적 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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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용하라(Hire me)
▲나를 고용하라(Hire me)/ⓒPixabay
  • 윤은호의 ‘왜 자폐당사자는 죄송해야 할까?’ 열한 번째 이야기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등록 자폐당사자와 미등록 자폐당사자 모두가 고용 정책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그래야 진정한 자폐당사자를 위한 고용 정책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앞 시간에 미등록 자폐당사자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설명했다.

그렇다면 자폐당사자, 더 나아가 지적당사자를 포괄하는 정신적 당사자 고용 정책은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첫째로, 정신적 당사자를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당사자들은 이 말을 읽고 내가 자폐옹호자라는 것을 부정하려 들겠지만, 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고인지・비-고인지 당사자들로 나누어 정책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다시 말해 고기능・저기능 자폐라는 비인격적인 구분에 반대하며, 여전히 이 구분이 사라질 수 있는 궁극적인 구조가 형성되기를 바란다.

자폐는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개별화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다. 또한, 모든 정신적 당사자들에게 일반인보다 더 많은 사회 접촉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동의한다. 그러나 같은 스펙트럼에서도 충분한 지원을 받는지, 받지 못하는지에 따라 다를 뿐이지 분명히 인지적인 능력에 따른 적응과 사회화 과정에 차이가 있다. 자폐당사자도 고학력·고직능 전문가가 될 수 있지만, 모든 자폐당사자가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비-고인지 ‘발달장애인’들이 필요한 도움을 지속해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현재의 발달장애인 복지가 애매한 위치에 있는 중증장애인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일단 이야기를 장애인으로 좁혀서 생각해 보자. 발달장애인 평생케어종합대책. 말은 좋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연구책임자로 일할 능력이 있는 발달장애인에게 ‘평생케어’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인정한다. 그러면 이들은 정부 장애인일자리 정책에서 열외가 된 채로, 일반인과 동일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다가 ‘다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 밖에서 신체・정신・사회적으로 건강한 웰니스(wellness)와 거리가 먼 삶을 마감해야만 할까?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세그먼테이션(segmentation, 분할・구분)의 제시가 필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장애 정책으로 많은 잠재력이 있는 정신적 당사자들이 나라 발전에 기여할 기회가 막히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들이 괜찮은 일자리를 가질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별도의 장애 정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 이것을 인정해야 등록장애인에게 맞춰진 교육, 취업 및 다른 정책을 수립해야 할 근거가 생기고, 이에 따라 기존의 장애 정책을 넘어서 미등록 장애인을 포괄하는 고등교육정책 및 고용 정책 수립이 가능해진다.

둘째로, 이와 별개로 기존 장애인 정책에 의한 장애인들의 일자리 질과 그에 따른 임금의 수급이 더욱 나아져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2~3차 당사국 보고서 161항에서 최저임금법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최저임금 적용제외 인가 기준을 강화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 수가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최근 MBC에서 보도했듯이 이러한 인가 과정에는 사업장의 의도적인 이익 창출을 위한 꼼수가 숨어있다는 점을 살핀다면, 해당 제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또한 2~3차 보고서 163~164항은 거짓말의 향연이다. ‘일반경쟁 고용시장이 경증장애인의 고용에 집중’하는 경향 때문에 중증장애인을 고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정신적 장애인을 배제하는 경향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그렇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고용률을 지적당사자와 자폐당사자를 분리하지 않고 표현하여 자폐당사자들의 더욱 심각한 고용 상황을 가렸다.

어찌 됐던 그래서 발달장애인에게 ‘보호된 고용환경’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그 환경에 고용된 대다수의 사람은 지적당사자인가? 자폐당사자들은 왜 ‘보호된 고용환경’ 대신에 베어베터, 오티스타 등의 사회적 기업에 고용되거나, 보호작업장 바깥의 취업을 선호하는 것일까? 오히려 이러한 혁신적 기업에 돌아갈 돈이 보호작업장에 돌아가고 있어서 장애인들이 인간 이하의 노동환경에서 시달리는 것이 아닌가?

대한민국은 현재 혁신적 기업가들이 수행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와 혁신 창출만이 ‘중증장애인 고용’의 현실화를 위한 유일한 대안임을 인식하고, 지난 최초 심의에 대한 최종견해(CRPD/C/KOR/CO/1) 50항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보호작업장 운영을 전면 중단하고, 그 지원금을 (부모 자조단체가 아닌) 자조모임과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기업으로 돌려야 한다. 그것이 발달장애인의 고용과 사회적 기업의 강화와 혁신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의 유일한 해법임을 인식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폐에 대해서 내가 품고 있던 생각 중 부끄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있다. 2013년 드라마 ‘굿 닥터’가 나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레지던트로 일하면서 의사의 품을 꿈꾸고 있는 시온이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는 이것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었다. 자폐당사자의 선호는 비교적 어렸을 때 형성되는데, 그렇다면 자폐당사자가 어린 시절부터 인체나 인체의 메커니즘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려우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몇 년 후에 깨졌다. 자폐 의사가 해외에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명의 의사가 남긴 글들을 읽으면, 그들의 어려움의 핵심은 자폐인으로서 가지는 감각 특성과 자폐 특성으로 인한 자신의 신경다양적 모습에 불과했다.

나는 언제나 자폐 특성을 지녔었다. … 하지만 내 아들이 자폐로 진단받았을 때에서야 나의 비관습적인 라이프스타일과 커리어 경로, 나의 다양함과 강도가 특이한 순차적인 관심 … 등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자폐당사자로 진단을 받거나 진단을 내리는 것은 의사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고립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자폐가 크게 잘못 이해되고 아직도 낙인이 찍혀진 장애(condition)이기 때문이다. 다른 자폐 의사들을 연결하고자 나의 퀘스트는 현재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서포트 그룹인 국제자폐의사회(Autistic Doctors International)를 시작하게 했다.
-메리 도헐티(Dr Mary Doherty) https://www.rcplondon.ac.uk/news/doctor-can-autistic-doctor

몇 주마다 다가오는 시험과 병원 공용 시설 내에서의 삶은 매우 큰 부담이 된다. 다른 동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매일 나 자신을 숨겨야(masking) 한다는 추가적인 정신적 업무 부담 때문에 쉽게 지치곤 한다. 소음 민감성과 함께 기력이 소진될 수 있는 부분이다. 많은 자폐당사자들이 정신보건적 장애와 특수학습장애를 가지고 있다. … 또한 편견에 대한 공포와 비장애 의사들에게 맞춰진 연수과정을 따라가기 위한 지속적인 싸움이 있다.
-니나 펄비스(Nina Louise Purvis, PhD)
https://theconversation.com/autistic-doctors-were-not-exactly-as-portrayed-on-tv-141157

혹시나 자폐당사자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는 분들에게는 WLDO라는 광고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한 ‘하룻밤에 미국 법을 바꾼 레스토랑’이라는 클립을 소개하고 싶다. 미국 다운증후군 소사이어티에서 진행한 두 개 캠페인을 한국어로 정리한 이 영상은 정신적이자 가시적인 다운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이 미국에서 얼마나 성공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노력으로 차별적인 제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쯤 되면 분명해진다. 해외에서는 자폐를 포함한 정신적 장애인 중에 연구자도 많고, 의사도 있고, 교사도 있고, 프로그래머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없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확인해 나가는 작업을 지금까지 거쳤다. 이제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 한국의 첫 자폐 연구자이자 지식생산자로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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