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내가 당신에게 가 닿을 방법_진정한 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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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보리 예고편 유튜브 화면 캡처
영화 나는보리 예고편 유튜브 화면 캡처/https://www.youtube.com/watch?v=phXABzuGj-c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영화 ‘나는보리’(2018, 김진유 감독)에서 보리는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비장애인 자녀)다. 주로 수어로 소통하는 보리네 가족의 일상은 마치 소리를 제거한 비디오 화면 같다. 그러나 소리만 없을 뿐 다른 가족과 별다르지 않은 평범한 가족이다.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다른 집 아이와는 달리 보리에게만 주어진 유일한 의무가 하나 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짜장면을 시켜 먹을 때 가족을 대신해 주문 전화를 하는 일인데 이 역시도 각자 다른 가족의 역할 중 일부일 뿐 그리 특별할 건 없다.

보리에게는 아주 특별한 소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기도 다른 가족들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보리에게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결핍’의 의미가 아니다. 엄마랑 아빠, 그리고 동생만이 갖는 그 특별한 세계에 보리 자신만 들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 그래서 보리는 그 세계에 온 가족이 함께 있고 싶다. 자기만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오히려 소외감마저 느낀다.

날마다 등굣길에 사당에 들러 아무리 정성 들여 간절히 기도를 올려 봐도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자 평생 물질한 해녀 할머니가 청력을 잃었다는 어느 날의 뉴스를 보고 보리는 청력을 잃어버리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데… 안타깝게도(?) 소리를 잃을 수 없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잃은 척하며 가족들만 가진 그 소리 없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는 수밖에…

이 영화는 혼자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코다, 보리의 들리지 않는 세계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담았다.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감독은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들리는 세계는 정상적이고 좋은 세계, 들리지 않는 세계는 불완전하고 불행한 세계로 그리지 않았다. 자막도 그동안 영화들의 자막과는 달리 소리를 듣는 사람의 언어 위주로 하지 않았다. 수어 체계에 따라 조사 없이 단순한 명사의 나열처럼 이루어진 자막은 훨씬 수어의 느낌이 살아있다. 단어만 나열해도 충분히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자각하면서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음을 자막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게 된다.

여기 소개할 또 다른 작품은 넷플릭스 드라마 ‘데프 유(Deaf U)’이다. ‘데프 유’는 갤러뎃대학교에 다니는 여섯 명의 청각장애인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드라마다. 갤러뎃대학교(Gallaudet University)는 워싱턴 D.C에 위치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유서 깊은 사립대학교로 코다(CODA)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마일리 브라더(Millie Brother)가 이 대학 출신이며 윌리엄 스토키(William Stokoe)가 1960년대 처음으로 수화를 언어학적 관점에서 연구한 곳이기도 하다.

사이예나, 로드니, 데이퀸, 알렉사, 레나테, 돌턴, 이 여섯 사람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와 인터뷰를 보면서 미국식 수어와 청각장애인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만 수어일 뿐이지 연애하고 클럽 가고 일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냥 보통의 미국 젊은이들의 일상과 다를 바가 없다. 언어 장애 때문에 겪는 불편함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굳이 따로 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스럽게 담긴 일상에서 시청자가 보이는 대로 알아서 느끼면 된다.

사이예나는 많은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이며 수어와 구어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청인과 농인의 세계 양쪽을 다 잘 이해한다. 또 그 두 세계 사이에서 농문화가 가진 보수성과 정체성을 고민하기도 한다. 레나테는 청각장애 외에 레즈비언이라는 소수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로드니와 데이퀸은 같은 흑인이면서도 그 가족환경과 경제적 여건이 달라 같은 인종이면서도 계층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출연하는 모든 이들이 청각장애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각자 달리 가지고 있는 젠더와 인종, 계층 등의 또 다양한 입장차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내게 인상 깊게 다가온 장면은 사이예나와 레나테가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다. 서빙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물병을 탁자 한가운데 놓고 갔는데 사이예나와 레나테가 한가운데 놓인 물병을 보며 ‘농인 친화적’이지 않다며 불만스럽게 수어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병이 둘 사이 정 가운데 있으면 수어로 대화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또 농인 친구들 여럿이 한 식당에 둘러앉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도 그들은 ‘농인 친화적’이지 않은 가구 배치 때문에 불만을 토로하며 서로의 수어가 잘 보이도록 의자와 탁자의 위치를 다시 배치한다.

그 장면들에서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동안 누누이 해온 ‘장애친화적’이란 말을 나는 그 장면들에서 전혀 떠올리지 못했고 심지어 그들이 불편해하는 부분을 거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거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휠체어 접근성을 이야기하며 휠체어의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편리하지 않은 구조에 대해 얼마나 ‘장애친화적’이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해왔던가. 그런데 그 장면들에서 그들에겐 농인 친화적이지 않은 불편함이 내 눈엔 하나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다른 장애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모르는 게 더 많은 무지한 사람이었던 거다. 그러나 그 무지가 마냥 부끄럽기만 하지 않은 이유는 그 부끄러움이 새로운 공감과 이해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이에게 무지했던 부끄러움으로 새해에 되묻는다. 어떻게 더 잘 소통할 것인가…

입장도 형편도 상황도 모두 다른 각 양 각 색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소통할 것인가. 그 대답을 위의 두 작품을 통해 건네고 싶었다. 영화 ‘나는보리’와 ‘데프 유’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방법이 달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소통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리가 소리를 잃고 싶었던 이유는 가족과의 소통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그저 가족이 느끼는 것들을 더 깊이 더 세밀히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데프 유’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멀고도 낯선 어느 외계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이 시대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만 소통하는 방법이 조금 다를 뿐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그들의 언어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보리… 감독은 굳이 왜 이 제목에 띄어쓰기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것을 나는 보리, 나는(내 이름은) 보리라는 의미로도 읽었고 나는 보리, 나는 보겠다는 의미로도 읽었다. 영화 ‘아바타’에 바로 이 비슷한 대사가 나오지 않던가. ‘I see you’라고.

I see you… 서로가 달라도 우리는 얼마든지 서로에게 가 닿을 수 있다.

[더인디고 THE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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