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입을 때와 벗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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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에 오렌지색과 연두색 장갑이 놓여 있다.
ⓒPixabay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시간이 겨울의 한가운데를 향하는 요즘 온도계의 눈금이 내려가는 만큼 사람들이 입은 옷의 가짓수와 두께는 늘고 있다. 추위를 잘 타지 않는 내 손에도 장갑이 끼워져 있을 정도이니 겨울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외출했다가 실내로 들어올 때 외투와 방한 장비를 벗어 놓는 데만 해도 한참이 걸린다.

겹쳐 입고 싸매고 덧대어 입어도 겨울이 더워질 리는 없겠지만 새롭게 출시되는 기능 좋은 옷과 용품은 겨울을 점점 살만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다른 이를 따라 해 보기도 하고 새로운 정보를 찾기도 하면서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경험이 되고 삶의 지혜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겨울처럼 추운 날에만 적용할 수 있는 제한적 지식일 뿐이다. 만약 뜨거운 여름날 쾌적한 삶을 위해 똑같은 방법을 시도한다면 몇 초도 되지 않아 끔찍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시원한 소재의 옷은 요즘 같은 한파에 몇 겹 겹쳐 입어도 별 소용 없는 천 조각일 뿐이지만, 불과 몇 달 전에는 두꺼운 패딩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다.

끝없이 겹쳐 입는 것도 최대한 벗어놓는 것도 하루하루 달라지는 날씨 속에서 절대적인 답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가치는 언제나 진리일 수는 없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도 계속 먹는 것은 먹지 않는 것보다 못하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느껴지는 음식도 그 느낌을 항상 전해주지는 않는다.

운동은 건강의 보증수표인 것처럼 말하지만 적당한 쉼이 답인 순간도 존재한다. 네 번의 다른 계절을 보내고 새로운 봄을 기다리는 요즘 변화무쌍했던 여러 날씨만큼이나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경험과 새로운 만남 속에서 또 다른 삶을 배웠음을 고백한다.

가르침의 대상이라고만 여겼던 어린 제자에게서 스승을 보기도 했고 도와주고 싶었던 동료에게 큰 신세를 지기도 했다. 내려놓는 순간 얻기도 했고 꼭 쥐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순식간에 놓치기도 했다.

세상의 날들은 고정되지 않고 여러 날씨를 품고 있기에 이삭을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는다. 푸르른 녹음과 벌거벗은 나뭇가지는 어느 것이 더 옳지도 않고 어느 것이 더 틀리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그때 그 시간에 맞춰서 최선을 다해 변해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항상 부족하지도 않지만 언제나 잘나지도 않았다. 함께 사는 우리가 모두 다른 모습을 가진 것은 우리가 사는 시간 속에 그만큼의 다른 가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배워야 하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

오늘 내가 옳을 수 있지만 언제나 내가 옳을 수는 없다. 입어야 할 때도 있지만 벗어야 할 때도 있다. 지금까지 지내온 날과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하는 요즘 내가 마주하게 될 또 다른 사람들과 그만큼의 가치들에 겸손하게 배움을 청하고 싶다.

겨울에 벌거벗거나 여름에 꽁꽁 싸매는 부끄러운 고집쟁이가 되지 않으려면 언제나 다름을 향해 유연하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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