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낮은 시선으로부터] 눈사람을 왜 부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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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Pixabay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위원]

눈길 위의 사람

눈이 부쩍 잦은 겨울이다. 연초부터 내린 폭설에 도로는 마비되었지만, 다행히 사람들은 나름대로 눈을 즐겼던 듯하다. 소복하게 눈 쌓인 골목마다 사람들이 만든 눈사람이 지천이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뚱뚱한 몸피에 함지박만 한 머리를 얹은 전통적인 눈사람에서 겨울왕국의 올라프를 재현하는가 하면 스노우 볼 메이커로 찍어낸 눈오리들이 골목 안을 빼곡하게 늘어선 풍경을 보면서 그 재기발랄함이 놀랍고 내리고 나면 천덕꾸러기일 수밖에 없는 눈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여간 부럽기도 했다.

이용석 편집위원
더인디고 편집위원

1년 가까이 시달린 코로나19 감염병 창궐 상황에 지친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일 수도 있을 테지만 까짓, 무슨 대수일까? 나 역시 지인들과 눈을 흠씬 맞고 스스로 눈사람이 되어 철딱서니 없는 늙은 장난꾸러기처럼 나부댔던 폭설 있던 저녁을 기억한다. 어디 지치고 피곤하게 하는 게 창궐하는 감염병뿐일까, 일상을 사는 일은 결국 사람을 견디는 일이고 사람을 견뎌내면 또 상황이 괴롭히는 것이 세상사 모든 사람이 겪는 일이겠다.

폭력, 진부하지만 절실한 결별의 이유

며칠 전, 우연히 한 여성의 서글픈 이야기 하나를 읽게 되었다. 폭설이 내린 다음 날 남자친구와 함께 거리를 걷는데, 남자친구가 길가에 놓인 아담한 눈사람을 사정없이 걷어차 부숴버리더란다. 그러더니 의기양양 웃는데 그 모습을 본 글쓴이는 사랑하는 남자친구와의 결별을 결심했다는 사연이었다. 누군가 언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눈을 굴려 만들었을 저 귀여운 눈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수며 즐거워하는 천진난만한 폭력성에 놀라웠고, 해맑은 웃음으로 폭력성을 인정받으려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소름끼쳤다는 것이다. 왜 부수느냐는 힐난에 도리어 뭐 이런 사소한 장난에 정색하느냐며 이죽거리는 남자친구의 표정이 역겨웠다는 글쓴이는 거리의 눈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으로 발로 차 부술 수 있다면, 동물을 때릴 수 있고, 마침내 그 폭력의 방향이 사람이나 글쓴이 자신에게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공포감에 몸서리를 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눈사람을 만들 만큼 제법 푸짐하게 내린 그날의 눈이 사소한 폭력성을 장난처럼 드러내는 남자친구와 결별할 기회를 준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했다는 이야기였다.

폭력은 가해자인 강자와 피해자인 약자 간의 지나칠 만큼 깊고 넓은 해석의 차이를 보인다. 강자인 가해자에게 폭력은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장난일 수 있지만, 피해자인 약자에게는 끔찍한 고통이다. 눈사람을 부수는 남자친구를 보고 결별을 결심한 글쓴이는 눈사람을 부수는 행위가 그저 사소한 장난이 아닌 폭력의 시작일 수 있다고 약자로서 직감한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눈사람을 발로 차 부수는 짓은 가해자인 강자의 행위이다. 그렇기에 부서지고, 깨지는 눈사람은 피해자인 약자이며 두 관계 사이에는 폭력이란 위계의 조건이 생긴다. 이를테면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는 아이들에게는 장난이지만 돌을 맞는 개구리에게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구체적인 폭력이 되는 것이다. 강자가 가해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피해자가 상대적인 약자이기 때문이며, 이 대단찮은 폭력의 공식은 사람 간의 관계에서는 분명하게 규정되며 말이나 몸짓 혹은 눈빛을 통해서도 변주되고 강화된다.

진부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여성을 비롯한 많은 사회적 약자는 살아서도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누군가는 살아서도 목소리가 들리지 못한다. 반면 권력은 죽어서도 목소리를 얻는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는 얼굴과 부당하게 노출되는 얼굴, 사라지는 이름과 부당하게 공개되는 이름, 그리고 묵살당하는 목소리가 있다. 폭력은 진부하게 반복되는데, 이에 대한 저항은 언제나 진부하지 않다.”

예술사회학 연구자인 저자 이라영은 자신의 책 <폭력의 진부함>에서 진부하게 반복되는 폭력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이라영은 복잡한 서사를 이해받는 권력자들과 달리 소수자와 약자들은 ‘보통명사’로 흔히 뭉뚱그려지고, 개인으로서의 인격을 박탈당한 ‘보이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눈사람 걷어차기는 남자친구에게는 사소한 장난이지만 그걸 지켜보는 글쓴이에게는 결코 진부하지 않은 폭력의 전조이다. 결별 선언이 과민한 반응이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인간’인 약자에게는 진부한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일지도 모른다. 한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물었다. 다시 묻고 싶다. 눈사람 함부로 차지 말라고, 그 사소한 장난이 진부한 폭력의 시작임을 우리는 서늘한 공포로 느낀다는 걸 아느냐고!!!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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