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장연, 오이도역 장애인리프트 추락 참사 20주기 추모
- 이동권은 자유권, 오이도역에서 서울시청까지… 지하철・버스 타고, ‘머나먼 권리’ 이동권 투쟁
- 박경석 대표, 20년 전 “황망”, 그리고 오늘 “분노”와 “희망” 교차
“20년 전 오늘, 오이도역에서 리프트가 추락해 장애인 한 명이 죽고 다른 한 명이 크게 다쳤다. 만든 지 6개월도 안된 리프트였다. 당시 같이 싸우자고 해도 같이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몇 명 모아서 지하철로로 내려가고 버스를 점거하고 1년 내내 싸웠다. 2004년도 되어서야 대한민국 국어사전에 이동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게 우리나라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권리가 만들어지게 된 시작이다”
2001년 1월 22일은 설을 맞아 역귀성한 장애인 노부부가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해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이 날을 계기로 소수의 장애인들이 ‘장애인이동권연대(이동권연대)’를 결성, 지난 20년 간 ▲지하철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 도입 등을 요구하며 이동권 투쟁을 해왔다.
오이도역 장애인리프트 추락 참사 20주기와 장애인 이동권투쟁 20주기를 맞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단체 활동가들이 22일 오이도역사에 모여, 장애인 이동권 완전 쟁취를 위한 결의를 다졌다.
전장연 박경석 대표는 “20년 전 이 자리에 왔었을 때 사건 현장에는 경찰 한 두 사람만 있고 아무도 없어 ‘황망’했다. 그래서 아주 작은 인원이지만 몇 사람으로 시작해 20년을 싸워왔는데, 여전히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이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이 사회에 ‘분노’가 느껴진다”고 강하게 말했다. 또 “그 때는 열 명도 안됐는데, 지금은 다섯 명이 오십 명이 되고 그 오십 명이 뭉쳐 싸우면 오천 명, 오만 명의 힘이 되는 이동권 투쟁으로 발전하는 ‘희망’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표는 “장애인 이동권은 사회권이냐 자유권이냐의 논쟁이 아닌, 누구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개인적 권리이자 자유권이다”며 “그런데 왜 우리가 국가와 지자체에 구걸해야 하나”라며 “국가가 ‘돈이 없다’해서 20년을 기다렸다. 그러면 충분히 기다렸다. 또 20년을 기다려 40주년 때도 이 자리에는 올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의 이익만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나이 먹는 시대에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같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장애인이 또 ‘먼저 투쟁’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지난 20년의 투쟁은 서울지하철 278개 역사에 1동선 엘리베이터 설치율이 13.74%에서 255개 역사인 91.73%로 늘어났다.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 도입의 경우 50%를 넘기는 등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전장연은 서울시가 약속한 22년까지 서울교통공사 관할 모든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100%를 1동선으로 설치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노선버스 대・폐차시 저상버스 도입의무화와 특별교통수단 지역 간 이동권을 요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장연 활동가들은 오이도역에서 서울역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열차를 점거했다. 전철 관계자가 운행이 지연된다고 하자 “우리는 20년을 기다렸는데 5분을 못 기다리냐”며 꼬집기도 했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이동권 보장을 알리기 위해 구호가 적힌 전단지를 승강강 스크린도어와 전철 안 등에 붙이며 1시간 넘게 걸려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이후 활동가들은 장애인 이동권 완전 쟁취를 위해 서울역에서 시청까지 버스타기 행동에 나섰다.
[더인디고 THEIND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