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자의 색연필] 1등급 아이, 꽃 같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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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아니면 오른쪽으로 가야 할 지, '선택(choice)'이라는 푯말이 서있다 / 사진 = 픽사베이
왼쪽으로 아니면 오른쪽으로 가야 할 지, '선택(choice)'이라는 단어가 쓰인 푯말이 서있다 / 사진 = 픽사베이

[더인디고 = 김민석 집필위원] 최근 중학교 입학을 앞둔 자녀의 학업성취도 및 진로를 고민하며 한 유명학원과 대안학교에 가서 상담했다. 임신 7개월째 이른둥이(미숙아)로,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날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던, 삶과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겼던 아이들이었기에 나와 아내는 늘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머님, 남자아이만 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민석 교수
김민석 더인디고 집필위원

쌍둥이 남매가 4살이 되었을 때 여느 아이들처럼 어린이집에 보내기 위해 집 근처 어린이집에 상담을 하러 갔다. 상담을 마친 후 원장님은 “어머님, 남자아이만 맡을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셨다. 어려서부터 뇌출혈과 장 괴사, 청력 손실, 심한 폐렴, 심장판막증 이상 등 셀 수 없이 많은 질병을 달고 살았던 아이들이었는데 그나마 아들은 많이 좋아졌지만, 딸은 후유증으로 몇 가지 장애를 갖게 되었다. 상담을 마친 어린이집 원장님은 기존 아이들의 생활 패턴과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현실적인 돌봄 환경을 고려했을 때, 잘 걷지 못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서툰 딸은 입학이 어렵다는 의견을 주신 것이다. 결혼 전까지 유아교육 관련 기관에 몸담았던 아내는 결국 직접 어린이집을 설립하고 운영을 하며 우리 아이들을 함께 돌보게 되었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는 부모의 생각을 합리화하기 위한 주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되었다. 아이들이 7살이었던 때부터 약 1년간 전국의 초등학교를 찾아다녔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국제학교부터 대안학교까지 주위의 추천을 받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매주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전국을 다녔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한 사립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수원에 살던 우리는 아이들의 학교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했다.

새로 입학한 학교는 선생님도 좋고, 학교 시설도 좋았다. 아이들 한명 한명에 관심을 두고 사랑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해 주셨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후에는 전학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의 방침과 제도, 선생님들의 교육은 너무나 훌륭했지만, 이 학교의 1~2학년 대부분의 학생이 수업 후 영어학원과 중국어학원, 수학학원과 다양한 예체능학원에 다니며 밤 11시가 되어야 귀가를 했고, 그러한 삶은 우리에게도 강요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학부모들은 한결같이 자녀들이 다니는 학원에 대해 자랑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학원의 정보를 감추고자 노력하였다. 하루는 아내가 학교에 상담을 다녀왔다. 이때 선생님으로부터 “왜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으시죠?”라는 질문을 들은 아내와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쉬는 시간에 영어와 중국어로 대화하는 아이들 틈새에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우리의 주문은 부모인 우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때 영어를 못 하고 중국어를 잘 못하던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라도 외국어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 녀석이 진지하게 말했다. “아빠, 저도 영어학원 보내주세요. 밤 11시에 와도 상관없어요”

툴툴 털고 자연으로

고민 끝에 힘들게 입학했던 학교를 떠나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학교로 전학하기로 했다. 마침 아토피 증상이 심해진 아들 녀석 때문에 더는 도시생활이 힘들어진 것이 전학을 결심하게 된 큰 이유이자 주위 사람들에게는 변명의 구실이 되었다. 시간을 내어 다시 전국의 학교를 알아보았다. 특히 아토피에 좋은 환경의 학교를 고르는 것이 중요했다.

결국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전교생이 60여 명 남짓 되는 학교로 결정하고 전학을 했다. 수업 중 고구마를 심고 캐며, 학교 정문만 나서면 논과 밭이 있고, 집 앞에 감과 대추가 대롱대롱 달린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학교였다. 신기하게도 시골에 머무는 동안 아토피 증상이 많이 완화되었다.

아이들은 네 등급으로 나눌 수 있어요 vs. 아이들은 꽃과 같아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을 근처 중학교로 진학시키고자 했으나, 필자의 직장이 서울인 관계로 계속해서 주말부부를 하기가 쉽지 않아서 다시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도시로 왔다. 그리고 중학교 입학 준비를 위해 유명한 학원에 가서 일명 ‘레벨 테스트’를 받았다. 아이들이 레벨 테스트를 받는 1시간 동안, 학원의 원장님은 나와 아내와 상담을 해주시겠다며 교육의 필요성, 학원의 특징, 최근 학습 트렌드를 설명해주셨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스카이캐슬의 입시 코디가 떠올랐다. “아이들은 네 등급으로 나눌 수 있어요”, 가장 낮은 등급은 실업계에 가야 할 학생, 두 번째 등급은 지방대에 갈 학생, 세 번째는 인서울 대학(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학생, 마지막 최고 등급은 최우수 대학의 좋은 과에 진학할 수 있는 학생이라는 것이다. 비록 짧은 테스트이지만 많은 학생이 참여한 레벨 테스트이므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정확한 결과라며 자신감이 넘치는 설명을 이어가셨다. 그리고 한 등급 올리는데 최소 2~3년이 걸린다며 빨리 시작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참고로 레벨 테스트는 유료였다.

다음날 용인에 있는 대안학교에 상담을 하러 갔다. 아직 1월인데 이미 학기가 시작되어 학생과 선생님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조용한 공간에서 한 시간이 넘는 상담이 진행되었다. 학교 설립의 취지, 학교의 교육과정, 학생들의 생활, 졸업 후 진로 등이 주요 질문과 답변이었다. 이때 상담을 해주신 선생님의 말씀 중 기억나는 것이 있다. “학생들은 꽃과 같아요. 어떤 꽃은 봄에 피고… 꽃마다 만개하는 시기가 모두 다르죠”라는 설명과 함께 아이들의 ‘틀림’이 아닌 ‘다름’을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에 대해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또 어떤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상담하는 동안 아이들을 등급으로 나누거나 차별하는 단어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검정고시를 봐야 하는 불편함, 대안학교 출신으로서 사회적 시선 등은 여전히 남아있는 숙제임을 인지하고 왔다. 기존의 교육과 대안 교육의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이틀이었다. 마치 냉탕과 온탕에 번갈아 몸을 담근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전혀 다른 상황과 분위기였다.

결국 결정은 우리의 몫

어린이집을 가기 위해 상담을 했을 때부터, 중학교에 가기 위해 상담을 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장애가 있어서 안 된다. 영어와 중국어를 못 하면 안 된다. 1등급의 학생이 되어야 한다. 꽃과 같은 아이들이다. 수많은 의사결정의 갈림길에서 조언해주시는 분들이 많지만, 최종 결정은 우리가 해야 한다. 장애가 있어서 어린이집에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직접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해결했다. 영어와 중국어를 못 하면 안 된다고 할 때는 기본적인 것은 교육하되 일부는 과감히 포기하기도 했다. 이제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1등급 학생을 만들기 위해, 정확히 표현하면 1등급 학생의 부모가 되기 위한 결정을 할지, 꽃과 같은 아이들의 부모가 되기 위한 결정을 해야 할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매우 거창하고 어려운 결정을 앞둔 사람처럼 비칠 수 있으나, 사실 그렇지도 않다. 이틀간의 만남과 생각의 시간을 통해 우리 아이들을 현재와 미래를 위해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쉬운 결정도 없을 정도로 말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앙자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 소장, 경영학 박사), 대학에서 환경을, 대학원에서 마케팅과 CSR, 지속가능경영을 공부하고, 삼성에버랜드, 삼성전자, LG전자에서 일했다. 현재는 연구소와 대학교에서 ‘나은 삶을 함께 만들기 위한 방법’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준법진흥원 원장으로 윤리경영, 준법, 컴플라이언스 등 ISO 인증 및 교육을 하고 있다. e-mail: lab.sustain@gmail.com / kazak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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