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모두가 이기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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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도 올바른 방법, 오른쪽도 올바른 방법을 나타내는 표시
ⓒPixabay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슈퍼맨이랑 배트맨이랑 싸우면 누가 이겨?”
“600만 불의 사나이랑 소머즈랑 싸우면 누가 이겨?”
“사자랑 호랑이랑 싸우면 누가 이겨?”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어릴 때 이런 질문 한두 번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심지어 증명할 수도 없으면서 이긴다고 우기는 승자 편이 되어 상대편과 말싸움을 벌인 적도 있을 것이다. 누가 이기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한 문제라고 그렇게 핏대를 높였는지 모르겠다.

그뿐인가. 이거랑 저거 중에서 뭐가 더 좋아?, A랑 B 중에서 뭐가 더 중요해?… 이렇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질문들은 또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일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일수록 최고 우위에 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사람들의 속성인가 보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랑 아빠 중에 누가 더 좋아?” 같은 말도 안 되는 질문으로부터 쓸데없는 양자택일의 강박을 키워온 우리가 아닌가. 심지어 짜장인지 짬뽕인지, 부먹인지 찍먹인지조차도 영원한 미제로 남겨두지 않았던가.

그럼 이런 질문들은 어떤가. 개인의 알 권리와 사생활을 보장받을 권리는 어떤 것이 우선이어야 하는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중 어떤 것이 더 존중받아야 하는가?,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과 활동지원인의 권리가 충돌할 경우 어떤 권리가 우선인가? 여성의 권리와 엄마의 의무 중 무엇이 우선인가?

복잡다단한 이 시대에 누구나 한 번쯤 질문해 보고 고민해 보는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어떤 질문은 질문 그 자체로 중요한 정답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더 큰 사유의 세계로 향하는 작은 문이 되기도 한다. 특히, 거미줄처럼 교차하는 다양한 개인의 권리와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질문과 답을 내놓아야 할까.

지난 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2017, JTBC)의 한 장면을 통해서 그런 질문을 한 번 해볼까.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한 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멜로드라마다. 단지 멜로에 그치지 않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통해 우리 사회가 경험한 트라우마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드라마였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 13화에는 특별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웹툰 작가인 완진이 친구인 문수와 강두 커플을 위해 자리를 피해 주려고 밖으로 나오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웹툰 작업을 돕는 진영과 함께 완진이 휠체어를 타고 밤길을 다니다가 어느 디저트 카페에 들어서려다 문제가 발생했다. 카페 입구에 턱이 있어 휠체어가 못 올라가는 상황이 된 것이다. 카페 문을 열고 휠체어를 들어 올리지 못해 한참을 쩔쩔매고 있는데 이를 본 카페 사장이 걸어 나온다.

사장: 저, 죄송한데 카페 문을 이렇게 열어 두시면 손님들이 추우니 문을 좀 얼른 닫아 주세요.

완진: 사장님, 근데 여기 원래 경사로 있지 않았나요?
사장: 네, 있었는데 손님들이 턱에 걸린다고 불편해하셔서 없앴어요.
진영: 아니, 있는 경사로도 없애 버리면 휠체어 탄 분들은 이 카페에 어떻게 옵니까?
사장: 저희 카페에 장애인분들은 잘 안 오세요~
진영: 이러니까 안 오는 게 아니라 못 오는 거죠!!…

대충 이런 상황이 전개되는 장면이었다. 장애인이 경사로가 없어서 카페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을 드라마가 꽤 섬세하게 잘 짚어 주는구나 생각할 즈음 이런 장면이 이어진다.

진영과 카페 사장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가타부타 말을 섞지 않고 도도하게 돌아선 완진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이렇게 말한다.

“이 건물 아래층 디저트 카페 계약기간이 얼마나 남았죠? 여기 재계약하지 말아 주세요~”

곁에서 듣고 있던 진영이 깜짝 놀라 묻는다.

“누나 건물주셨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이 장면이 통쾌하고 시원했을까? 있는 경사로도 없애 버리고 장애인 손님 하나쯤은 못 들어와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개념 없는 카페 사장을 시원하게 내쫓을 수 있는 장애인 건물주라니… 한 상위 1%쯤 되는 장애인 건물주라면 그런 속 뻥 뚫리는 시원한 복수의 한 방을 날릴 수는 있겠지.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것은 복수가 아니다. 그것이 아무리 정당한 이유라 해도 내가 가진 돈과 권력이 누군가를 강제로 짓누르고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예쁘게 포장하더라도 그것은 저열한 갑질에 불과할 뿐이다.

조물주보다 대단하다는 건물주의 힘으로 이 드라마처럼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대부분의 가난하고 힘없는 장애인들은 어떻게 해결하는가? 번거롭게 민원을 넣고, 인권위에 제소하고, 피 끓는 시위와 연대투쟁을 하고… 이렇게 지난하고 힘든 싸움을 치르고 나서야 겨우겨우 이뤄낼 수 있는 일이다. 싸워도 얻어내지 못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 현실이니 이렇게 시원한 한 방을 꿈꿔 볼 수도 있겠지. 그러나 완진이가 건물주로서의 ‘손쉬운 해결’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당당한 장애인 고객으로서 정정당당하게 해결하는 과정이 그려졌더라면 현실에 대한 보다 더 현명한 제안이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을 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렇게 장애인의 권리와 임차인의 권리가 충돌할 때 어떤 권리가 우선해야 하는가?

이 장면에선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겠다. 의미 있는 질문을 던져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렇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양자택일 식의 질문과 답을 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약자의 권리와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이 우위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답은 무의미한 논쟁만 낳을지 모른다. 어린 시절 우리가 슈퍼맨과 배트맨의 싸움을 두고 그랬던 것처럼.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들 속에서 수없이 얽히고설킨 권리와 권리의 충돌이 내는 소음 가득한 요즘이다. 그럴 때 우리의 질문은 이제 슈퍼맨과 배트맨 중 싸우면 ‘누가’ 이길까가 아니라 ‘어떻게’ 슈퍼맨과 배트맨이 싸우지 않아도 될까를 질문해야 할 때가 아닐까. 사실 슈퍼맨과 배트맨은 애초에 싸울 필요가 없었다. 이 세상에 다양한 약자 간의 권리 충돌도 그런 것은 아닐까. 누구도 지지 않고 누구도 빼앗기지 않아도 되는 공정한 저울추의 지점을 함께 찾는 일, 우리의 질문은 이제 그 지점을 묻는 것이어야 한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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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72@naver.com'
이은미
3 years ago

“누구도 지지 않고 누구도 빼앗기지 않아도 되는 공정한 저울추의 지점을 함께 찾는 일, 우리의 질문은 이제 그 지점을 묻는 것이어야 한다.”

방금 이런 내용의 글을 읽고 있었는데 작가님 글을 보니 가슴이 쿵쿵~ 울리네요^^
어떻게 서로 싸우지 않아도 될까를 질문해야 할 때 자꾸 엉뚱한 질문이 계속 되는 현실이 안타깝고 속상해요.

드라마 속 건물주가 쉽게 해결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드라마네요.ㅎㅎ가진 자들의 문제해결방식은 참 쉽고 단순하군요. 웃픈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