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한국수어의 날 기념식, “수어는 전 국민 잇는 동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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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한 내빈들이 'I LOVE YOU' 수어를 표현하고 있다. 좌측부터 농아인협회 윤은희 사무총장, 문체부 국어정책과 김지희 과장, 국립국어원 소강춘 원장, 문체부 오영우 제1차관, 농아인협회 변승일 회장, 농아인협회 주신기 고문, 농아인협회 김정선 부회장, 수어통역센터중앙지원본부 정희찬 본부장,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강미영 학예연구관 / 사진 = 더인디고
주요 참석인사들이 1부 행사 후 'I LOVE YOU' 수어를 표현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좌측부터 농아인협회 윤은희 사무총장, 문체부 국어정책과 김지희 과장, 국립국어원 소강춘 원장, 문체부 오영우 제1차관, 농아인협회 변승일 회장, 농아인협회 주신기 고문, 농아인협회 김정선 부회장, 수어통역센터중앙지원본부 정희찬 본부장,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강미영 학예연구관이다. / 사진 = 더인디고
  • 코로나19로 차분한 분위기 속 축하와 각오 새롭게 다져
  • 수어법 이후 농인 삶 달라진 것 없어… “청와대 나서야”
  • 농아인협회, “2023년 WFD 총회까지 국민적 공감대 이어갈 것”

“가족 중 농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모든 청인 가족이 수어를 배워 소통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농인이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의사소통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세상이 반드시 오길 기원합니다.”

지난 3일 수어통역사 이영경 씨가 ‘한국수어의 날’ 기념식에서 한 말이다. 이 씨는 청인이다. 35년 전 수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며 배울 당시 농인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두 딸도 청인이지만 아빠와의 대화를 위해 모두 수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가족들끼리는 어떠한 벽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행복한 모습을 짓는 남편을 보며 장벽 없는 세상이 오길 소망한다고 했다.

제1회 한국수어의 날 기념식에서 수어통역사 이영경씨가 영상으로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 = 더인디고
제1회 한국수어의 날 기념식에서 수어통역사 이영경씨가 영상으로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 = 더인디고

한국농아인협회(농아인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공동 주최한 ‘제1회 한국수어의 날’ 기념식이 지난 3일 코로나19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막을 내렸다.

‘한국수어의 날(수어의 날)’은 지난해 여러 차례 의견수렴 끝에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일인 2월 3일로 결정, 이후 법 개정을 통해 공식 기념일로 지정됐다. 이번 주 7일까지는 수어 주간이기 하다.

올해 첫 기념식은 ‘함께하는 한국수어, 다가가는 한국수어’라는 주제로 농아인협회 변승일 회장과 문체부 오영우 제1차관 등 50명 이하만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농아인인협회는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인원은 최소화하는 대신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현장의 분위기는 한국수어도 동등한 국어로 인정한 ‘한국수화언어법(수어법)’에 이어 수어의 날까지 마련되면서, 참석자들은 감격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아쉬운 표정도 역력했다. 축제와 같은 날에 감염병이 끝나지 않은 상황도 그러하거니와 수어법 제정 이후 과연 농인의 삶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변승일 회장은 “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언어로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싸운 끝에 수어법에 이어 수어의 날까지 제정할 수 있게 되었다”며 그동안의 소회를 밝혔다. 또 “이날이 있기까지 힘을 모아준 농인과 국회, 정부 등에 감사하다”면서도 “1회 수어의 날을 계기로 전 국민적인 관심과 방송서비스 개선 및 수어통역서비스 등 정책적 지원이 더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영우 차관은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든 계기가 되었다”며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동아줄인 만큼, 수어가 농인과 농인, 청인과 농인을 있는 단단한 동아줄이 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농아인협회는 2016년 수어법 제정 전후의 현실 등을 극단 핸드스피크의 축하공연과 주제발표 및 자유발언 등으로 재인식하게 하는 순서도 마련했다.

이미혜 전 농아인협회 사무총장은 ‘한국수어의 날 제정까지 걸어온 길’이란 강연에서 “2000년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정을 계기로 비로소 농인의 언어적 권리 확보를 위한 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면서 “수화언어법은 이러한 권리 인식을 기반으로 제정되었다”고 말했다.

독립적 법 제정 이유에 대해서는 “국내 장애인 관련 법에도 수어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나 농인의 언어 체계는 일반 국민 다수가 사용하는 음성 언어가 아닌 시각 동작 체계인 한국수어에 기반하기 때문에 기존 법률에서는 이를 포괄적으로 담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화언어법 이후 농인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을까를 생각하면 여전히 답보상태”라면서 “전 국민이 수어로 소통하는 사회를 위해 협회를 중심으로 농인들이 더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1회 한국수어의 날을 맞아 표창과 공로패 등이 수여됐다. 사진 왼쪽부터 문체부 차관, 주신기 전 회장, 변승일 회장, 강미영 학예연구관 / 사진 = 더인디고
제1회 한국수어의 날을 맞아 표창과 공로패 등이 수여됐다. 사진 왼쪽부터 문체부 차관, 주신기 전 회장, 변승일 회장, 강미영 학예연구관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 = 더인디고

기념식에서는 한국 수어 발전에 공로한 인물들에게 표창과 공로패가 전달됐다.

문체부장관 표창에는 농아인협회 전 주신기 회장이 수상했다. 주 회장은 한국표준수화규범제정추진위원회, 한국수어연구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수어사전, 수어 교재 편찬 등 한국수어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됐다.

농아인협회장이 수여하는 공로상에는 김칠관 교수와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 강미영 학예연구관이 수상했다. 이들은 한국수어의 저변 확대와 수언법 제정 과정에서 큰 공헌을 했다. 특히 강미영 연구관은 법 제정 당시 문체부 국어정책과 학예연구관으로 재직하며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코로나19로 참석하지 못한 정세균 국무총리와 수어의 날 제정을 위해 법 개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 세계농아인 총연맹 조셉 머레이 회장 등은 영상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정세균 총리는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쓴 채 수어로 소통해야 하는 농인들의 고통을 잘 안다며 곧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소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재정 의원은 수어의 날 제정에 기여한 당사자로서 앞으로도 이 날의 의미가 더 살아날 수 있도록 국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한 조셉 머레이 회장은 농아인협회가 단합한 결과로써 관계 기관과 협의하여 좋은 결실을 맺게 된 것에 대해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식때 수어통역사를 배치한데 이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백악관 젠 샤키(Jen Psaki) 대변인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국민을 포용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모든 백악관 브리핑에 수어통역사를 배치할 것’을 약속했다”며 “지난해 코로나19로 수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일시적이 아닌 국민들이 지속적인 관심과 언어로 인식하면 정부, 특히 청와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농아인협회는 수어법과 수어의 날 제정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온 것에 이어 2023년 제주에서 열릴 ‘제19차 세계농아인연맹(WFD) 총회’ 등을 계기로 수어가 전 국민의 언어로 자리잡을 때까지 모든 역량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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