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고용] 30년의 낡은 틀 깨고 포용적 고용 사회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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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정책개발부 이시연 부장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정책개발부 이시연 부장

[이시연 = 한국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정책개발부장]

2006년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채택 이후 ‘포용 국가’ 또는 ‘사회적 포용’은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 정책의 주요 화두가 되었다. 독일은 2007년 CRPD 비준 이후 장애인의 권리로써 사회적 포용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를 전개했다. 그 결과 2016년 장애인의 사회적 포용을 위한 ‘장애인의 사회적 참여와 자기 결정 강화를 위한 법(연방참여법)’을 제정하고, 장애인 고용 기본법에 해당하는 ‘사회법전 9권’을 전면 개정했다. 프랑스, 호주, 영국 등 많은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CRPD 비준을 계기로 다양한 사회적 논쟁과 합의를 거쳐 2010년대 중반 이후 포용 사회를 목표로 장애인 관련 법·제도의 전면적인 개편을 시도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2008년 CRPD를 비준했지만 포용 사회에 대한 사회적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고, 2018년이 되어서야 장애분야에도 포용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포용 사회’를 지향하는 제5차 장애인5개년계획(’18~’20)이 그렇다. ‘양질의 일자리 확대와 격차해소를 통한 포용적(Inclusive) 노동시장 구축’을 목표로 하는 제5차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기본계획(’18~‘22)도 일례다.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2020년에 이어 올해도 ‘포용’은 여전히 주요한 국정 목표다.

그렇다면 포용 국가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본 우리의 장애인 고용 정책과 제도는 어떠할까? 포용 국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부재라는 아쉬움은 일단 차치하고, 정부가 설명하는 포용 국가 개념은 ‘삶의 질 개선, 지속가능한 발전, 그리고 사람 중심’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장애인 고용 분야에 대입하면 장애인 고용의 질 개선, 지속가능한 고용, 사람 중심의 고용서비스로 치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소 논리의 비약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람 중심의 고용서비스 제공과 양질의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포용사회 실현을 위한 장애인 고용전략의 중요한 두 축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장애인 고용 제도가 그러한가? 안타깝게도 긍정적인 답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장애인 정의(개념) 변화 포용사회로의 첫 걸음

장애를 어떻게 정의하고 바라보는가는 법이나 정책의 기본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다. 현재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하 장애인고용법)’은 장애인을 신체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장기간에 걸쳐 직업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즉 직업생활에서의 상당한 제약이 사회 환경이나 인식이 아닌, 개인이 지니고 있는 ‘장애’에서 기인한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으로 접근하면 장애인 고용 정책이나 제도는 개인의 ‘장애’로 인한 직업생활에서의 제약을 해소하는 데 주력해야 하며, 이는 장애 유형이나 정도 등 장애 특성을 위주로 한 고용제도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장애 유형별 특화’, ‘장애 유형별 맞춤형’ 등의 표현은 장애인 고용 정책이나 제도 관련 자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장애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접근 방식은 장애 유형, 정도 등을 기준으로 장애인을 집단화, 동질화함으로써, 개개인의 환경, 필요, 욕구를 무시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직업생활에서 겪는 상당한 제약의 원인을 ‘개인의 장애’로 돌리게 되면, 장애인 고용 또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그 만큼 경감될 가능성도 높다.

CRPD는 장애가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개념이며 손상을 지닌 사람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사회에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 간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기인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장벽 제거와 동등한 사회 참여를 위한 지원은 국가와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또한 개인의 제약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단지 장애 유형이나 정도가 같다는 이유로 개별성을 무시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독일은 포용사회 실현을 목표로 ‘사회법전 9권’을 전면 개정하면서, 장애인의 개념을 ‘개인의 손상이 인식(태도)적, 환경적 장벽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6개월 이상 사회에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참여하는 데 어려움’을 포함하여 새롭게 정의하였다. 포용사회 실현을 위한 장애인 고용 정책이나 제도를 논하기 전에 장애 정의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 중심의 고용서비스 개별화된 지원으로 전환

장애인 중심의 고용서비스는 개인의 욕구와 필요, 특성 그리고 선택에 따른 개별화된 서비스 제공이 핵심이다. 그러나 취업 지원, 직업훈련, 직업영역개발, 보조공학기기 지원 등 현재 제공되는 장애인고용서비스에서 개별화된 지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의 필요가 아닌 장애 유형이나 정도에 기반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애인의 직업적 능력과 특성’에 기반을 둔 ‘장애인 중심’ 직무 개발은 대부분 시각장애인 헬스키퍼, 청각장애인 네일 아티스트 등 ‘장애유형’에 따른 직무 개발로 이어지고 있고, 보조공학기기 지원은 개인과 업무의 특성에 따른 개별화된 제품보다는 장애유형별로 상용화된 제품 지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장애인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개별취업계획서 작성이 취업 지원의 필수 과정은 아니며, 2019년 근로지원인 지원 대상을 모든 장애유형으로 확대했지만 여전히 개별적 필요보다는 장애유형이 대상자 선발과 서비스 내용 결정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다. 이처럼 개별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장애인고용서비스는 인권과 성과적인 측면에서도 취업성공률, 고용 유지, 직무 만족도 등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물론 장애인 중심의 개별화된 고용서비스 제공은, 공급자가 서비스를 결정하고 장애인은 결정된 서비스를 이용하는 현재의 공급자 중심 서비스 지원 체계에서 소비자 중심 지원체계로의 전환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 순간에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부도 2019년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 지원 체계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고, 장애인 중심의 개별화된 서비스 지원에 대한 현장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어 불가능한 변화는 아니다. 장애인 고용공단을 비롯하여 직업재활기관, 직업훈련 기관, 복지관, 단체 등 다양한 기관들과 연계·협력을 통해 장애인 중심의 보다 유연한 고용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미국의 맞춤형 고용(Customized employment)과 같은 개인 중심의 고용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확대해 나가면서 개별화된 고용서비스로의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도 시도해 볼 만 하다.

양질의 지속가능한 일자리 지원

“19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과 함께 도입된 의무고용제도를 기본으로 한 고용촉진 제도를 통해 장애인 고용의 양적 성장은 이루었으나 질적 발전은 이에 미치지 못하였다.” 우리나라 장애인 고용제도를 평가할 때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지적이다.

실제로 1991년 0.39%였던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2019년 2.92%(중증 이배수 적용)로 증가했고, 장애인 공무원 수도 1991년 1,698명에서 2019년 25,813명(중증 이배수 적용)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15세 이상 장애인 고용률은 2010년 36.0%에 비해 2019년 34.9%로, 장애인경제활동참가율은 2010년 38.5%에서 2019년 37%로 오히려 감소하였다.

의무고용제도가 장애인 고용의 양적 성장은 이끌었어도 사회 전반적으로는 여전히 장애인 고용이 양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양적 성장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시대와 환경이 변화했고 좋은 일자리에 대한 장애인의 욕구도 높아지고 있다. 장애인 고용의 양과 질을 고려한 균형적 성장과 지속가능성 제고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숙제다.

최근 장애인 고용의 질적 측면이 강조되면서 장애인고용시설 편의시설 지원 확대, 근로지원인 지원 확대, 중증장애인 출퇴근 비용 지원제도 도입 등 고용 유지 지원, 양질의 근로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직장 내 차별, 부당행위, 고충 등에 대한 상담 및 해결, 직업생활 적응 등의 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장애인근로자지원센터가 2020년 시범사업으로 운영되었으며 점차 확대될 예정이다. 그 동안 입직 위주로 운영되었던 고용제도가 취업 후 고용안정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다만 현재 직장이나 직무에 안정적으로 적응·유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승진, 승급, 직무배치, 경력개발, 이직 및 전직 등 직업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 모색도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보호고용 ↔ (중간·적응단계) ↔ 일반고용의 선순환 구조 체계화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 동안 중증장애인이 직업재활서비스와 일 경험 등을 통해 일반 기업에 취업하고, 부적응, 재훈련 등 필요한 경우 다시 직업재활시설에 돌아와 직업재활서비스를 받고 일반 기업으로 이동하는 선순환 구조가 없다. 중증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이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를 받고 일하는 별도의 근로 형태로 보호고용이 고착화 되어 왔다.

이에 따라 중증장애인의 근로 기회의 양적 확대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임금, 근로환경, 일반기업으로 전이 등 일자리의 질이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할 수밖에 없다. 보호고용과 일반고용 간 연계 강화, 일반고용의 준비 단계로서 직업재활시설 기능 정립, 임금 향상, 근로환경 개선 등 보호고용의 질 제고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 장애인 작업장에 노동예산, 외부 사업장 연계프로그램 등을 도입하여 일반고용과의 연계를 강화하면서, 장애인 작업장, 장애인 고용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수의계약 인정 규정 마련 등을 통해 고용 창출을 시도하는 독일, 보호작업장을 일반경쟁고용 지원기관(Agency)으로 기능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미국, 우리나라의 보호작업장에 해당하는 장애인 기업(DEA)을 국가장애보험제도(NDIS) 하의 고용서비스 제공 기관으로 전환한 호주 등 다양한 해외 사례도 참고해 볼 만 하다.

장애인 고용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익숙한 주제다. 하지만 그 동안 끊임없이 논의 해 오면서도 정작 새로운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에서 언급된 내용들도 그 동안 많은 전문가, 보고서, 기관, 단체 등에서 이미 다룬 것들과 대동소이 하다.

2020년은 ‘장애인고용촉진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된 해이다. 2000년 중증장애인 지원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해 ‘장애인고용법’으로 전면 개정되었다. 하지만 30년 전에 확립된 장애인 고용제도의 기본 틀은 그대로인 것에 비해 사회와 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2006년 CRPD, 2015년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가 채택되어 국내에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이 권리, 자립생활 기반의 패러다임으로 변화하였다. ‘포용 국가’라는 비전 또한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이제 장애인 고용에 대한 접근도 30여 년 동안 유지된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2021년이 그 동안 익숙해진 장애인 고용 제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논의가 시작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이시연 부장은 우연한 기회에 장애인 단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더인디고 THE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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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24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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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years ago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