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우리 말 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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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기반 SNS 클럽하우스
음성기반 SNS 클럽하우스/ⓒ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91769

[더인디고= 안승준 집필위원] 요즘 ‘클럽하우스’라는 새로운 SNS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많은 사람이 그 기분 좋은 중독성의 의미에 대해 논하고 토론하지만 확실한 정답을 제시하는 이는 없다. 유명한 사람들과의 실시간 대화나 ‘줌’으로 대표되는 영상 회의 콘텐츠의 피로감을 이유로 드는 전문가도 있지만, 내가 느끼는 이유는 경계와 편견이 없는 인간적 대화이다.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느 방에 입장하든지 말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소개하게 되는데 그것은 철저히 본인의 의사에 따라 그 범위를 정한다. 화려한 경력이나 학벌 따위를 말해도 되지만, 아주 간단하게 닉네임 하나만 밝혀도 무관하다. 특별한 목적성을 가진 방에서야 어쩔 수 없이 물어봐야 하는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또한 말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물론 그조차도 말하고 싶지 않고 듣고만 싶다면 리스너로 있어도 좋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낯선 이들과의 처음 대화에서는 상대를 다른 이와 구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 이외의 것은 필요하지 않다. 나이도 경력도 거주 지역도 대체로 우리에게 내재한 편견을 끌어내는 역할을 할 뿐이다. 가상화폐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방에서 우리가 대화 상대의 학벌과 경력, 나이를 미리 알고 난 뒤 토론을 시작한다면 우리가 더 집중하게 될 연사나 신뢰도가 실제 발언과 관련 없이 미리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성 전혀 없는 소소한 대화방에서도 쓸데없이 알게 된 정보는 마음이 통할 것 같은 상대를 특별한 근거도 없이 시작부터 정해놓는 효과를 발휘한다.

내가 시각장애인인 것을 먼저 소개할 때와 나의 대외활동을 일단 털어놓을 때의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사람들의 말투만 듣더라도 이력서 같은 소개는 우리 관계에 그다지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장을 구하거나 사람을 뽑을 때도 평생 함께하게 될 반려자를 찾을 때에도 최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정보를 주고받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에게 특별한 정보 없는 상대와의 대화는 불안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별다른 것을 밝히지 않아도 진행되는 대화 속에서 말하는 이는 마법처럼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오늘 점심때 먹었던 맛있는 메뉴 이야기도 직장 상사 때문에 고생한 스토리도 오래전부터 혼자만 간직하던 고민도 술술 토해낸다.

어딘가에 있는지도 모르는 전화 속 친구들은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최선을 다해 격려하고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목소리에 담아 전한다. 나만이 겪고 있다고 생각했던 문제, 나만이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가치도 수많은 친구와의 연결 속에서 공감을 받고 연대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와 아주 가까운 현생에도 존재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내재하는 강력한 편견에 가려져 보고 있지 못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위로받고 싶지만 내가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나를 위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배우고 싶지만 가르쳐 줄 이가 없다고 스스로 결론 내리기도 한다. 클럽하우스 내에서 난 유명한 교수님의 위로자가 되기도 하고 아주 어린 친구들에게 용기를 선물 받기도 한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과도 정년퇴임한 어르신과도 친구처럼 대화한다. 우리는 쓸데없는 자세함 대신 간단한 소개를 택했기에 불가능할 것 같은 관계도를 만들고 확장해 간다. 마음을 나누고 대화가 오가면서 우리는 더 가까워지고 서로가 가진 현생의 정보를 알아가지만 편견 없는 대화로 다져진 관계가 그렇다고 깨어지지는 않는다. 나에게 수학 공부하는 법을 질문하던 대학생들도 사랑이 무엇인지 물어보던 중년의 여성도 내 장애와 나의 서류상의 자아를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순수하게 물어보거나 나누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시간은 너무도 건설적이었고 긍정적이었고 가치 있었다.

어제는 밤새도록 ‘반말방’에서 다양한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가상공간에서 29살이라는 공통의 나이를 약속하고 친구가 되었고 존댓말을 버렸다. 내가 가진 쓸데없는 자랑거리도 내가 가졌던 무의식적 낯선 이에 대한 부담스러움도 수평하게 놓인 언어들이 가볍게 없는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승준아!”라고 부르는 이들 중엔 나보다 스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어린이도 있었을 것이고 내가 “철수야!”라고 부르던 이는 현생에서는 내가 말 붙이기도 힘든 위치에 계신 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대화에서는 그것을 모르는 것이 가까워지기 위해 훨씬 좋은 환경이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과의 시간이 언제나 편안한 것은 서로의 조건들이 큰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고 가까워질 수 있다. 아무 쓸모 없는 편견에 싸여있는 껍데기에 집중하는 눈만 버리면 된다. 반말이 오고가는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실제 생활에서도 이런 문화가 생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집단 간에 벌어지는 많은 대립을 해결할 수 있다. 은연중에 주관적으로 정의하는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 대단한 사람의 기준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신분과 계급이 되고 우리는 그 보이지 않은 경계들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하고 관계를 좁힌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서로를 친구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조금만 내려놓으면 그럴 수 있다.

“우리 친구 하실래요?” 그럼 반말방으로 오세요.

[더인디고 THE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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