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RPD ②] 선택의정서 비준 시 갖게 되는 매력적인 두 가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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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이용석 = 더인디고 편집위원]

UN장애인권리협약(이하 CRPD)은 장애인의 권리를 포괄적으로 담은 최초의 국제협약으로, 비준 당사국은 협약이 명시하고 있는 장애인의 권리 보장 이행에 대한 국가보고서 제출, 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정기적인 심의 참여, 그리고 심의 결과로 채택되는 최종견해 이행 등의 의무를 갖는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당사국 정부는 장애인의 인권 보장 및 증진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국내의 법과 제도적 조치들을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하고, 주요 현안에 대한 위원회의 질의 답변을 통해 공식적인 입장과 향후 계획을 밝혀야 한다.

이에 대해 위원회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국내법과 제도의 개선을 최종견해를 통해 직접적으로 촉구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08년 12월 CRPD를 비준하면서 본문 제25조의 e항(장애인의 생명보험 가입을 제한한 국내법 상법 제732조와 배치된다는 이유)과 선택의정서 비준을 유보했다. 특히, CRPD에서 규정한 장애인의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위원회에 직접 권리구제를 요청할 수 있는 선택의정서 비준을 유보하고 있다.

선택의정서는 모두 18개 조항으로 구성된 CRPD의 부속문서로 개인진정과 직권조사를 담고 있다. 개인진정은 당사국의 장애인이 권리침해를 당해 국내의 모든 법적, 행정적 절차를 거쳤음에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경우 유엔에 진정하게 되면 위원회는 당사자의 주장을 심리하여 해당 국가의 국제인권조약 위반 여부를 결정하고, 당사국에게 진정인을 위한 배상 및 재발방지 등의 적절한 조치와 심리의 대상이 되었던 국내법령에 대한 개정을 권고하는 제도이다. 또 직권조사는 진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위원회가 인지했을 경우 위원회가 직접 권리침해가 있는 당사국을 방문해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선택의정서 비준을 미루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당사국들은 개인진정보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수 있는 직권조사를 오히려 더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2019년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단체 등은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일명 지하철 단차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이 소송은 지하철 차량과 승강장 연단과의 ‘간격’ 및 ‘단차’ 등으로 인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승하차 시 위험을 초래해 이를 방치한 교통사업자에게 책임을 묻는 소송이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현재 시행 중인 원스탑케어 서비스와 안전 승강장 위치안내 앱, 이동식 안전발판 서비스 등을 이유로 교통사업자에게 안전발판 등의 설치 요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상의 ‘현저히 곤란한 사정’과 ‘과도한 부담’ 즉 차별의 해제조건이 충족되었기에 차별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지만 이처럼 장애인 당사자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위험한 상황을 자주 겪는 상황이 실제로 빈번함에도 국내법의 미비 또는 제도상의 문제들로 인해 대중교통수단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

만약 대법원에서까지 구제받지 못했을 경우 장애인 당사자는 장애인의 최대한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이동 보장을 위해 효과적 조치를 취할 의무를 규정한 CRPD 제20조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근거로 위원회에 개인진정을 할 수가 있다. 또한, 최근 코로나19 창궐 상황에서 2021년 2월 10일 0시 기준 국내 사망자 1,486명 중 ‘요양원, 사회복지시설 등’ 집단거주시설 내 사망자는 777명으로 52.3%에 이르고 있지만, 여전히 코호트 격리 중심의 대책만을 고수하는 차별적 방역 상황에 대해 위원회는 직권으로 우리나라에 방문해 현재의 방역 대책에 차별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할 수 있다.

물론 이 두 상황 모두 굳이 선택의정서의 개인진정과 직권조사를 이용하지 않고 유엔인권이사회의 특별보고관 제도를 통해도 된다. 그러나 특별보고관의 권고사항은 CRPD 선택의정서와는 달리 당사국의 법적 구속력 –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ㆍ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어 국제인권조약인 CRPD의 법적 기속력이 인정된다는 견해를 따른다면 – 이 없다.

다시 말해서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한 당사국이 CRPD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CRPD에 따른 장애인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당하고 있다고 해도 장애인은 위원회에 권리구제를 진정할 수 없고, 위원회가 당사국을 방문해 직권으로 조사해서 권리 침해를 시정 권고할 수도 없다. 결국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CRPD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더라도 위원회는 4년마다 시행하는 국가심의 이후 최종견해를 통한 권고만 할 수 있을 뿐 그 어떤 조치도 취할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좀 야박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CRPD는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는 형식적인 선언에 불과하다는 거다. CRPD가 선택의정서를 통해 장애인 당사자의 개인진정과 위원회의 직권조사가 가능하도록 한 것은, 협약이 당사국의 국제적인 이미지 관리를 위한 ‘선언’이 아닌, 당사국에서 실질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마련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인데 우리나라는 이 장치마저도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선택의정서 비준을 통해 개인진정과 직권조사가 도입되었다고 해서 우리나라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가 하루아침에 개선될 리는 없다. 한 예로 지난 2020년 7월 군인권센터는 성전환 수술로 인해 대한민국 육군으로부터 강제 전역을 당한 변희수 하사에 대한 처분이 국제인권법에 위반된다는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안이 공개되었지만,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당사자는 현역에 복귀하지 못한 채 죽음을 선택했다. 솔직히 말하면 유엔의 권고나 결의안은 당사국에 의해 무시되거나 외면받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선택의정서 비준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당사국의 가용자원이 허용하는 최대한도까지 조치가 취해졌는지 여부에 대한 직접적인 판단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CRPD에서 규정한 다양한 장애인의 ‘선언적’ 권리를 실질적인 권리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엔인권재판소가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에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이고, 그런 만큼 강력한 피해구제 절차이니만큼 우리도 이런 매력적인 제도 하나쯤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용석 편집위원은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하지만 소설쓰기는 호구지책이 못되어서 세상을 배회하다 지금은, 사람과 일과의 인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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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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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영
3 years ago

이용석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매우 유익하고 정곡을 찌르고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조 성민
3 years ago
Reply to  이근영

지난해 현장에서 이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 및 국내외 관계자들과 토론을 추진하신 분이니 그만큼 깊이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