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경의 컬처토크]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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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rby tragedy: at tattenham corner A Suffragette's mad rush and its consequences 더비 비극: 토트넘 코너 서프러제트의 무모한 돌격과 그 결과/ 서프러제트의 한 회원이 영국 국왕이 참가하는 경마대회에서 여성에서 투표권을 달라며 달리는 말에 몸을 던진 장면
The derby tragedy: at tattenham corner A Suffragette's mad rush and its consequences 더비 비극: 토트넘 코너 서프러제트의 무모한 돌격과 그 결과/ 서프러제트의 한 회원이 영국 국왕이 참가하는 경마대회에서 여성에서 투표권을 달라며 달리는 말에 몸을 던진 장면/유튜브 화면 캡처(ⓒhttps://www.youtube.com/watch?)v=Zbdskuuocpg)

[더인디고=차미경 편집위원]

“여자가 무슨 바깥일을 해? 집에서 애 키우고 살림이나 잘하면 되지!”
누군가 목청 돋우어 이렇게 말한다면 십중팔구 주변의 날카로운 눈총을 받을 것이다.
“여자가 무슨 투표를 해? 여자가 나랏일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차미경 편집위원
차미경 더인디고 편집위원

요즘 세상에 감히 이런 말을 내뱉을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제 이런 말들은 구시대의 낡은 생각 정도가 아니라 가당치도 않은 틀린 말이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언제부터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이 되었을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졌을 생각일 텐데 말이다.

여성의 노동권과 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고작 100여 년 전에 불과하고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는 무려 2015년 선거에서야 비로소 여성들이 최초의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 당연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여성이 너무도 길고 힘겨운 투쟁을 해야만 했다.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 2015)는 영국의 한 세탁공장에서 일하던 주인공 모드 와츠가 여성의 부당한 현실들을 목격하고 여성 참정권 운동에 가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여성들의 투쟁과 연대를 다룬 이야기다.

서프러제트는 참정권을 뜻하는 서프러지(suffrage)에 여성을 뜻하는 접미사 ‘-ette’를 붙인 말로,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과 운동가들을 일컫는 용어다. 당초 팽크허스트가 참정권 운동을 위해 1903년 결성한 여성사회정치연합(WSPU)을 일간 데일리 메일이 경멸조로 표현한 말이었다고 한다.

많은 여성이 고문을 당하거나 옥고를 치르고 또 운동에 가담한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외면당하거나 버림을 받는가 하면 누군가는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 세상을 향해 권리를 외치며 죽어가기도 한다. 여성의 참정권, 그 당연한 권리를 위해서… 고작 염색체 조합 중 Y 염색체 하나 다른 성별, 대체 그게 뭐라고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그렇게 처절하게 투쟁해야 했단 말인가.

영화 ‘서프러제트’를 언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치 연작처럼 떠오르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영화 ‘에놀라 홈즈’(Enola Holmes, 2020)가 그렇다. 홈즈라는 성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싶다가 셜록 홈즈의 막냇동생 이름이란 걸 알고 나면 낯익은 이름에 이 영화가 더욱더 반갑고 흥미로워진다. 셜록 홈즈의 여동생 이야기라니… 오빠의 유명세에 묻어가는 가족 찬스 같기도 하지만 그 친근함 때문에 기대감도 더 커지니 제목만 놓고 보면 일단 성공한 셈이다.

‘에놀라 홈즈’가 영화 ‘서프러제트’의 연작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에놀라와 셜록 홈즈 남매의 엄마인 유도리아 홈즈 역을 헬레나 본햄 카터가 맡았기 때문이다. 헬레나 본햄 카터는 앞서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가 이디스 역으로 출연했는데 ‘에놀라 홈즈’에서는 에놀라의 엄마 유도리아 역으로 등장한다. 유도리아, 헬레나 본햄 카터는 이 영화에서도 역시 은밀히 활동하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다. 시대를 앞서가는 엄마, 유도리아는 에놀라를 주체적이고 진보적인 여성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수수께끼 같은 단서들을 남기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데 엄마가 남긴 단서들로 엄마를 좇는 에놀라의 모험 속에 그 시대 여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당신은 세상을 바꾸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이에요. 본인에겐 이미 딱 좋은 세상이라서!”

에놀라 엄마 유도리아 홈즈의 든든한 친구이자 주짓수 선생님인 이디스가 셜록에게 던지는 강렬한 대사였다. 어머니가 집을 나간 것도 모자라 여성 참정권 운동이라니 셜록으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어머니에 대해 막 열을 올리던 참이었다.

본인에겐 이미 딱 좋은 세상이라 화낼 필요도, 싸울 필요도 없는 사람이 어디 그 시대의 남성뿐이랴.

지하철역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저상버스가 도입되기까지 장애인들이 길고 험난한 이동권 투쟁을 이어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비장애인이 셜록 홈즈 같았을까.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과 불편이 먼지만큼도 인식되지 않았던 것처럼 비장애인 위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의 존재는 얼마나 없는 존재처럼 무시되고 배제되어 왔는지…

지하철 리프트를 타다가 추락해 목숨을 잃어도 상응한 조치와 정당한 판결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장애인 한 개인의 불운이나 실수로 치부되는가 하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리프트가 아닌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하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대해서는 시민의 정당한 시위가 아닌 업무 방해로 취급하는 것이 2021년의 여전한 장애 현실이다.

“장애인이 뭐하러 나와서 민폐야? 집에나 있을 것이지!” 이 말이

“여자가 무슨 바깥일을 해? 집에서 애 키우고 살림이나 잘하면 되지!”

오래전 여성에게 던져지던 이 말과 다른가?

후자는 이제 몰상식한 망언으로 여겨지지만 전자는 장애인들이 여전히 듣는 말이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 싶으신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붐비는 지하철에서 여전히 종종 내 귀에 꽂혀 오는 말이며 법적 고용률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장애인 고용률이 그 명백한 증거다.

여성의 참정권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만큼 장애인의 참정권, 장애인의 이동권도 당연하게 여겨지는가? 현실은 역시 아니다. 선거 때마다 제기되는 접근 불가능한 투표소 문제와 장애 유형에 맞게 제공되지 않는 부적합한 투표용지 등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장애인이 투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의 단면이고, 정당한 이동권 요구를 업무방해로 여기는 후진적 인식은 여전히 장애인 이동권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의 반증이 아닐까.

그러나 ‘서프러제트’나 ‘에놀라 홈즈’에서와 같은 여성들의 치열한 투쟁이 있어서 100년 후의 세상이 이만큼 달라진 것처럼 이 시대에도 여전히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앞으로도 그런 이들이 지금껏 그래 왔듯 새 시대를 열고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시대의 변화는 영화들 속 시간만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지금 틀린 것은 미래에도 틀린 것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라디오 방송과 칼럼을 쓰고 인권 강의를 하면서 나름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걸어왔습니다. ‘easy like Sunday morning...’ 이 노래 가사처럼 기왕이면 일요일 아침처럼 편안하게 문화를 통한 장애 이야기로 말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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