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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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Pixabay
실종/ⓒPixabay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어머니, 하진이가 늦네요, 다음 아이가 기다리니 빨리 보내 주세요.”

여름방학이라 종일 운영하는 체육관에 다니던 아들이 선생님의 연락을 받으면 혼자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때였다.

심장이 멎었다. 아들이 나간 지 10여 분이 지났는데 뛰어 내려가면 1분도 안 되는 거리를 아직도 가지 않았다니!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체육관 차를 그냥 보내고 아파트 단지를 뒤졌다. 평소 잘 다녔던 공원을 한 바퀴 돌아도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넋 나간 여자처럼 뛰다 보니 아파트 단지 밖을 헤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고 생각하며 숨을 크게 들이켜고 내쉬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림을 느꼈다. 순간 나는 가슴을 가렸다. 집에서 입고 있던 얇은 민소매 원피스 속엔 노브라에 팬티 하나가 전부였다. 고개를 숙이고 일단 집으로 들어와 옷을 챙겨 입고 다시 나갔다. 한참을 찾다가 112에 신고하니 먼저 관리소에 가서 CCTV를 보라고 했다. 관리소 직원들은 외부출입 금지 구역이라며 인상착의를 말하면 자신들이 찾아보겠다고 했다.

“이봐요! 내 아들 내가 먼저 알아보지 당신들이 바로 알아보겠어요?”

소리치고는 같이 화면을 보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아들이 보였다. 엄마가 밖에서 미친 듯이 한 시간 넘게 찾아 헤매는 동안 아들은 지하 주차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옆의 직원이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아까 주민 신고가 들어왔는데요… 낯선 남자가 자기 차 주위에서 서성댄다고 와 달라고 해서 갔더니 이 학생이었어요. 집에 가라고 했는데 계속 주차장에 있었나 봐요…”

“아저씨!!!!!”

기가 막혔다. 한편으론 그냥 평범한 학생으로 보였다면 그럴 수 있었겠다 싶었다. 차량이 입구로 들어오면서 아들 내려오라는 전화를 했는데 그사이 아들은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체육관 차 앞에 승합차가 잠시 가려져서 아들이 보이지 않았고, 아들은 내려가 보니 차가 없어서 혼자 다른 동 앞에까지 가서 서성대고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 후로도 아들의 실종 사건은 몇 번 더 있었다. 누군가의 신고로 찾은 적은 없었다. 아들은 어디선가 있으면 엄마가 꼭 나타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멀리는 가지 않았고 항상 엄마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몇 번의 경험으로 아들이 가는 곳을 짐작하기도 했지만 식겁한 적은 몇 차례 더 있었다.

아들 손을 꼭 붙잡고 다녔다. 그럼에도 순식간에 발생하는 실종을 막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강 공원에서 두 시간 넘게 찾아 헤맬 때는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모든 걸 알고 있지만 함묵하고 있었다. 밤은 깊어가고 조급한 마음은 나쁜 쪽으로 상상을 유도했다. 강가 건물의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벤치에 앉아 공연을 보고 있던 아들을 발견하고는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 버렸다.

잠실 지하상가에서 노숙자로 오해받고 지상으로 쫓겨나 더 힘들게 찾을 수 있었던 기억.

위험하고 아찔한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아들과 나는 서로의 동선을 알아갔다.

지문 등록을 하고 인식표를 착용해도 혼자 배회하는 아들을 신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곳으로 ‘쫓아내는’ 일은 있었으니 차라리 신고해 주면 좋겠다.

방배동 거리에서 엄마의 죽음을 알리는 쪽지를 앞에 두고 노숙자로 살던 발달장애인에게 다가갔던 사회복지사. 나는 그분의 따뜻한 관심이 삶과 죽음을 달리한 모자에게 한 줄기 빛이었다고 생각한다.

22년째 고교생 딸의 행방을 찾고 있는 60대 아버지. 누가 봐도 실종인 상황을 ‘단순 가출’로 여기고 초기 수사에 미흡했던 것을 기억한다. 찢어지고 색 바랜 현수막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볼 때마다 딸의 부모가 되어 많이 아프다.

장애인부모연대의 단체 대화방에서 자녀의 실종을 알리는 공지를 대할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는다. 모든 부모가 자기 일로 받아들인다. 마음을 졸이고 걱정을 하면서 찾을 때까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한다. 발달장애인은 주위의 세심한 주의와 관심 없이는 겉으로 보기에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도움을 주는 것도 받기도 쉽지가 않다. 실종자들의 동선을 바로바로 알 수 있는 체계가 아쉽다.

봄비가 내리던 주말 아침.

지난겨울에 실종된 발달장애 청년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모두가 청년의 명복을 빌면서 세상 끝을 경험하고 있을 엄마를 위해 기도했다. 청년이 내 자식이고 그 엄마가 내 자신임을 알기에 먹먹한 하루를 보냈다.

매번 마지막이길 바라지만 실종 사건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매뉴얼이 마련되지 않는 한 실종 사건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발달장애인 실종만을 다루는 전문기관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조언을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불가피하게 실종이 발생하더라도 이른 시간 내에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이 속히 마련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더인디고 THE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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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72@naver.com'
이은미
3 years ago

아, 아픕니다. 길을 잃고 부모를 기다리는 자녀와 자녀를 애타게 찾는 부모님… 언제 어떻게 실종이라는 단어가 엄습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항상 긴장하며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화가 나네요.

“실종된 발달장애 청년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니 가슴이 미어지네요. 삼가 고인의명복을 빕니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매뉴얼이 속히 마련되고, 발달장애인 실종만을 다루는 전문기관에서 신속하게 찾을 수 있는 구조가 되길 간곡하게 바랍니다.

Admin
조성민
3 years ago
Reply to  이은미

이제 논의가 시작되고 있으니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하나씩 해결될 것으로 믿습니다.

cooksyk@gmail.com'
cooksyk
3 years ago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저두 딸이 납치된 경험자로서 아픈기억이 떠올라 며칠 가슴앓이를 했습니다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시가 너무 아파 아무말도 할 수 없었어요

Admin
조성민
3 years ago
Reply to  cooksyk

고통스러웠던 경험을연대의 힘으로 이기시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