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말하다] 장애 포괄적 키워드로 사이보그는 적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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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소설가와 김원영 변호사가 공동집필한 ‘사이보그가 되다’ 책 표지
▲김초엽 소설가와 김원영 변호사가 공동집필한 ‘사이보그가 되다’ 책 표지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사이보그가 되다(2021)’를 처음으로 마주한 시점은 평소에 구매해 오던 2019년 시사iN 지면이었다. 글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장애를 설명하는 단어로서 사이보그를 사용한다는 것도 어색했지만, 장애라는 단어가 사이보그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될 수 있는 지에 대한 심각한 위화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신체적 당사자와 정신적 당사자들은 장애인이라는 이름만 같을 뿐이지, 전혀 다른 삶의 경험을 살아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개인적으로는 감각적 영향을 조금이나마 받아오고 있는 만큼, 감각신체당사자들이 사이보그 도구들과 결합-해체를 반복하는 과정이 장애경험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과 신체당사자들의 문화가 가진 중요성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감각신체당사자의 논의가 장애인이 무엇인지, 또한 장애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대표하면서 정신적 당사자의 경험, 특히 자폐당사자의 경험을 지워버리는 데 쓰이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평소부터 가지고 오고 있던 나로서는, 한편으로는 기사들의 내용에 일부 수긍하면서도 불편함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시사iN이 창사 이래로 아마 처음으로 이 정도라도 연재로 담아준 걸 감사하게 생각하자는 자기 위안을 담아서 말이다.

그리고 시사iN의 책들이 그렇듯이, 이 연재도 책이 되어 나왔다(다만 원고가 시사iN 북스가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게 새롭다면 새롭다). 그러나 불편한 내용을 굳이 읽을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당연히 이 책은 그냥 넘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이 앞으로의 대한민국 장애 논의에서 상당한 역할을 차지할 것으로도 보이고, 주변에서의 권유도 있고 해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물론 장애경험의 차이가 다른 소수자성과 교차될 때 발생하는 차이에 대한 인식 속에서 이 논의가 진행되었고, 따라서 보다 더 포괄적인 장애논의를 진행하려 한 점을 책 전반에서 읽을 수 있었던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운 내용이 많이 보강됐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처음에 내렸던 평가에는 변함이 없다. 새로 쓰신 부분들을 빼고 기존 논고에서 보강된 부분을 찾으면 자폐성 장애와 관련된 논의가 지속해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이 책에서 자폐특성이나 신경다양성 이야기는 논의를 전개하다가 ‘어, 이상하네’라고 생각될 부분에 대한 방어를 위해 등장할 뿐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이 책의 내용에 있어서 자폐당사자의 논의들이 맥락을 분명하게 따지지 않은 채 너무나 쉽게 사용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나는 왜 이런 느낌을 이 책에서 받게 된 걸까?

첫째로, 우리가 겪고 있는 경험들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감각지체당사자와 정신적 당사자, 또한 난치당사자 모두가 손상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감각적 중복장애를 제외하면) 자폐당사자가 겪는 손상의 질은 다르다. ‘발달장애인’은 보장구를 경험하지 않으며, 새로운 소통방식을 배우지 않는다. 그러나 자폐당사자는 일상 자체에서 소통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해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그러한 ‘손상’에 대해서 사회는 공감과 소통보다는 ‘중재’를 통해 ‘치료’를 통한 ‘정상화’를 꾀한다. 즉 ‘장애인’들에 비해 ‘발달장애인’은 장애에 대해 주변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에 차이가 있다. 이러한 경험의 차이는 앞으로도 설명한 자폐가 ‘장애’에 포괄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둘째로, 장애인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지원으로서의 ‘보장구’와 비슷한 정도의 지원을 ‘발달장애인’은 받지 못한다. 물론 휠체어 하나에 맞추지 못하는 사회가 한탄스럽고, 농정체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KT의 기가지니에 연대적 분노를 느낄 때도 있지만, 그만큼의 지원이 ‘발달장애인’들에게 이어져 왔다면 지금쯤 나는 어디에 있었을지 고민하게 된다. ‘사이보그’의 대표인 보장구는 정부에서도 대여도 하고, 구입금 지원을 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웬만한 ‘발달장애인’들은 그러한 지원을 절대 기대할 수 없다. 그나마 한때 자폐당사자를 중심으로 스마트 어플리케이션 개발이 주를 이뤘었지만, 오히려 COVID-19로 ‘장애인’에 대한 지원 욕구가 지속해서 도출되는 와중에서도 내가 연구해 온 스마트 힐링콘텐츠는 이제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자폐당사자는 당연히 받아야 할 고등교육대신 특수교육이나 소위 ‘평생교육’으로 내몰리면서 어린이 취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셋째로, 장애유형간 소통, 특히 정신적 당사자와 감각지체당사자간 소통이 부재했다. 양쪽의 장애당사자들은 같은 장애인으로 불려오고 있을 뿐, 서로 간에 대화가 이뤄져 본 적이 없다. 분류별 장애단체를 통해 당사자 간 소통과 연대는 지속되어 왔지만, 정작 장애유형간 차이의 중요성이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는커녕, 장애유형을 넘어선 소통 기회 자체는 한국장애인재활협회(RIKorea)의 ‘장애청년포럼’ 등을 제외한다면 찾아보기 힘들다. 장애당사자들이 다른 장애유형의 서로 다른 손상을 이해해야 장애계 연대도 가시화될 수 있다. 정신적 당사자에게 수어나 점자 교육이 이뤄지고, 감각적 당사자들이 정신적 당사자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서 당사자 간 소통이 쉬운 세상에 있었다면 책을 읽으면서 분노를 느낄 이유도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책에서 귀중하게 살펴봐야 할 부분 또한 있다. 8장부터 김원영 변호사가 진행한 이음새, 다시 말해 경험-단절에 대한 논의이다. 이음새, 또는 틈새라는 개념을 조금만 넓혀서 적용하면 ‘발달장애인’의 사회적 소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단절, 다시 말해 동아시아의 유교-고맥락적 사회기능에 의한 장애인 차별을 설명하는 개념이 충분히 될 수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즉 심리스 경험에 감각지체당사자가 제기하는 균열과 동시에 정신적 당사자들의 균열 이슈들이 합쳐져 논의된다면 진정으로 ‘모두’에게 심리스한 유저경험이 구축될 수 있을텐데, 이는 디자인이나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IMC) 이론, ESG 논의 등에서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문제제기다.

4장의 청테이프 논의 또한 정신적 장애로 끌고 오면 재미있는 논의가 될 것이다. “정신적 장애인이 사회와 통합되기 위해 필요한 ‘청테이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이뤄진다면, 모든 장애인에게 통용될 수 있는 접근성 지원 정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깊이 있게 도나 헤러웨이를 포함한 페미니스트 STS 논의를 소개하는 점 또한 이 책이 독자들에게 읽혀지기에 분명한 이유 중 하나이다. 특히 페미니스트 이론가들 중에 도나 헤러웨이의 논의가 국내에 덜 소개됐다는 점에서 이 책은 국내 페미니즘 담론 자체에서도 중요하거니와, 이 책이 페미니즘 이론과 장애이론의 연계가능성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 또한 그동안 이른바 TERF로 구체화되었던 페미니즘을 통한 장애차별을 여성주의와 장애주의의 연대로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제안 지점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SF의 역사를 인용하면서 자폐당사자가 SF의 독자로서 존재해 왔으며, SF씬을 이끌어왔지만 배제되어 가는 과정을 다뤄준 점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특히 이 부분이 가지고 있는 관점은 <뉴로트라이브〉와 다시 같이 읽으면 선명해진다. 이 책 6장 전부를 할애하고 있는 1910년대 휴고 건즈백의 일대기와 이를 통해 발생한 SF 붐을 읽고 있자면 그 당시에 생겨났던 SF소설의 중심에 있었던 자폐당사자들이 현재는 SF 신에서 쫓겨난 이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이버그에 대한 논의가 모든 차별경험을 포괄할 수 없다는 이 책의 한계는 앞으로도 그 대안이 논의되어야 한다. 물론 5장 초입에서 논의된 보청기를 보이지 않게 만들려고 하는 노력과 자폐당사자가 ‘사회화’되어 ‘자폐스러’워 보이지 않으려는 노력은 장애를 비가시화하거나 극복하게 만들려는 사회의 정상화주의(ableism)에서 비롯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해법은 장애에 기술을 도입하는 방법을 장애친화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황우석 신화를 사회적으로 승인하게 만든, ‘정상성’ 바깥의 장애인을 정상성 바깥으로 밀어내는 사회의 이상함weird, 너드스러움nerdy에 대한 혐오, 다시 말해 ‘외계인 만들기’ 에서 비롯된 자폐혐오와 장애혐오를 지워나가는 것이다. ‘장애인 접근성’ 확보가 정신적 당사자의 사회통합에 어떠한 긍정적 영향도 끼치지 않듯이, 두 개의 서로 다른 대장애유형간의 차이를 포괄하지 않는 개념이 장애경험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은 상시 유의되어야 한다.

[더인디고 THEINDIGO]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초빙교수] 한국의 첫 자폐 연구자이자 지식생산자로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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