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낮은 시선으로부터] 불온한 한 표의 또 다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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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게임

늦은 점심을 한 술 얻어먹고 햇볕이라도 쐴 요량으로 문을 나서면 언제나 서늘한 바람 한 줌이 먼저 반긴다. 허름하게 여민 옷깃 사이로 한사코 파고드는 여전히 찬 봄바람이 넌덜머리라도 날 법도 한데 그나마 나를 알은체 해주는 듯해서 히물쩍 웃고 만다. 그렇게 또 한 계절을 보낸다. 조붓한 아파트 출입구 맞은편 담벼락에 일렬로 단정하게 붙었던 선거 벽보가 며칠 지난 선거의 후유증처럼 찢어지고 해져 볼썽사납다. 선거란 게 오직 한 사람만 이기는 싸움이어서 막상 싸움이 끝나고 나면 나머지 진 사람들 모두가 틀린 사람이 되는 잔인한 게임인 셈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세월의 찌든 때에 얼룩진 담벼락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아련하다. 그 아련한 햇살도 버거워 게슴츠레 뜬 눈에 보인 후보 한 사람. 오른손을 이마에 붙여 경례를 하면서 환하게 웃는 표정과 도드라지게 빗어올린 머리 모양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후보는 ‘국가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다’고 일갈하고 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이기는 이번 싸움에서 어쩌면 저 사람만이 승리자는 아닐까 괜한 우려를 해본다. 하기야 이번 선거의 판세는 진작부터 결정이 났다. 워낙 게임에서 진 자가 속한 집단이 온갖 실수를 해온 터라 소문난 잔치처럼 왁자지껄 했지만 그 결과는 싱겁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이긴 자와 이기고 싶었으나 진 자와는 상관없이 출마를 통해 제법 짭짤한 성과를 올린 사람이 있는 듯하다. 그는 무려 3위를 차지했고, 1.07%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무려 5만2107표를 얻었다.

  • 괴짜들의 역사를 걱정하는 이유

그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대체로 희화화 되어 있다. 공중부양을 하고 축지법을 쓰며 가끔은 사기도 친다는 것. 이번 선거까지 무려 7번이나 공직선거에 출마했으며 기상천외한 공약으로 복잡하고 시끄러운 선거 분위기를 나긋나긋하거나 투표에 냉소적인 유권자들의 사표(死票)용으로 이용되었던 괴짜 정치인. 그런 그가 제법 알려진 군소정당의 후보들을 꺾었다. 이 황당한 상황에 많은 사람들은 그저 재미있어 했고 미디어는 그를 주인공으로 한 기사들을 쏟아내며 클릭장사에 여념이 없다. 이런 현상을 나만 우려하는 걸까? 아니다. 영국의 작가 톰필립스가 쓴 ‘인간의 흑역사’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실제로 히틀러는 무능하고 게으르고 병적으로 자기중심주의적인 사람이었고 그의 정부는 완전히 코미디였다…<중략>…정적들은 그의 투박한 연설과 유치한 유세를 들어 그를 한낱 웃음거리로 치부했다. 어느 잡지에 따르면 그는 ‘한심한 얼간이’였고, 그의 당은 ‘무능력자 집단’이며 ‘어중이떠중이들 잔치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적들에게 어리숙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히틀러는 나치를 독일 의회 최대 정당으로 이끌었고 마침내 초헌법적인 권한을 가진 총통이 되어 세계 2차대전을 일으켜 무려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등 인류 최악의 만행을 저질렀다. 그를 히틀러에 빗대는 게 너무 과한 상상력일 뿐이라구? 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 1995년 지하철역 사린가스 테러로 일본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사이비 종교 단체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어떤가? 쇼코 역시 온갖 기행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교세를 확장했고 급기야 ‘진리당’을 만들어 공직선거에 출마했었다. 그 누가 쇼코의 만행을 예측했을까?

  • 단 한 표의 의미, ‘모두’를 위한 결정이기를

이제 선거는 끝났고, 이긴 자는 환호하고 진 자는 반성한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한 선거는 계속될 것이고 선거를 통해 선택된 자가 ‘권력’을 송두리째 독점하게 될 것이다. 그 권력 독점의 울타리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따질 테고 그 이익의 많고 적음에 따라 자신의 투표의 향방을 정하게 되겠지. 투표의 자유가 있다고 해도 우리가 던지는 단 한 표는 ‘나’는 물론이거니와 ‘모두’를 위한 결정이어야 하지 않을까?

혼자만의 시간이 긴 요즘이다. 무시로 읽어대는 책들이 쌓이는 만큼 괜한 상상들도 책상 틈에 더깨앉은 먼지처럼 자욱하다. 그 자가 이번 선거에서 얻은 득표가 스스로 괴물이 되거나 혹세무민을 위한 밑거름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도 어쩌면 괜한 기우일지 모른다. 이제 묵은 때처럼 켜켜이 쌓이기만 하는 쓸데없는 상념들은 저만치 털어내고 다시, 기지개를 켤 때가 되었다. 여전히 봄인데 이제 그만 일어나야지.

[더인디고 THE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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