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모든 게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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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가 그려진 손피켓으로 얼굴을 가린 사림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이 차, 주인 누구예요?”

미용실 문 앞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청년이 불특정 다수에게 질문했다. 두세 번 반복했지만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옆 가게로 이동하더니 다시 물었다.

“저 식당은 왜 문을 닫았어요?”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역시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다시 미용실 앞으로 온 청년은 차 주인이 누구냐며 같은 질문을 했다. 나라도 대답하려고 몸을 돌렸더니 미용사는 복화술 하듯 암말 마라고 눈을 찡긋했다. 청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저 청년은 늘 질문만 하고 다녀. 처음엔 대답을 잘해 줬더니 일을 못 할 정도로 연관성 없는 질문을 계속하니 이제 못 들은 척해야 빨리 간다는 걸 다 알아. 정도껏 하면 좋을 텐데…”

미용사의 설명이 잘 이해되는 나는 안타까웠다. 그런 성향의 자폐 청년을 많이 알고 있었기에 청년의 모습이 그날 내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한때 나는 자녀가 말을 많이 해서 힘들어하는 엄마들을 볼 때마다 나도 그런 어려움을 겪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표현 언어라고는 우리 가족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밥’과 ‘물’뿐, 모든 것을 짐작과 추측으로 소통하는 아들과 함께 산다는 게 쉽지 않았을 때였다.

“어머~ 하진 어머니, 안녕하세요?”

학교에서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던 보리. 인사성 밝은 보리를 칭찬하자 의외로 보리 엄마는 입을 삐죽거렸다.

“좀 있다 다시 만났을 때 어떻게 하나 봐요~”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을 다녀 온 보리는 조금 전의 억양이나 표정이 전혀 바뀌지 않고 나를 몇 년 만에 본 것처럼 해맑게 인사했다.

“어머~ 하진 어머니, 안녕하세요?”

보리 엄마는 그것 보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나는 보리가 부러웠다. 엄마는 되풀이되는 말을 듣느라 괴로울 수 있어도 양껏 말하며 사는 보리는 행복할 것 같았다.

“아줌마! 대학 어디 나왔어요?”

자폐 청년 케이의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그냥 ‘○○○ 나왔어.’ 해도 될 걸 얘가 왜 이런 걸 묻나 싶어 인상이 굳어졌다.

“그런 거 물어보면 기분 나쁠 수 있으니 안 했으면 좋겠어!”

케이는 듣는 둥 마는 둥 허공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우리 엄마랑 아빠는 ○○대학 졸업했고 형은 ○○대학 나왔는데…”

혼자 웅얼거리는 걸 보면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본인 의지로 잘 안 되는 ‘장애’라고 이해하니, 머리카락을 꼬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아들과 보이는 현상만 다를 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오묘한 정신세계를 이해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발달장애 청년들이 모여 자조모임을 한다. 볼링과 당구 등 취미활동과 간단한 장을 보고 식사를 준비하는 등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들을 즐기며 연습한다. 그러는 사이 부모들은 선생님과 함께 다른 공간에서 집에서의 자녀 일상을 나누며 어떤 방식으로 그들과 소통하며 잘 살아가야 할지를 배운다. 케이의 질문에 대해 선생님은 ‘저도 그 질문 받았는데요.’라며 웃었다. 선생님과 케이와의 일대일 수업을 통해 나눈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나는 내 속에서 뭔가 쿵!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케이는 대학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수능 시험을 봐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난 수능 못 보는데…’로 대학은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 열망이 가시지 않아 사람들을 보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궁금한 것이었다.

쌍둥이 형이 책을 보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케이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때 케이는 본인 생각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자해와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이 장애인임을 인지한 케이는 장애를 무기로 삼았다. ‘나는 장애인이에요’를 처음 들었을 때는 신선했다. 하지만 그 말이 자신을 보호하고 이해받기를 원하면서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내가 뭘 해도 장애인이니까 당신들이 다 봐 달라’는 표현으로도 보였다. 양보와 타협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케이 엄마는 아들의 소원인 대학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고집만 내세우고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케이를 대학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세상일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게 아님을 깨닫게 하려고 긴 세월 개별 상담으로 상황을 파악하게 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자조모임에 주력했다.

케이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지만 자폐의 특성은 감출 수가 없다. 성격은 본인의 의지로 바꿀 수 있어도 자폐로 인한 행동은 끝까지 가지고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자폐성 장애인이 판에 박힌 일을 완벽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수행하려는 특성이 과거에는 약점으로만 여겼다.

최근에는 장점으로 보고 이를 활용하여 진로개발을 하기도 한다. 상동 행동이나 자기 자극 행동 역시 적응에 도움이 되는 행동으로 보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해되고 있다. 이들의 행동이 반사회적이거나 자해거나 과하게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이해해 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발달장애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가까이서 그들을 지켜보는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조금 더 깊이 볼 수 있다면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7번방의 선물’이나 ‘채비’, ‘증인’ 등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서번트 신드롬이나 다소 기능이 높은 발달장애인들이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과 배제가 일상이다. 영화를 통해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장애를 좀 더 잘 수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용실에서 만난 청년도, 해맑게 인사하는 보리도 어쩌면 자신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해소하지 못해 호소하는 방법이 그것일 수 있다. 그러는 이유를 나는 모르지만 본인은 간절함이 있겠지 생각해 주는 마음이면 되겠다. 발달장애인의 언행을 비장애인들이 다 이해하고 호의적일 순 없다. 나부터라도 이들에게 관심과 애정으로 다가간다면 발달장애인의 삶이 조금은 덜 외롭고 더 행복하리라 생각한다.

[더인디고 THE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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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syk@gmail.com'
cooksyk
3 years ago

귀를 닫고 자기 말만 하는 요즘 세상이 안타까워요 장애인들뿐 아니라 아직 언어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 청력이 약한 노인들 모두에게 마음을 열고 귀를 열어 함께하는 세상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