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서울에서 난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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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수업
ⓒPixabay
  • 자막과 수어통역 없는 온라인강좌, 청각장애인에게는 유선없는 시골 TV
  • 판서로 대체되는 온라인 방송, 시각장애인에게는 난시청 지역의 라디오 소리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탐구생활’이라는 방학 과제물 책이 있었다. 교과 관련한 내용도 있고 상식이나 교양과 관련한 내용도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방송수업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TV나 라디오로 설명을 들어가며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책만 보고도 알거나 풀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다양한 자료를 제시하면서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방송은 공부나 숙제마저도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살았던 지방에서는 EBS 채널이 잘 나오지 않아 유선방송을 달아 놓은 친구 집에서나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라디오 방송은 긴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들을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어떤 날은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듣다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서울로 전학 온 후 첫 방학! 우리 집 TV에 유선을 달지 않아도 EBS 방송이 깨끗하게 나온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라디오도 물론 깔끔하게 나왔고 ‘탐구생활’의 학습 환경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달라졌다.

개학날 친구들이 제출하는 결과물도 이전 학교 친구들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답란이 모자라서 별도의 종이를 붙이거나 다른 노트까지 동원해서 적어내기도 했다. 서울 문구점에서 탐구생활 지도서와 풀이집까지 판매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서울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 수밖에 없구나 하고 씁쓸하게 인정하였다.

코로나19 사태로 개학이 늦어지면서 학교에서 온라인 학습방법들을 연구하고 만들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시행착오도 있지만 발달된 IT 환경은 생각 외로 훌륭한 온라인 학습 자료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대학들은 온라인 강좌를 개설했고 중, 고등학교들도 다양한 사이트와 연계하여 가정학습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편리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이것을 계기로 관련 연구를 더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긍정적인 제안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아주 큰 문제가 있다. 시각이나 청각 장애 학생들은 강의 내용이 어떠냐와 관련 없이 큰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자막이나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온라인 강좌는 청각장애 학생들에게는 유선 없는 시골의 TV와 다를 것이 없다.

독화가 가능한 친구들은 조금은 나은 상황이지만 마스크 끼고 나오는 강사들의 방송은 아무 소용없는 기술이 돼 버린다. 시각장애인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판서나 자료화면들로 대체되는 온라인 방송은 알 수 없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던 난시청 지역의 라디오 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림이나 PDF 위주로 제공되는 학습자료들도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무엇보다 온라인 강좌나 자료가 탑재된 사이트의 접근성 자체가 보장되어 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안 그래도 몇 배의 수고로움을 들이면서 공부하는 장애학생들에겐 한 번 더 장애를 느끼게 하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강의나 자료 접근성의 차이는 장애 학생들에게 평등하지 못한 교육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또 다른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위기는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더 나은 기회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장애학생들이 겪는 지금의 불편함과 불평등이 기회의 기울어짐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모든 것이 평등해야 하지만 교육은 무엇보다 평등해야 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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