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시각장애인은 어떤 수학을 배우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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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ixabay
  • 필산 대신 암산, 두 눈 대신 지팡이 사용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나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그리고 나 역시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중증 시각장애인이다.

일반적인 상식에서 잘 연결되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시각장애와 수학이라는 이질적인 조합을 가진 나를 소개하면 대부분은 “우와! 대단하시네요.”라는 탄성을 보낸다. 또 적극적인 몇몇은 각자의 고정관념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비현실적 실존을 납득하고자 질문을 이어서 한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어떤 수학을 배우나요?
-선생님은 어느 대학을 나오셨나요? 시각장애인들이 가는 대학이 많은가요?
-도형이나 그래프는 어떤 방법으로 가르치나요? 뭔가 특별한 도구가 있나요?

매 번 반복되는 비슷한 유형들의 물음을 내뱉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이전엔 들어보지 못한 신기한 무언가를 기대하며 반짝거리지만 나의 대답은 의외로 싱겁고 간단하다.

“우리도 똑같은 교과서로 똑같은 수학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지적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일부의 학교를 제외하면 특수학교도 공통교육과정을 동일하게 적용받는다. 매체가 점자이거나 확대된 글자인 것 정도만 다를 뿐 집합, 삼각함수, 미적분, 확률과 통계도 같은 시간, 같은 양으로 배운다.

암산과 연상법으로 복잡한 방정식이나 기하도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다는 말이 이어지면 여기저기서 믿을 수 없다는 탄성이 나오기도 하는데 시각장애인들에게 초능력이 있거나 집단특유의 천재성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숟가락만 사용하던 민족들이 젓가락 사용하는 동양인을 보고 감탄하는 것과 어쩌면 비슷하겠다. 어릴 때부터 젓가락 사용이 당연함을 넘어서 의무교육에 가까웠던 우리들은 원래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다기보다는 처음부터 그렇게 음식을 먹어왔기 때문에 그것이 엄청난 재주라고 느끼지도 못한 채 익숙한 것이다.

시각장애 학생들도 필산도 하고 그림도 그려가면서 문제를 풀면 좋았겠지만 애초부터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암산하고 연상하는 방법으로만 수학을 풀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보통의 사람들이 신기해 할 만큼 암산이 빨라지기도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젓가락질만큼이나 별것 아닌 익숙함일 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시각장애인들은 전부 천재라는 소문이 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일반학교의 학생 중에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훨씬 많은 것처럼 시각장애 특수학교도 비슷한 비율을 따른다.

시각장애인이라서 수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수학을 특별히 더 싫어하거나 못하는 것도 아니다. 비장애인에 비해 어느 정도 불편함이 존재하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그것마저도 보조교구나 교수법이 그들의 상황에 맞게 만들어지지 않는 탓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교과서를 보는 만큼 시각장애 학생들이 가는 대학도 따로 있지는 않다. 나 역시 다른 일반학교 수학교사와 같은 사범대학을 나온 국가자격증 가진 정식교사이다.

다시 말하면 비장애인 친구들과 경쟁하며 대학을 다니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지만 난 수학을 하고 싶었던 사람이고 그런데 시각장애가 있었으므로 나름의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무사히 졸업을 했을 뿐이다. 특별한 것은 의외로 거의 없었고 우수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시각장애 때문이라기보다는 나의 실력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시각장애가 있는 나의 삶을 물을 때 어떤 수학을 배우고 어떻게 공부하냐고 묻는 것처럼 늘 특별한 대답을 기대한다. 어떤 도구로 밥을 짓고, 어떤 기구로 청소를 하며 어떻게 방향을 찾는지 궁금해 한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길을 걷는 것처럼 또 같은 교과서로 같은 수학을 배우는 것처럼 의외로 시각장애인만의 특별한 다름은 없다. 단지 필산대신 암산을 하고 두 눈 대신 지팡이를 사용하듯이 조금 다른 과정을 거칠 뿐인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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