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를 말하다] 장애학 열풍

  • 윤은호의 ‘왜 자폐당사자는 죄송해야 할까?’ 세 번째 이야기
윤은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윤은호 집필위원] 지난 시간 《성인기 자폐》를 통해 해외의 자폐당사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자기정의가 우리나라의 상황과 다르게 많은 연구자들을 배출해 내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성인기 자폐》가 가지고 있는 의의는 자폐당사자들이 스스로 자신에 대한 규정을 깊이 하고 있거나, 연구자가 되어서 ‘장애를 극복’했다느니, ‘장애를 딛고 성공’했느니 하는 사례들이 해외에는 많더라고 하는 희망을 만들어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성인기 자폐》는 지금까지의 장애학(장애연구)의 학술적 성과에 대해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보자. 지금까지의 장애학 학술지들이 자폐당사자들의 삶을 반영해 왔고, 그런 논의의 장이 이뤄지고 있었다면, 자폐 당사자 연구자들이 장애학의 기존 체계에 동감하고 있었다면, 이런 학술지가 생겨날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그런 논의가 장애학에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자폐당사자들이 장애인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연구의 영역 바깥으로 뛰쳐나간 것이 아닐까?

국내에서 장애학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시점이지만, 해외에서는 이와 별도로 장애학(장애연구가 맞는 번역이지만)이 성립된 이후 대학이나 각종 학술지 등을 통해 깊은 논의를 진행해 왔고, 지체감각당사자들의 참여 또한 활발했다. 그래서 장애학은 문화연구, 젠더연구와 함께 20세기 후반의 국제적 학제연구로서 성립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장애학이 지금까지 모든 장애인의 경험을 충분히 담아 왔다면, 자폐당사자들이 《성인기 자폐》라는 별도의 학술지를 만들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학술지가 생겨났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그동안 장애학이라는 연구 분야에서 정신적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기회가 적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폐당사자들의 상황을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단어로 ‘안 보이는 장애’, 또는 ‘보이지 않는 장애’ (Invisible Disabilities)라는 단어가 있다. 미국 안 보이는 장애 협회(Invisible Disabilities Association)에 따르면 안 보이는 장애는 밖에서 쉽게 보이지 않지만 개인의 움직임, 감각작용, 행동을 제한하거나 어렵게 만드는 신체적, 정신적, 신경적인 장애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안 보이는 장애를 가진 당사자들은 오해나 잘못된 인식과 판단을 받기 쉬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안 보이는 장애는 다른 장애에 비해서 손상을 통한 사회적 차별이 더욱 두드러지는 장애이기도 하다.

안 보이는 장애라는 개념은 동시에 장애인이라는 단어나,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형성하는 담론이 모든 장애인을 비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함축하기도 한다. 안 보이는 장애 개념 자체는 자폐당사자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안 보이는 장애는 자폐보다는 난치병, 경계선 정신장애, 경계선 감각장애 등을 설명하는데 사용된다. 안 보이는 장애라는 개념과 그 실천이 모든 대상자가 아닌 일부대상자를 조명하듯, 당연히 그보다 큰 장애와 장애인 개념도 사실은 일부 당사자를 조명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에서의 최근 장애학 열풍에 대해 찬성하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더 많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 장애학이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장애인’들을 새롭게 조직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장애당사자가 장애학을 통해 연구자가 되는 것은 반드시 앞으로도 활성화되어야만 한다. 장애연구를 통한 연구와 실증적 접근 또한 확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장애학이 모든 장애당사자가 아닌 기존의 통전적 연구에 기반한 연구 실천(practice)을 반복한다면, 자폐특성을 포함한 안보이는 장애가 장애학 속에서 질식되는, 다시 말해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현상이 정당화된 채로 계속되지 않을까?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사실이 있다. 장애학이나 장애담론이 자폐나 ‘안보이는 당사자’를 포괄하지 못하는 현상은, 일반 장애인과 소수장애인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장애인 전체가 상호적으로 소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애인을 말할 때 기본적으로 정신적 장애당사자가 그 개념에서 빠져있는 것이다. ‘발달장애인’ 관점에서도 이 사실은 유효하다. 지적당사자가 자폐당사자와 소통하고 있지 못하기(때문이리라 믿고 싶다) 때문에, 현재의 ‘발달장애인’ 논의에서 자폐당사자의 목소리가 제외되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점을 다시 바꾸어 보자. 앞서 말했듯이 이 학술지에는 자폐당사자가 전체 학술지 관계 인원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박사와 석사가 많다. 다시 말해, 영국, 미국, 유럽 지역에는 자폐당사자성을 가진 당사자가 고등교육, 특히 대학원에 쉽게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학술지를 구성하려고 했을 때 실무진들이 곧바로 떠올릴만한 자폐를 가진 연구자들이 있을 정도로 많은 자폐당사자들이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다는 방증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학술지가 품고 있는 의미는 달라진다. 한국에 살고 있는 자폐당사자 중에 지적장애를 겪지 않고 있는 당사자들 또한 연구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러한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고, 나는 우연에 가까운 확률로 박사학위를 받았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자폐당사자들이 한국 사회 속에서 그만큼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다시 말해, 자폐당사자들이 사회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현재의 장애학이, 그리고 장애계 속에 있는 장애인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현재 자폐당사자 대다수는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왜 지금 발휘하고 있지 못하는 걸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현재의 장애등록 제도에 대해서, 그리고 둘째로, 해외의 대다수 자폐당사자가 자신을 다른 장애인과 다르게 여길 수밖에 없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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