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소풍 2화

2년 전, 그 새벽의 끝을 남자는 온전히 기억하지 못했다. 퍼즐조각처럼 낱낱이 쪼개지고 헝클어진 기억은 잠깐의 노루잠을 훼방하듯 끼어든 꿈처럼 아슴아슴했다. 어느 날은 과장 승진 이후 납품업체 사장들과의 첫 미팅 자리가 설핏 떠오르기도 했고, 남자의 혀끝은 연거푸 받아 마신 아릿한 폭탄주 맛을 불현듯 기억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자욱한 담배연기와 질펀한 술자리, 화장실에서 받아 챙긴 몇 개의 갬직한 돈 봉투들……. 그리고 남자는 이틀 후에 병원 중환자실에서 겨우 의식을 되찾았다. 신호대기 중인 남자의 차를 덮쳤던 덤프트럭 운전사는, 사고의 원인이 졸음 탓이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며 아내는 울먹였다. 덤프트럭은 남자의 차를 타넘었다고 했다. 트럭은 육중한 바퀴가 술에 취한 채 뒷자석에 길게 누워서 자고 있던 남자의 양쪽 무릎관절을 으깨어놓고 운전석 대리기사의 몸뚱이를 짓밟고서야 겨우 멈췄다고 했다.

의식을 되찾은 남자가 감쪽같이 사라진 두 다리를 내려다보고 울부짖자, 사람들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며 위로하려고 애썼다. 남자의 차를 운전했던 대리기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며, 남자의 기적 같은 생환(生還)을 도리어 축하하기도 했다. 그런 방문객들 뒤에 병풍처럼 서있던 아내는 사람들이 돌아가자 남자의 두 다리가 놓여있어야 할 침대 빈자리를 손으로 쓸며 소리 죽여 울었다.

호각 소리가 잠잠해지자 공원은 또 다시 깊은 정적이다. 계반장 주변으로 휠체어들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인다. 스무 명 남짓 모였을까, 계반장이 나눠준 봉투 하나씩을 받아 챙길 때에는 얼핏 입가에 웃음기를 보이는 축들도 있었으나 이내 표정을 말끔히 지워낸다. 남자의 눈에는 도무지 소풍 가는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다. 계반장이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든다. 사람들의 심드렁한 눈빛들이 남자의 베란다로 쏠린다.

“어여 내려오지 않고 뭐 하고 있소? 곧 버스가 온다니까!”

계반장이 손나팔을 입에 대고 악을 쓴다. 남자는 체념한 얼굴로 그를 향해 알았다는 표시로 머리를 주억거려 보인다. 언제 시간나면 소풍이나 가자며 콩팔칠팔 조작거리던 계반장의 권유를 흰소리쯤으로만 여긴 남자는 쉽게 그러자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소풍을 가야 한다니, 남자는 치미는 짜증을 애써 참는다. 저 많은 장애인들과 섞여, 또 낯선 봉사자들에게 일일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불편한 외출은 상상만 해도 신경이 곤두서는 고역스런 경험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아파트 단지는 물론 동사무소까지 곳곳을 풀 방구리 쥐 드나들듯 하며 시시콜콜 참견하길 제 일로 삼는 계반장이고 보면, 그와의 약속을 쉽사리 묵살할 일도 아니었다. 이 고역스럽고 찜찜한 나들이를 다녀오면 남자도 저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볕바른 공원에 나가 해바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아파트 출입계단 옆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는 휠체어에 앉은 남자의 어깨가 움찔거린다. 휠체어가 경사로를 따라 급하게 내려가지 않도록 바퀴 굴림쇠를 한껏 부여잡은 손바닥이 뜨거운 탓이다. 겨우 경사로를 내려온 남자는 휠체어를 정지시킨 후 손바닥을 입김으로 후후 불며 눈살을 찌푸린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 거추장스러운 휠체어에 익숙해질까 싶은 것이다. 정자 앞에 휠체어를 세운 남자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을 휘둘러본다. 대부분 또래거나 더러는 서너 살, 많게는 십년도 훌쩍 나이 차이가 날 법한 중늙은이도 섞여 있다. 남자는 제풀에 후드득 어깨부들기를 떤다. 이제 저들과 같은 부류로 분류되고 취급되면서 남은 살이를 견뎌야 한다는 현실에 목덜미가 선뜩하다. 남자는 눈으로 계반장을 찾는다. 지역의 한 장애인단체에서 이곳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장애인들과 함께 벌인 일종의 복지사업이라며 굳이 함께 가자고 짓조르던 계반장은 정자 밑에 휠체어를 세워둔 채 시틋한 표정으로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다.

남자는 지금껏 <복지공원>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곳 주민들에게 공원은 꽤 각별한 장소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였다. 아침 무렵이면 일찌감치 조반을 챙겨 먹은 노인들이 모여들었다. 대개 혼자 사는 노인들이거나 부부 한 쪽이 자리보전하고 누워 수발에 어지간히 이골이 난 노인네들이라고 했다. 요즘 들어 부쩍 노인들의 손에 딸려 나오는 어린 것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이들도 노인들의 성정을 닮아가는지 놀이터 쪽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햇빛 그들먹한 맨땅에 쪼그리고 앉아 해바라기만 할 뿐이었다. 거덜 난 부모를 대신해 손자들을 거두느라 푼돈벌이에 아등바등 애쓰는 축들에게는 이런 해바라기도 호사일 것이 분명했다. 노인들은 지친 표정으로 허옇게 닳아빠진 정자 끝에 걸터앉아 오전 내내 햇볕을 즐겼다. 어느 때에는 신문지에 싼 콩나물 따위를 들고 나와 흐린 안정(眼精)을 비벼 대며 다듬거나, 삼삼오오 모여앉아 화투패를 돌리며 맥 빠진 탄성을 지르기도 했지만 늘 마주했던 이웃 노인의 느닷없는 부재(不在)만은 한사코 입에 올리는 법이 없었다.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하지만 소설쓰기는 호구지책이 못되어서 세상을 배회하다 지금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뿐입니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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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yworld@gmail.com'
애독자
1 month ago

일주일에 두개씩 올려주세요!!!!

Editor
조 성민
1 month ago
Reply to  애독자

8회에 걸쳐 연재되는 단편 소설입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