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매드(mad)’ 같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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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캡처
  • ‘매드(mad)’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반격과 모순
더인디고 이지은 집필위원

[더인디고=이지은 집필위원] 장애학과 장애인 운동은 각각 어떤 사람의 비정상으로 간주된 몸을 끊임없이 정상으로 만들려는 재활과는 결이 매우 다른 학문 분야이다. 정신보건 분야에도 이러한 것이 존재한다. 그러한 학문적인 시도가 광기학(mad studies)이고, 사회적 구조와 시스템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정신의학 생존자 운동(psychiatric survivor movement)’이다. 이 운동의 한 행사가 매년 전 세계적으로 개최되는 매드 프라이드(mad pride)이다.

본 글에서는 어떻게 이 ‘매드’라고 불리는 것이 한국 땅으로 건너와 이상하게도 의식적으로 저항해야 하는 몹쓸 거시기가 되었는지에 대한 울분 섞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첫째, 매드가 들어간 것의 주체는 정신의학 생존자이다. 매드와 관련 있는 모든 것에서 누가 주체이고, 누가 조력자인지에 대한 질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신의학 생존자는 자신의 ‘질병’에서 생존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의미로 용어를 쓰는 사람이 서양에 일부 존재하지만 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생존자로 인식되지 않는다.

정신의학 생존자는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고 강압하는 시스템과 현상 유지가 되어야 이득인 전문가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광기학뿐만 아니라 매드 프라이드에서도 전문가의 역할은 조력자여야 한다. 자신을 조력자라고 말로 인정하긴 쉽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요청이 있을 시에만 임시적 역할로 운동에 힘을 실어주는 존재로 함께 해야 하며, 중심이 아니라 배경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여태까지 지켜본 결과,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이러한 것이 전문가의 또 다른 자기영역 넓히기로 변질되어 표현되는 것에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 그 한 예로, 매드 프라이드에 깊이 개입했던 소위 진보적 정신과의사는 홍보 토론회에서 이 행사가 “정신의학의 문턱을 낮추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게 도대체 말인가 막걸리인가.

정신의학협회를 포함하여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무수히 많은 단체와 전문조직이 있거늘 도대체 왜 정신의학을 저항해야 하는 그 유일한 곳에 와서 정신의학 문턱 낮추기를 외치고 있는지 이해불가다.

둘째, 광기학이나 매드 프라이드도 한때 유행처럼 번졌다가 세월 속에 사라지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광기학과 매드 프라이드가 유행처럼 인식될 경우 가장 큰 문제점은 그 철학과 의도가 훼손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신의학 생존자’라는 말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여전히 의료모델에 기초한 ‘정신질환자’나 조금 순화된 ‘정신장애인’이라는 단어, 또는 누가 ‘당사자’이고 누가 아닌지에 대한 참 이상한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용어를 쓰다 보니 광기학이나 매드 프라이드에 깔린 철학도 같이 그 본 색채를 잃어간다. 마치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따라 ‘당사자’ 정체성을 선택하여 취하길 원한다는 착각을 하게끔 말이다.

참고로, 장애 분야에서 학문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의 일부도 정신보건 분야의 정체성에 대한 민감함 없이 “당사자세요?”라는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해 대며 무지함을 보이니 그저 할 말이 없다. 이런 주장을 펼치면 한국엔 다른 용어가 없다느니, 아니면 한국 사람들이 아직 급진적 용어에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느니 하는 핑계 섞인 이유를 쏟아낸다.

우린 서양의 정신의학을 받아들여 모든 용어를 번역하여 쓰고 있는데 ‘정신의학 생존자’라는 용어는 왜 쉽게 쓰지 못하는 걸까? 지금 당장 익숙하지 않다고 더 나은 용어를 쓰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가 정신의학이나 의료모델의 관점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까?

광기학이라는 학문과 ‘광기의 자존심’이라는 매드 프라이드 축제가 있는 이유는, 그 정체성이 가진 특수성, 즉 사회의 편견과 차별, 끊임없이 존재 자체가 비정상이라는 의료모델의 권력으로 인해 그 어떤 소수자 정체성보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의도적으로라도 정신보건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식생산의 구축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또 일상에선 부정적으로만 느껴지는 정체성을 하루라도 길거리나 광장에 나와 축하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매드’ 정체성을 안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이 없는 광기학이나 매드 프라이드는 유행처럼 번지고 없어질 허울뿐인 ‘매드’이다.

진실로 광기학과 매드 프라이드의 의미를 되살리고 싶다면 우리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외형적인 것이나 성취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현실의 학문과 실천현장에서 어떤 철학이나 신념을 구현하고 있는지를 뼈아프게 점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의 출발점으로, 광기학에 대한 강의나 매드 프라이드 행사 자원봉사자 인권교육은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매드’라고 불리는 것의 원조이자 주체인 정신의학 생존자가 해야 한다. 생존자는 자신의 ‘밥그릇’이 되찾아지기를 강력히 주장해야 하는 것이다!

정신의학의 문턱은 지금도 충분히 낮다. 그리고 이에 대한 증거는 우울증, 공황장애를 경험했다고 자랑처럼 고백하는 연예인들, 집중하지 못한다고 ADHD로 진단받아 어릴 적부터 정신과 약물을 처방받는 아이들, 직장이나 가정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지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전문적 상담을 권고하는 우리 사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미국 정신과의사 앨런 프란시스가 그의 책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어떻게 정신과의사와 제약회사가 합작하여 더 많은 사람을 정신보건 산업의 평생 소비자로 만들기 위해 정신장애진단편람(DSM)이라는 진단도구를 사용하여 일상의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정신병으로 재해석하고, 정신과의사와 약물에 의존하는 삶을 살게 하는지를 지적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이 본래의 철학을 잃고 주체성의 혼란에 빠진 ‘매드’라고 불리는 모든 것은 정신의학의 손아귀에서 고통 받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질병 논리에 세뇌되어 아직도 자신들의 목소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정신의학 생존자는 물론이고, 정신과의사이면서 정신의학을 비판하고 ‘정신의학 밖에 회복이 있다(recovery beyond psychiatry)’고 주장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평 정신의학자(critical psychiatrist)’에 대한 모독이 아닐 수 없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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