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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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계
사진 = 픽사베이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 안승준 편집위원] ‘해와 바람’이라는 이솝우화에서는 두 캐릭터가 지나가던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한 내기 장면이 나온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바람은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강함만을 추구하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온화한 해는 따뜻한 볕으로 나그네 스스로 옷을 벗게 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해와 바름은의 궁극적 목적은 스스로의 우월함을 뽐내기 위함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그네의 입장을 생각해서 답답한 겉옷을 벗기게 하고 싶다면 깔끔한 샤워장과 편안한 침대를 제공하거나 멋진 새 옷을 선물하는 편이 나앗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냥 기다려 주는 것만으로 그들의 목적은 달성되었을 것이다.

며칠 전 퇴사를 고민하는 친구를 만났다.

고민의 시작은 실수를 지적하는 상사의 작은 꾸지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상사의 훈계는 의도치 않은 실수를 저지른 친구가 느끼기엔 범위와 강도가 너무 과했던 듯하다. 복무의 원리원칙을 처음부터 낱낱이 읽어주던 상사의 설교는 다른 후배의 인성평가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질책은 끝이 났고, 이후 혼이 난 친구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의욕 감소와 상사에 대한 반감이었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시작된 꾸지람이었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심하게 상한 기분에 묻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듯 했다. 실수가 반복되면서 질책과 그런 감정이 또한 짧은 시간에 되풀이되었다. 상처를 입은 친구는 일에 대한 근본적인 의욕을 잃었고 결국 퇴사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상사의 처음 의도는 후배 직원이 저지른 실수의 교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의 목적과 관계없는 다른 것들과 섞이면서 후배의 발전과 관계없는 엉뚱하고도 비생산적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상사는 후배를 가르치기 위해 본인의 훌륭한 업무능력을 뽐내고 싶었을 수도 있고, 하필이면 그날따라 나빴던 감정이 그 순간 화풀이하듯 터져 나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후배를 위한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의 의도와는 정반대를 향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었다. 상사는 그냥 사람 좋은 웃음으로 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의 직업은 교사이다.

아직도 많은 순간 선배나 어른들에게 혼이 나기도 하지만 제자들을 꾸짖는 경우가 훨씬 많다. 나 스스로도 부족한 것이 많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교사된 책임으로 잘못된 것을 수정해 줘야 할 때가 종종 생긴다. 그런데 혼을 내는 위치라는 것이 참으로 묘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 작은 실수 하나 고쳐주는 것이 목적인데도 그 순간만큼 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듯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무언가 엄한 분위기에 스스로 매몰되기도 한다.

나름 경력 있는 교사로서 확신하건데 그런 경직되고 권위적인 훈계는 훌륭한 효과로 이어지기가 힘들다. ‘해와 바람’처럼 쓸데없는 힘만 허비하고 안 흘려도 될 땀만 흘리게 할 뿐이다. 난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보다 실수를 덮어주는 것이 몇 배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수는 따끔한 꾸지람보다 한 번 살포시 덮어주는 것이 그것을 고치는 데 훨씬 효과적이다. 해와 바람은 특별히 그 힘을 과시하지 않아도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선배나 교사도 그렇다. 스스로 드러내고 강하게 화내는 것이 존경 받는 길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방법으로 누군가를 교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 또한 완벽히 틀렸다. 후배와 제자의 잘못을 조금은 더 멋진 방법으로 고쳐주는 사람이고 싶다. 그것은 어쩌면 그냥 덮어주고 기다리는 것일지 모른다. 다시 말하건대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침대나 새 옷을 선물하는 것 아니면 그냥 기다려 주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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