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념 인터뷰 ②] 발달장애인과 바둑 두는 김명완 프로 8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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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누는 저널, ‘더인디고’는 2020년 창간을 맞이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권익을 대변하거나 관련 분야에서 활동해 온 분을 중심으로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한다. 유명인사뿐 아니라 장애계나 우리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분을 소개함으로써 ‘사람’과 ‘이슈’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획시리즈이다.
더인디고가 만난 두 번째 ‘이 사람’은 발달장애인에게 바둑을 가르치다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김명완 프로기사이다.

  • 바둑은 가장 규칙이 적은 게임, 바둑과 자폐인의 특성을 이해하면 어렵지 않아요.
  •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인지저하 어르신과도 바둑을 둘 겁니다.

화요일마다 발달장애인 직업적응훈련시설인 자폐인사랑협회 직업재능개발센터에서는 탄성과 침묵이 번갈아 오간다. 한쪽에서는 조곤조곤한 말소리가 쉼 없이 들려온다.

프로바둑기사 4명이 자폐청년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바둑을 가르치는 시간이다. 이제 막 바둑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청년도 있고, 조금 더 배운 청년은 훈수까지 둔다. 프로바둑기사들도 마찬가지다. 어느새 자폐청년들과 격이 없이 지내는 프로기사가 있는 반면, 이제 막 대면을 한 고수도 있다. ‘아름바둑교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지난 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체육진흥공단의 지원으로 한국기원과 자폐인사랑협회가 시범사업을 거쳐 올해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아름바둑교실’을 열었다. 아름바둑교실이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공식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이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명완 프로바둑기사 8단이다. 그는 지난 해 발달장애인이 쉽게 바둑을 배울 수 있도록 ‘아름바둑’이라는 특수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김명완 프로기사는 1994년 바둑에 입단했다. 1998년 제8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에서 준우승을 했고, 2005년 제10회 삼성화재배 세계대회에서는 8강까지 올랐다. 이후 200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한국바둑세계화사업을 추진하다가 2017년에 귀국했다고 한다. 김명완 프로바둑기사를 비롯해 바둑교실을 함께 진행하는 고수들을 성내동 소재 직업재능개발센터 3층에서 만났다.

이하 일문일답이다.

Q1. (발달)장애인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인연이 있었는지?

문화체육관광부의 해외 바둑보급사업의 일환으로 10년 동안 미국에서 바둑을 가르쳤다. 당시 한 제자가 발달장애인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한번 시도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17년 귀국을 했고, 이어 우연한 계기로 발달장애아동과 중학생을 가르치게 되었다. 당시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미안할 정도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부모님의 간절함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변화를 보며 쉽게 끝낼 수가 없었다.
그즈음 내 아이가 태어났고 그때 ‘공감’과 ‘사회적 책임’이 크게 다가왔다. 발달장애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며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을 한 것이 미안했다. 그것을 계기로 아름바둑을 열심히 개발하게 되었다.

Q2. 개인차는 있겠지만 바둑은 쉽지 않은 게임인 것 같다. 특별한 교수법이나 원리가 있나?

한국에 돌아와서 2018년까지는 혼자 자원봉사로 했다. 바둑을 잘 모르는 분들, 그 중에 발달장애인에게도 바둑을 보급해야겠다는 차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어떤 학생들은 몇 분 동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바둑을 가르치다보니 바둑은 어떤 부분이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의 특성, 예를 들면 일정한 행동 패턴이나 반복적 행동 등을 바둑의 특성과 조금씩 접목하기 시작했다.

바둑은 숫자가 없고 바둑판과 돌도 무한한데 가로세로 19줄로 제한을 했을 뿐이다. 바둑을 끝내기 위해 집이 많은 쪽을 이기게 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모든 게임 중에 규칙이 가장 쉽다. 예를 들면 장기는 움직이는 방향 등에 제한이 있지만 바둑돌은 못 가는 곳이 없다.

따라서 집이 많은 쪽이 이긴다는 기본 규칙은 바둑과 같게 하고, 바둑을 쉽게 끝낼 수 있도록 바둑판을 가로세로 11줄로 만들었다. 집을 이해할 수 있도록 숫자의 개념도 도입했다. 최대한 추상성을 없애고 끝내는 시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Q3. 바둑판과 돌이 일반적으로 보던 것과 다르다. 교구도 직접 개발한 것인가?

맞다. (바둑판을 가리키며) 현재 교구가 다섯 번째 작품이다. 2018년부터 발달장애와 바둑의 특성을 고려했지만 몇 차례 실패를 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우선 재밌어야 하고, 이해하기 쉬워야 했다. 목표도 중요하다. 바둑을 잘 두는 것이 아닌 상대방과의 상호작용을 중요시 했다.

이것을 고려해서 바둑판은 가로세로 11줄로 했고, 바둑돌이 흐트러지지 않게 자석으로 만들었다. 바둑돌도 커야 했고, 집의 면적을 쉽게 계산하도록 숫자도 만들었다. 그리고 일대일이 아닌 2~3명이 한 팀을 이루어 서로 협력하는 바둑을 두도록 했다. 한 번에 여러 수씩 둘 수도 있고, 초반 포석을 뛰어 넘어 중반 전투와 마무리 단계부터 시작함으로써 바둑을 쉽게 끝낼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에는 교육생의 약 30% 이상이 포기하더니 지금은 포기하는 학생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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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력하여 바둑을 두는 청년들/ⓒ 더인디고

Q4. 아름바둑을 확산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바둑이 문화체육관광부 생활체육 프로그램에 포함될 수 있었는가?

장애인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양한 교수법과 교재개발을 통해 접목하다보니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래서 이 과정을 촬영했고 한국기원 관계자들에게 가능성을 설득했다. 설득 과정에서 자폐인사랑협회와 바둑을 사랑하는 인사들의 도움이 컸다. 이어 한국 기원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안하면서 재정 지원도 받을 수 있었다.

Q5. 혼자 가르치는 줄 알았는데, 프로기사들이 함께하는가?

지난 해 한국기원에서 발달장애인 교육 지도자 양성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약 20여 명의 프로기사가 함께 하기로 했다. 프로기사 1명이 4명의 자폐인을 맡아 교육한다. 직업재능개발센터에서는 4명의 프로기사가 함께하고 있다.

마침 인터뷰하는 날 김명완 프로기사를 비롯해 조경호 6단, 김준석 2단, 그리고 현재 대학에서 바둑을 전공하고 있는 송혜령 2단, 도합 18단의 프로기사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아마추어도 아닌 프로 바둑기사들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4명의 프로바둑기사
▲ 왼쪽부터 송혜령, 김준석, 김명완, 조경호 바둑기사/ⓒ 더인디고

Q6. 직업재능개발센터에서만 가르치는가?

홀트강남복지관, 성분도복지관, 서울시 발달장애 사회적응 지원센터 등 5곳에서 교육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쉬고 있다.
직업재능개발센터는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문을 닫았었다. 그러나 집에서 견디기 어려운 학생들을 고려해 부모님과 센터 간 논의를 거친 후 사회적 거리두기 원칙을 지키는 조건으로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Q7. 바둑이 장애인에 어떠한 도움이 되는가?

2019년 시범사업에 참여했던 대상자(자폐성장애인)의 경우 장시간 앉아있다든지, 게임 규칙 숙지를 비롯한 상호작용 등 유의미한 교육 효과가 관찰되고 있다. 자폐학생은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 한다고 몇 분의 부모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런데 바둑을 배우면서 병원에서도 기다리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또한 어느 한곳만 응시하던 교육생들은 바둑판에 집중을 한다. 손을 흔드는 등 반복적 행동도 줄어들고 있다.

숫자를 배우는 부수적 효과도 있다. 1부터 10은 읽고 쓸 줄도 알지만 1과 10 중 어느 숫자가 더 큰지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10보다 큰 수에 대한 이해도 하게 되었다. 집의 크기, 즉 면적의 크기를 이해하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경쟁심보다는 상대방을 돕거나 협력을 배우는 등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또한 부모님이나 선생님 등과 하는 게임은 많지만 친구와 승패를 가리는 게임이 처음인 학생들이 많다. 이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명완 프로기사의 설명을 진지하게 듣고 있는 청년들/ⓒ 더인디고

Q8. 자폐 학생들만의 변화는 아닌 것 같다.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어떤가?

장애인을 생각하면 처음에는 사회가 배려하며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을 했지만 장애인을 가르치면서 내 자녀도 장애가 있으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잘 가르치려고 애를 썼고 이제는 삶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또 나의 아이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와 개인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함께하면 미래를 크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함께 참여한 프로기사들의 생각도 잠깐 들어봤다.

조경호 프로는 먼 친척 중에 발달장애인이 있는데 바둑을 가르치면서 그 친척과 유일하게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교육을 통해 자신도 배웠고 이제는 교육생과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김준석 프로도 길가다 장애인을 만나면 불편하고 피하고 싶었는데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또한 송혜령 프로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것 자체가 좋다고 한다. 승부의 세계만 생각했는데 바둑을 통해 나눔의 세계도 알게 되었다며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

Q9. 앞으로의 계획은?

프로기사로서 많은 대회 준비도 해야겠지만, 이제는 이 아름바둑교육을 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바둑을 보급하는 것이 중요한 미션 중의 하나인데, 장애인뿐 아니라 인지기능저하 어르신도 바둑을 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계획이다. 그리고 단순한 삶에서 인생의 가치를 찾고 싶다. 장애인이나 어르신을 모시는 가족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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