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같음과 다름, 또는 평등과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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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등은 혁명적 발상이자 인권의 핵심 요소
오준대사
▲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

외교관 시절 북한 인권이나 장애인의 권리와 같은 문제를 많이 다룬 덕분에 저는 대학 등에서 인권과 관련한 강의를 자주 합니다.

오늘날 인권의 보편적 개념은 세계인권선언(1948년) 제1조의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권리와 존엄성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짧은 문장에 잘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인권의 현대적 개념이 18세기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면, 학생들은 일찍부터 문명이 발달한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냐고 반문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나 중국의 왕조 시대에도 국왕이 마음대로 폭정을 일삼은 건 아니고, 좋은 군주가 되려면 백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상은 오래 전부터 있었죠. 하지만, 우리가 오늘날 이야기하는 인권의 개념이 과거의 어떤 인간 존중과도 구별되는 이유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전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등은 생각해 보면 혁명적 발상입니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똑같은가요? 특히 왕가에 태어나면 왕자나 공주이고, 노예에게 태어나면 노예가 되던 시절에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겠죠. 동양에서 성군이 백성을 배려하는 것은 왕이나 백성이나 똑같기 때문이 아니고, 신분은 다르지만 ‘좋은 왕’이 되려면 그래야 한다는 것이었죠.

인간이 평등하다는 전제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처럼 과학적 진리는 아닙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면 보다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만들어낸 이념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평등, 즉 ‘같음’은 인권의 핵심적 요소입니다.

평등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다양성이 긍정적 가치를 갖는다

그런데 우리는 인권에 있어서 ‘다름’ 즉 다양성의 존중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사람을 인종, 성별, 연령, 장애와 같은 신체적 특성으로 구분하지 말고, 누구나 다 인간이라는 공통점에 따라 평등하게 대하자는 것이 인권의 요체인데, 왜 다양성이 제기될까요?

예를 들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팔 하나가 없는 사람을 보았을 때, 차별적 인식을 갖게 되는 이유는 그가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팔이 두 개인데 그는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인권이 보장되면서, 팔이 하나이든 둘이든, 또는 기형으로 세 개의 팔을 갖고 태어났더라도, ‘인간이라는 점에서 모두 같다’는 평등 의식으로 차별과 싸워 이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남녀가 화장실을 별도로 사용하듯이 백인과 흑인도 서로 불편하니까 분리시키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는 주장이 합법적으로 존재했습니다. 물론 후에 인종 간에는 남녀의 생리적 차이와 같은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번복되었죠.

이렇게 보면 인권의 실현에 있어서 ‘같음’이 ‘다름’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부분이 있지만 같은 인간이라는 인식이 필수적인 것이죠. 달리 표현한다면, 평등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다양성이 긍정적 가치를 갖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름’이 거부감과 증오를 유발하지 않고 관심과 수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죠. 학자들 중에는 다양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평등을 저해하게 된다는 주장까지도 하는데,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평등 의식이 부족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손쉬운 주변의 예를 볼까요. 이주 노동자를 볼 때 한국인과 생긴 것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별난 음식만 먹는다는 선입견을 갖고 보면 거부감이 생깁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가 한국어를 잘 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대화를 나눠 봅니다. 그 노동자가 바라는 게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서 하루빨리 본국의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것뿐임을 알게 되면, 갑자기 우리와 별로 다를 게 없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그가 먹는 음식도 별미일 것 같아서 한번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죠. ‘같음’이 ‘다름’을 압도해서 다양성을 즐길 수 있는 거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등록 장애인의 숫자가 250만으로 인구의 5% 정도입니다. 이 통계는 유엔이 계산한 전 세계 장애인 비율 15%에 훨씬 못 미칩니다. 우리나라가 개도국보다 생활수준이 높아서 사고 등으로 인한 장애 비율이 낮은 측면도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노령으로 인한 장애가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들면 한 가지 이상의 장애를 갖게 됩니다.

돌아가신 저의 부모님도 마지막 3-10년 정도는 휠체어를 타셨죠. 노령으로 인한 장애도 통계에 포함시킴으로써, 장애가 ‘다름’이 아닌 삶의 한 단계에서의 현상이라는 인식을 넓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음’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공유함으로써 ‘다름’을 존중하고 즐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면서요.

[더인디고 The Indigo]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 UN대사와 UN장애인권리협약 의장을 역임하고, 장애인과 아동 인권을 위한 시민사회활동 및 경희대학교 등에서 평화와 국제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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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cis50@naver.com'
바람꽃 하늘 소망
3 years ago

히든 피겨스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천부적인 두뇌와 능력을 가졌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800m 떨어진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고, 여자라는 이유로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NASA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boston01@seoul.go.kr'
보스톤01
3 years ago

설득력이 탁월한 명문이네요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연상됩니다

helloram14@naver.com'
임가람
3 years ago

‘같음’이 ‘다름’을 압도했다라는 말이 너무 인상적입니다.
누구나 다름이 있고 누구나 같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부분만 강조하며 부정적 시선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사장님의 기고를 통해 다시 한번 타인을 향한 시선을 평등과 존중에 담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