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사람은 고쳐서 못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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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 교사는 기다리고 속아주어야 한다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초임교사 시절에 선배선생님께서 해 주신 조언 중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학생들이 가르치는 대로 따라오지 않는다고 조급증을 느끼며 힘들어 하는 내게 해주신 말씀인데 지금까지 나의 교육관 중 중요한 가치로 작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가르치고 끌어당긴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고 속아주어야 합니다. 설득력 있게 말하는 재주도 중요하지만 교사에게는 인내하고 참아내고 기다리는 힘이 훨씬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럴듯한 말인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르침에 있어서 기다려 준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놀라고 또 놀라는 시간을 반복했다.
화분에 물 한 번 주고 왜 꽃은 피지 않는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조급했던 풋내기 교사가 씨앗을 뿌리고 묵묵히 싹이 트고 나무가 되기를 기다리는 농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나니 드디어 보이는 변화들이 있었다. 학생들은 각자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고 그것은 교사의 믿음과 인내 속에서 더욱 예쁜 모양을 만들어 갔다. 그리고 나는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든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점점 확고히 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고민하는 나에게 선배선생님은 또 다른 조언을 던져주셨다.

“사람은 고쳐서 못 쓰는 겁니다.”

순간적으로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했다. 그냥 던지는 농담인가 생각했다. 기다리고 인내하면 누구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확신하던 내가 받은 그 조언에 대한 첫 느낌은 망언이었다. 그렇지만 선배는 아무소리나 막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믿음이 나의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무슨 말이지? 세상에는 절대 변하지 않는 포기가 답인 사람도 존재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내 역량의 한계를 보고 말씀하시는 건가?’

해결되지 않는 관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깊게 고민했다. 의견이 맞지 않고 생각의 차이도 좁혀지지 않는 어려운 관계가 떠올랐다.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관계일수록 나의 답답함도 컸지만 이상한 것은 그럴 때일수록 상대의 목소리도 그에 따른 확신도 대단했다.

나는 왼쪽이 분명한 것 같은데 상대는 오른쪽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번엔 멈춰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은 꼭 가야할 시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종교도 사상도 정치적 견해도 그 어떤 신념들도 나의 생각이 탄탄한 논리를 갖춰갈수록 상대의 견해나 신념도 튼튼한 성벽을 만들어 갔다. 그렇게 풀리지 않는 문제들의 고민 속에서 어느 순간 살짝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생각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 둘 다 명확한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의 사고는 언제나 틀릴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 물론 양쪽의 말이 모두 옳을 수도 있다. 문제는 양쪽 다 서로를 설득하려는 마음만 있을 뿐 들어주거나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답은 거기에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고쳐 쓰려는 마음은 오만하다. 고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를 이해하는 나의 마음을 바꿔야 한다. 이해하고 포용하는 나의 힘이 길러지면 내 눈에 그의 모습이 달라 보인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을 보는 내 눈이 바뀌면 세상이 변화된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이제 기다리고 인내하라는 말과 고쳐 쓸 수 없다는 말이 비로소 하나로 이어졌다. 교사라는 직업병 때문인지 난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누군가를 가르치고 설득하려는 관성을 느낀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그렇듯 난 다른 이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고 기다리는 존재일 뿐 사람을 가르치고 설득해서 순식간에 바꿔 놓는 마법사는 아니다. 사람을 고치고 사상을 바꾸는 것은 더더욱 나의 역량 밖의 일이다.

늘 겸손하고 나 스스로를 바꾸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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