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기념 기고] 특별한 스승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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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더인디고 이지은 집필위원

[더인디고=이지은 집필위원] 당신은 기억에 남는 스승이 있는가? 당신의 멘토는 누구인가? 이달 유난히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는 카네이션을 보노라면 나에겐 아주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특별한 한 분이 떠오른다. 5월 15일을 맞이하여 과거에 대학 총장님께 보낸 편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곧 졸업할 예정인 한국에서 온 유학생 이지은이라고 합니다. 제가 졸업을 앞두고 편지를 쓰는 이유는 여기에서 제 배움을 특히 가치 있게 만든 몇 가지를 소개하고, 이 훌륭한 배움의 환경에 대한 제 감사를 표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 자신의 전공을 만든 사람으로서, 전 자문위원회에 여섯 분의 교수님을 모시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주 헌신적이었고,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는데 이는 제가 가족의 문제로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면서 더 분명해졌습니다. 할머니의 죽음 등 집에서 멀리 떠나 온갖 예측 못한 상황들을 마주했을 땐 정말이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문위원회 교수님들은 제가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계셨고, 다양한 것들을 후하게 제공해 주셨습니다. 사실상, 그분들은 제가 제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때조차도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별히 전 한 분을 언급하길 원하는데 그 분은 바로 xx학과의 폴 교수님이십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전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게 있어서 그분은 교수님이나 조언자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제 멘토였고, 또 의견의 불일치가 있을 때에도 절 동등하게 대하고 저의 고유한 세상을 보는 방식을 존중해 주셨듯이 어떤 부분에서 그는 제 친구였습니다. 그는 제가 암흑 같이 어두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변함없이 절 지지해주셨고, 셀 수 없이 많은 경우에 도전을 주셨으며, 제가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할 것이라는 비전을 심어주셨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저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각각 다른 많은 형태로 보여주셨을 뿐 아니라, 겸손함, 유머, 지혜, 지성으로 가장 많이 가르치신 분입니다. 실제로, 제가 어떻게 가장 잘 배울 수 있는지를 알려 주신 분이 폴 교수님이라고 이야기 할 땐 전혀 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연구실에서 학생과 앉아 진정한 대화로 대화 상대 모두를 변화시키도록 삶의 여러 가지 것에 대해 몇 시간 동안이나 이야기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또한, 온갖 종류의 관심사를 갖고서 그의 사무실에 아무 때나 들를 수 있다는 사실은 제가 혼자가 아니고, 안전하다고 느끼게 했습니다. 어떤 가족 구성원 없이 낯선 나라에서 혼자 살고 있었을지라도 말입니다. 제가 관찰한 바, 그는 가르치는 자로서의 권력이나 힘으로 학생들을 설득하는 것엔 도통 관심이 없고,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기 위해 학생의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전 암기위주의 은행 저금식 교육은 참된 배움이 아니며,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현실세계에 관여하는 진정한 대화를 통해 발생하는 배움만이 참된 배움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전 요즘 대학교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줄 그 어떤 시간도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전 폴 교수님과의 경험으로 인해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 폴 교수님이 다양한 인종 및 문화적 배경을 가진 유학생들이 꾸준한 증가하는 이 대학교에서 당신이 학교의 총장으로서 귀하게 여기길 바라는 바로 그 교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제가 여기 캐나다에 온 이래, 이처럼 문화적으로 민감한 선생님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올 가을 이래, 전 교수님께 어떻게 특별한 방식으로 감사를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해 왔는데, 그 이유는 그냥 단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거나 감사카드를 쓰는 것이 얼마 후엔 점차적으로 따분하고, 반복적인 것이 되기에 그러했습니다. 따라서 전 이 편지와 함께 총장님이 그에게 직접 연락하거나 아님 다른 사람을 통해 “한 학생으로부터 진심어린 감사편지를 받았고, 교수님을 매우 존경한다.”고 폴 교수님께 알려 주시기를 요청 드립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싶은데 왜냐하면 그의 혀 뒤에 악성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전 그가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며, 그가 그간 가르치면서 아름답게 만진 삶들을 상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수님은 이 어려운 시기를 잘 통과하실 테지만 저도 교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습니다.

전 이미 캐나다 땅에서 몇 해의 세월을 보냈고, 이 캐나다 지역이 제게 또 다른 고향이 된 것처럼, 이 대학교도 제게 고향 같은 편안한 곳이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가 제 마음 속에 있는 열정을 가지고 겸손한 자세로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배워온 장소이자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전 이 기회에 대학의 총장님이신 당신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 학위 후에 다른 도시나 국가로 이동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전 진실의 발견과 접촉하게 된 사람들의 삶에 대해 진정 마음을 쓰는 이들과의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한 이곳에서의 경험을 항상 진중히 여길 것입니다.

친절히 이 편지를 읽어주심에 감사를 드리고,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이 매일, 매달, 매년 일어나도록 제 모교 대학교와 당신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진실의 공동체에 대한 특징은 심리적인 친밀함이나 정치적인 예의바름, 또는 실제적인 책무가 아니다. 그것이 이러한 미덕을 배제하지는 않을 지라도 말이다. 이 공동체 모델은 모든 교육이 세워진 존재론과 인식론―현실세계의 본질과 우리가 그걸 어떻게 아는지에 대한 가정들―에 좀 더 깊게 닿는다. 진실의 공동체에 대한 특징은 현실세계가 공동 관계의 거미줄처럼 엮인 웹이고, 우린 그것과의 커뮤니티에 있음으로써만이 현실세계를 알 수 있다는 공동체의 주장이다.” – 파커 팔머 (1998). 가르칠 용기: 교사 삶의 내면의 지형을 탐색하는 것. p.95, 원서발췌 글쓴이 번역

“고등교육의 수호되는 개념 내에서 느끼는 신뢰는 본질적으로 학생들과 교사들이 가능성을 투영하도록 격려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것은 관심과 상호 존중의 경험이긴 하나 또한 학생에게서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경험이다… 이 깨달음과 자유에 대한 포옹- 가능성과 불완전성 속에서 기꺼이 살고 배우려는 마음-은 그들이 자신의 고유한 지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고, 자신들의 가장 진심어린 가치와 인식을 전면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신뢰감을 학생에게서 만들어낸다… 대화는 엄밀함을 요구하고, 학생들에게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이상을 겉으로 나타내 보여주고 옹호하도록 도전을 준다.” – 컬준-홉슨, A. (2002). ‘고등교육에서 신뢰의 페다고지.’ Teaching in Higher Education, 7(3), 265-276, 영어 논문의 글쓴이 번역

“대화 관계가 성립되면 ‘학생들의 교사’와 ‘교사의 학생들’은 존재하지 않고, 교사-학생인 동시에 학생-교사라는 새로운 관계가 탄생한다. 교사는 더 이상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며, 그 자신도 학생들과의 대화 속에서 배우는 사람들이 된다. 학생들 역시 배우면서 가르친다. 따라서 그들은 양측이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 공동의 책임을 진다. 이 과정에서 ‘권위’에 기반한 주장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게 된다. 권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자유에 맞서지 않고 자유의 편에 서야만 한다. 여기서는 누구도 타인을 가르치지 않으며, 누구도 혼자 힘으로 배우지 않는다. 다만 민중이 세계와 인식 대상들의 중재를 통해 서로를 가르칠 따름이다. 은행 저금식 교육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일을 ‘독점’했던 것과는 큰 차이다 […] 이런 식으로 문제제기식 교육자는 항상 학생들을 배려하여 자신의 성찰을 재형성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더 이상 유순한 강의 청취자가 아니라 교사와의 대화 속에서 비판적인 공동 탐구자가 된다 […] 학생들은 점점 세계와 더불어 그리고 세계 속에서 자신들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대하게 되기 때문에, 점점 자극을 받으며 그 자극에 반응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학생들은 그 자극을 이론적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총체적 맥락 속에서 다른 문제들과 연관된 것으로 이해하므로, 점점 비판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고 따라서 점점 덜 소외된다. 자극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새로운 자극을 낳고 뒤이어 새로운 이해를 낳는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은 점차 자신도 몰두하고 헌신할 수 있다고 간주하게 된다.” – 파울루 프레이리의 한국어 번역판 ‘페다고지’(2002) 중 (pp.96-98).

[더인디고 The Indigo]

캐나다 위니펙 대학에서 유일무이하게 ‘정신의학 생존자 운동과 정신보건 시스템의 개혁’을 주제로 전공을 만들었고, 토론토 대학에서 Equity Studies로 교육학 석사를 마쳤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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