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노는 게 남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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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 장애인에게 즐길 거리도 책만큼 중요한 가치다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혼자 있다 보면 때때로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때가 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되던 때에는 닥치는 대로 돈이 되는 것을 연구해 보기도 했고 지적인 능력이 무엇보다 가치 있는 것이라 믿을 때는 한 달에 수십 권씩의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어떤 때엔 이틀에 한번 꼴로 철야기도회를 다니기도 했고 짬이 나는 모든 시간을 운동으로 채우기도 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하고 존경하는 이의 삶을 맹목적으로 따라해 보기도 하면서 느낀 것은 삶의 목적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러기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인간인 내가 더욱 진하게 깨달은 것은 진리를 탐구하고 궁극적 삶의 가치만을 쫓기엔 나의 에너지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을 이상적으로는 추구하지만 나의 육체는 돼지 같은 배부름을 느끼지 않고서는 책을 읽을 힘이 나지 않았다. 또 천국을 바라고 경건하게 무릎 꿇은 기도를 하지만 때때로 흥건하게 취하는 지극히 인간다운 술자리가 내 삶의 또 다른 위로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놀기 좋아하는 나만의 개인적 합리화인줄은 모르겠으나 인간이 지속적으로 건강하고 건전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한 편의 원초적 즐거움이 필수적으로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실명했을 때 순간적으로 가장 안타까움을 느낀 포인트도 뭔가 특별한 것이 아닌 컴퓨터게임과 축구시합을 하지 못하게 된 것임을 기억한다. 나라는 인간에게 있어 신나는 놀이는 전체 삶에 상당히 중요한 가치로 작용하는 듯하다.

난 다른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감히 확신한다.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무엇이 가장 불편하냐고 물으면 많은 이들은 접근성이나 이동권 혹은 사회의 환경이나 인식 같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물론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그것들은 아직 많이 부족하고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갈 수 있어야 하고 읽고 싶은 책을 충분히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의 기회도 취업의 문도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 못지않게 신나게 놀 수 있는 권리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놀이동산의 놀이기구조차 안전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장애인들을 제한하는 나라에서 주장하기엔 이 또한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 권리는 너무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들이 번지점프를 하고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난리인 통에 클럽에 가는 사람들도, 돈 한 푼 되지 않는 온라인 게임에 수백만 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것도 인간이 어리석기 때문만은 아니다. 행복추구권이라는 그럴듯한 법률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기분 좋은 상태를 추구한다. 성직자들이 추구하는 초인간적인 경지가 아닌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쾌락 말이다.

그런데 장애인을 위한 기술은 그런 쪽으로는 방향성을 잘 정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클럽에 갈 수 있는 접근성을 허락해 주세요.”
“시각장애인들도 편하게 따를 수 있는 술잔과 술병모양을 디자인 해 주세요.”
“스마트폰 게임이나 최신 온라인 게임의 시각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해 주세요.”

라는 요구들은 왠지 절실해 보이지 않거나 꼭 들어주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볼 수 있는 책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할 수 있는 게임이 별로 없다는 말은 그 정도로 와 닿지 않는다. 그렇지만 게임이나 즐길 거리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한다면 비장애인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모든 서적이 사라지는 세상을 상상할 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에게 점자책을 만들어 주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놀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임은 분명하다.

최근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드게임 계발 연구에 동참할 기회가 생겼다. 그림이나 카드로 구성되어 있는 게임을 시각장애인도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모든 것을 설명문이 가득한 별도의 책자로 만들고 진행 속도를 느리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면 간단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 그것은 게임이 가지는 장점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이전의 수많은 연구에서도 열심히 연구는 했지만 시각장애인들이 즐기지 않는 게임이 되어버린 경우를 종종 보았다.

게임보다 그 안의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쉽사리 떠드는 사람들이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세상에 게임이 존재할 이유는 없다. 난 보드게임을 계발하면서 그 내용이 전달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시각장애인에게도 그 즐거움이 변형되지 않고 그대로 느껴지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상상해 보지 않아서 어려운 것이지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즐거움을 느끼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장애인들에게 즐길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은 책을 만들어 주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사업이다.

오늘도 혼자 있는 시간에 사람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 보았다. 돈도 좋고 지식도 좋지만 매일매일 신나게 살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너무 좋은 것이라는 결론을 맺었다. 삶에 정답은 없지만 누구나 즐거운 시간을 꿈꾼다. 노는 방법을 잊은 이들에게 신나게 웃을 수 있는 게임을 선물하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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