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자의 색연필] 초여름,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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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김민석
김민석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김민석 집필위원]  매년 이맘때, 즉 봄이 무르익고 조금씩 더워지는 시기가 되면 기다려지는 소식이 있다. 바로 기업이나 기관들이 발간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또는 CSR 보고서, 사회책임보고서라고도 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관심이 없을 것 같다. 10년 정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만드는 부서의 책임자로서 일을 한 나의 가족들은 이제 조금 알게 되었다. 또 주위의 친구들은 3월부터 5월까지 이 보고서 때문에 바쁜 척하며 지내던 내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얼마 전 패스트패션 유명 브랜드인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이 한국어판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해당 기업은 한국에서 이슈가 되었던 기업인지라, 어떤 내용을 담아 이들의 지속가능성을 설명하는지 궁금해져서 유심히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갔다.

이해관계자에게 더 중요한기업의 주요 정보를 담은 보고서

이 보고서의 첫 부분에는 기업의 철학(way)과, 미션(mission)이 적혀 있었다. 즉, 가장 먼저 기업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패스트리테일링이 지향하는 ‘지속가능경영 스테이트먼트(statement)’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패스트리테일링의 경우, ‘옷의 힘으로, 우리 사회를 아름답게’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품질이 좋고, 오래 입을 수 있어 사람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고, 자연과의 공생을 생각하고,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는 옷을 만들고, 인권이 제대로 지켜지는 곳에서 만들어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세 가지 ‘사람, 환경, 지역사회’의 주요 영역에서 사회 이슈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이 있었다. 특히 ‘사람’ 측면에서는 의류산업 특성상 여성근로자가 많아서인지, 유엔여성기구(UN Women)과 파트너십을 맺고 여성 근로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이 외에도 국제이주기구(IOM), 국제노동기구(ILO)와도 파트너십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공개하고 있다.

한국 유니클로의 경우, 장애인 고용률(’19년 기준)이 4.2%로 국내 법정 의무고용률인 3.1%를 초과하고 있다고 한다. 단지 장애인 고용률만 준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년 4월에는 서울시 및 한국뇌성마비복지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뇌성마비 장애인을 대상으로 맞춤형 리폼 의류를 제공하는 장애인의류리폼지원 캠페인을 론칭하여, 장애인과 개별 상담을 한 후 개인 특성에 맞는 리폼의류를 제작하여 405명에게 총 2,370벌을 지원하였고, 올해에는 타 도시까지도 확대하여 총 800명에게 지원할 계획임을 밝혔다.

ⓒ https://www.fastretailing.com/eng/sustainability/report/pdf/sustainability2020_ko.pdf

지역사회 카테고리에는 특히 저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고객 및 지역사회와의 소통’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이 보고서에는 덴마크 코펜하겐 매장의 사례를 들며, “유니클로는 매장이 위치한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며, 비즈니스를 통해 지역의 과제 해결에 공헌하는 것이 사업의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라는 설명을 달았다. 이 외에 중국 소수민족 지원, 말레이시아 난민지원, 미국 홈리스 아동지원 등의 사례가 있었는데, 작년 7월에 있었던 한국 고객에 대한 중대사과문에 대한 언급은 찾지 못했다.

지난 7월 11일, 패스트리테일링이 도쿄에서 진행한 실적발표회에서 이 회사의 오카자키 다케시 CFO(재무책임자)의 “한국 불매운동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으로, 한국 고객의 불매운동이 확대되자 7월 18일에 ‘간접 사과’의 뜻을 밝혔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고 7월 22일에 공식 사과문(http://www.uniqlo.com/kr/corp/pressrelease/2019/07/2019_3.html)을 발표하였다.

패스트리테일링이 이번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담은 덴마크의 ‘지역사회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배운다’는 사례가, 작년에 한국에서 보여준 사례를 떠오르게 하며 조금은 불편하게 와 닿는 것이 저자만의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패스트리테일링이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에서 실시한 인권정책, 환경정책,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기본 원칙인 포괄성, 중요성, 대응성 측면에서 균형 있게 작성된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관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각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보고서 형태로 공시, 공개하는 것은 공공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에서도 국민연금, 한국전력공사, 한국철도공사 등도 각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공개하고 있다. 인천항만공사는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 성과를 이해관계자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해 이번 3월에 일곱 번째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인천항만공사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Standards의 핵심적 방법(Core Option)에 따라 작성하였고, 또한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 표준인 ISO 26000 기준을 포함하며,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때 GRI, ISO 26000, UN SDGs는 기업의 공시,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단골로 등장하는 용어이다. 이들에 대한 설명은 내용이 방대하여 따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어서 이번에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지만, 다른 기관이나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도 대부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적인 개념이다.

올해 보고서에는 특별히 ‘사회적 가치 창출 성과’와 ‘UN SDGs 달성을 위한 노력’을 스페셜 보고서 형태로 담았는데, 이는 최근 이슈가 되는 사회적 가치를 부각하여 설명하고, 글로벌 합의인 UN SDGs에 대응하는 모습을 통해 인천항만공사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처: 2019 인천항만공사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스페셜 보고서 중

인천항만공사는 이 보고서를 통해, 협력업체와의 공정경제 제도 개선 차원에서 사회적약자(여성, 장애인, 사회적기업) 대상으로 계약보증금을 지급각서로 대체하여 면제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직무교육을 통한 장애인 자립기반 구축지원을 위해 자립형 카페를 개설하고 바리스타 교육을 실시함을 밝혔다. 또한 여객터미널의 실내를 장애물이 없는 환경으로 조성하여 노약자 및 장애인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하였고, 2019년 기준으로 장애인 고용 비율이 3.4%, 사회적 책임구매를 위해 장애인 제품을 구입한 것이 53.7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그리고 전반적인 보고서의 내용이 앞서 언급한 GRI, ISO 26000, UN SDGs 관점에서 어떻게 연계가 되고 충족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매니페스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는 아슬아슬한 재미

매니페스토(manifesto)의 어원은 라틴어의 ‘증거’ 또는 ‘증거물’이라는 뜻의 마니페스투스(manifestus)에서 유래되었다. 매니페스토는 ‘과거 행적을 설명하고, 미래 행동의 동기를 밝히는 공적인 선언’이라는 의미로, 1834년 영국 보수당의 로버트 필이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약은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라면서 구체화된 공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널리 사용되었다. 즉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이 구체성을 띠는지, 실현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이나 기관이 공개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내용도 매니페스토가 필요하다. 최근 이러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해당 조직의 소개 브로셔의 역할만을 한다는 지적이 있고, 또다른 홍보물이라고 폄하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주위의 시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각 기업은 보고서를 통해 공개하고 선언하는 것을 실제로 달성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떤 기업이나 기관은 과거의 행적만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기도 하고, 어떤 곳은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의 목표를 세우기도 하고, 어떤 곳은 매년 진행상황을 공유하기도 한다. 지속가능경영 활동을 잘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유니레버의 경우, 더 나은 환경과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중장기 목표를 세우고 매년 달성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https://www.unilever.com/sustainable-living/reducing-environmental-impact/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보고서를 통해 해당기업이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있지만, 앞으로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해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먼저는 보고서의 역할 및 공개범위에 대한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고, 다음은 기업, 기관내에 중장기 목표가 없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는 잘 지켜질지 아닐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공약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 맞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어쩌면 간단하게 찾을 수 있다. 매년 1분기, 2분기에 쏟아지는 각종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가장 많이 참고하고, 해당 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자가 누구인지 살펴보면 의외로 쉬운 질문일 테니 말이다.

사회와의 약속이행 여부를 확인하고 다짐하는 보고서가 되어야

올해는 코로나19 등의 이유로 각 조직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도 조금씩 늦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별일이 없는 한 한달 내에 많은 곳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공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는 실제로 해당 조직의 많은 사람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다.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기업 담당자들이 신경 쓴 것과, 실제 지속가능보고서의 중요성에 비하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어쩌면 회사 내부의 관심도 마찬가지)은 시쳇말로 가성비가 안 나오는 작업이 될 수도 있다.

이제부터라도 각 기관, 기업이 공시하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어느 기업이 정말 좋은 기업인지, 지속가능경영을 잘하는 기업인지 대충 생각나는 대로, 남에게 들은 소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해 노력한 팩트를 근거로 판단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잘한 것은 잘했다 칭찬하고, 미흡한 것은 더 잘하도록 감시하고 격려하면 어떨까? 마침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주렁주렁 열매 맺는 계절이 되었으니, 올 여름은 관심있는 조직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해본다. [더인디고 The Indigo]

앙자 (김민석, 지속가능연구소 소장, 경영학 박사), 대학에서 환경을, 대학원에서 마케팅과 CSR, 지속가능경영을 공부하고, 삼성에버랜드, 삼성전자, LG전자에서 일했다. 현재는 연구소와 대학교에서 ‘나은 삶을 함께 만들기 위한 방법’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으며, 한국준법진흥원 원장으로 윤리경영, 준법, 컴플라이언스 등 ISO 인증 및 교육을 하고 있다. e-mail: lab.sustain@gmail.com / kazak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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