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세상풍경] 당사자 없는 당사자운동의 그 허황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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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삶의 위치에서 보이는 열 가지 풍경, 일곱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위원]

관중 없는 야구장, 아무도 없는 당사자들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위원

마운드에 우뚝 선 투수는 언제나 혼자다. 투수는 손아귀에 움켜쥔 공 하나에 자신의 모든 힘과 능력을 실어 포수의 미트를 향해 던진다. 그래서 투수가 던진 것은 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타자는 투수가 던진 공이 자신에게 날아올지도 모를 공포심을 억누르며 지름이 고작 2.75인치에 불과한 배트를 휘두를 단 한 순간을 노린다. 장쾌한 타구음과 쏜살같이 하늘을 향해 치솟는 공. 귀청을 찢을 듯 터져 나오는 구경꾼들의 환호와 탄식은 하얗게 날아가는 공을 쫓아간다. 그래서 타구는 타자 자신이다. 야구의 매력은 느긋함 속에 순식간에 이뤄지는 승부의 갈림길에 선 선수들의 긴장과, 갈림길 굽이굽이 숨죽인 채 곱송그리고 앉아 구경하던 관중들의 일체감을 통해 완성된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야구경기의 당사자들이다.

프로야구가 개막하던 1982년 어느 날, 희미한 TV 흑백화면 속에서 시구를 하는 전두환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 그 이듬해 MBC청룡 야구단과 롯데 자이언트 선수단의 재활원 방문 풍경을 제법 낱낱하게 기억하고 있다. MBC청룡의 투수 하기룡, 감독 겸 4번 타자 백인천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롯데 자이언트의 간판 4번 타자였던 김용희와 김용철 등이 쥐어주는 선물을 받고 시시덕거렸던 추억은 여전히 나의 야구사랑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MBC청룡의 선수들은 팀의 로고가 새겨진 30센티 플라스틱 자와 야구모자, 사인볼을 선물했고, 롯데 자이언트 선수들은 빨간색 장화 모양의 통에 과자나 사탕이 가득담긴 선물세트와 야구글러브, 알루미늄 배트 등을 선물했다. 분에 넘치는 선물을 한 아름씩 안고 까까머리 어린 것들은 희희낙락 선수들과 어울려 카메라 앞에서 한껏 폼을 잡았다. 세상에… 이렇게 황송한 일이 다 있을까. 손에 맞지도 않는 야구글러브를 끼고 야구공을 튀겨보기도 하고, 들기도 버거운 그 은빛 미즈노 알루미늄 배트를 슬쩍 휘둘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신기하고 귀한 선물들은 우리 몫이 아니었다.

행사가 끝나고 선수들이 타고 온 전세버스가 떠나자 재활원측은 우리 손에 들렸던 선물들을 모조리 거둬갔다. 사인볼과 롯데 자이언트 야구팀의 심벌이 새겨진 야구글러브, 알루미늄 배트 등 제법 값이 나갈 법한 야구장비는 빼앗기고 우리 손에는 30센티 플라스틱 자와 두 사람당 하나씩 나눠 먹으라며 선심 쓰듯 내민 장화 모양의 과자선물세트가 고작이었다. 이튿날 이 두 야구단의 재활원 방문 소식은 선물을 한 아름 안고 환하게 웃는 우리의 사진으로 세상에 전해졌다.

정의연 사태, 당사자의 앵벌이화

최근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접하면서 문득 그때의 기억과 얽혀 마음이 썩 편치 않다. 당사자들이 소위 당사자들을 위한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노골적으로 지켜본 탓이다. 단체를 운영하면서 위안부 할머니 당사자를 대변해 왔다던 윤미향 씨가 국회의원이 되건 상관할 일이 아니다. 또 국고보조금의 용처와 모금을 통해 얻은 기부금을 어찌 썼건 그건 법으로 규명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를 폭로한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토로가 폄훼되는 상황은 좀체 이해할 수 없고 어리둥절할 뿐이다.

정의기억연대는 1990년 발족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2016년 설립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2018년 7월 11일 통합하여 출범하였다. 1992년부터 시작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지금까지 진행해 오고 있으며 2011년 12월, 1,000번째 수요집회에 맞춰서 위안부 평화비, 소녀상을 전국 곳곳, 그리고 세계 각지에 설치해 오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해왔던 정의기억연대의 활동들이 모두 부인되거나 왜곡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주장은 사뭇 치열했다는 사실만은 기억해야 한다. 그중 가장 서늘하게 마음에 남는 내용이 바로 모금활동 시 동원되었다는 이야기다. 국민의 반일 감정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불행함을 미끼로 돈을 모금하면서도 이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결국 정의기억연대의 명분과 의도와 상관없이 당사자를 위한 선의가 도리어 당사자의 앵벌이화로 전락한 것이다.

정의를 기억하는 방법은 당사자성에서 비롯되어야

재활원 시절 우리는 우리를 팔았다. 아니, 우리는 팔렸다. 야구단에서 준비한 자선행사에 영문도 모른 채 불려나갔고, 주최 측에 의해 회수될 선물꾸러미를 안고 환하게 웃는 역할을 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위안부 할머니들은 각종 모금행사에 불려나가 일본의 만행을 성토하며 분노했고 사람들은 그 분노에 공감하며 기꺼이 모금행사에 참여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재활원 시절 우리는 분명 주인공이었으나 맡은 역할은 앵벌이에 불과했다. 정작 주인공은 재활원이었고 정의기억연대였다. 재활원은 제법 두둑한 후원금을 챙겼고, 직원들은 유명세가 한창인 야구선수들의 사인볼과 야구글러브, 야구배트 등 당시만 해도 꽤 귀했던 야구 장비들을 자신의 자식들에게 선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의기억연대 또한 모금함을 챙겼고 운영자는 국회의원 자리마저 챙겼다. 이 황당한 상황을 토로하는 당사자의 발언은 폄훼되고 곡해되고 있으며 정치적 지형에 따라 휘둘리고 악용되고 있다.

당사자를 이용한 당사자운동이 위험한 이유는 당사자의 정당한 항의마저 자신들의 명분에 상충되는 순간 도리어 당사자를 공격하는 잔인한 무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재활원을 방문한 프로야구단이 남기고 간 야구배트가 도리어 우리를 다스리는 매로 쓰였던 것처럼 말이다. 당사자운동에서 정의를 기억하는 방법은 당사자를 위한다는 프레임이나 헛된 구호가 아닌, 당사자의 정체성이고, 그들의 목소리여야 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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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lessy17@naver.com'
나은화
4 months ago

공감합니다.
당사자를 위한다는 움직임에 그들을 이용해먹겠다는 고의성이 없었어도 과정과 결과에서 당사자가 소외되고 마는 일은 너무나 흔합니다. 당사자도 돕는 자도 정신 바짝 차리고 본분(혹은 자기 영역)을 지켜야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