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날/기고] 난민을 수용할 자격

에리트레아 난민
에리트레아 난민 /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이지연 수원이주민센터 활동가]

이지연(돌멩이) 활동가
이지연(돌멩이) 활동가

오늘 6월 20일은 20년 전인 2000년에 UN에서 정한 난민의 날입니다.
난민은 꽤 오랫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1947년 국제난민기구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했지요. 2019년 말 기준 유엔난민기구에서는 7950만 명이 강제적인 실향민으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딱 10년 전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수치입니다. 난민들은 그 나라 안에서 거주하는 경우도 있고 생존을 위해 다른 나라로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많은 난민이 배출되기도 했고, 또한 다양한 난민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2018년 전쟁을 피해 예멘으로부터 제주도에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 전쟁을 피해 가족을 잃고 혹은 집을 잃고 이 땅을 밟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보다는 추방, 국경 폐쇄 등의 반대의 목소리는 물론 2013년도에 제정된 ‘난민법 폐지’ 운동도 일어났습니다. 이로써 드디어 난민이라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함께 존재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난민법에서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신분, 정치적 견해로 인해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전쟁에 의한 박해는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리아나 예멘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난민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2019년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0.4%입니다. 난민은 하나의 이름으로 불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삶과 다양한 이유로 난민이 됩니다.

난민 A씨는 많은 나라들 중 촛불시위로 민주주의가 서 있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난민법을 만든 한국 정부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부패한 국가를 비판하는 뉴스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패한 자신의 나라를 떠나 민주주의면서 법치주의를 가진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결정하기까지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착한 한국은 난민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난민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시아 최초의 난민법이라고 자랑하면서, 법을 지키지 않는 대한민국 정부였습니다.

난민 B씨는 다른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그와 그의 가족이 살인 협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는 20대 초반 주변 지인들이 구해준 비행기 표만을 들고 한국에 왔습니다. 지인들이 그가 생존을 위해 돈을 모으고, 가장 빨리 얻을 수 있는 비자를 신청하여 한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들 중 어느 나라를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지금 그 순간 각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따라 한국에 왔습니다.

난민 C씨는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나라의 경찰의 감시를 받고 가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참지 못해 한국에 왔습니다. 그들은 한국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난민임을 밝히고 난민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출입국항에서 난민을 신청하게 되면 입국 전 입국심사 단계에서 난민심사를 하게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여부를 결정합니다. 일반적으로는 난민 신청을 하고 6개월의 난민심사를 통해 결정됩니다. 반면 C씨는 입국심사 단계에서부터 난민 신청 자격이 있는지 여부에 부딪혔고, 한 사람의 과거의 인생에 대한 판단과 미래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는 아주 짧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 그와 그의 가족의 인생은 입국 거부로 판단되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가해지는 폭력을 당하라는 판단이었지요. 그래서 그 가족은 폭력보다는 불편한 공항에서의 노숙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아니, 유일한 길이었지요.

난민이 한국에 들어오면, 너무 쉽게 판단합니다. 불편하면 돌아가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 가라는 말도 너무 쉽게 나옵니다. 그런 말들은 다시 그 나라로 돌아가서 죽기를 결정하라는 말입니다.

난민을 수용할지 반대할지 고민이 되겠지만, 당신에게는 혹은 우리에게는 그것을 결정한 권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우연히 안전한 공간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거나 안전한 시기에 태어나 주어진 국적이라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존재하기 위해 한 것이라곤 오직 출생일 뿐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다릅니다. 똑같이 어느 지역, 혹은 어느 시기에 태어나서 삶을 꾸려나갑니다. 그 삶이 타인에 의해 파괴되고, 자본을 위해 각국에서 수출한 무기에 의해 파괴되면, 자신의 생존 혹은 가족의 생존을 위하여 이주합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이며 이를 위해 많은 돈, 시간, 노력, 가족들과의 결별을 경험하며 옵니다. 우리는 그들의 과거의 인생에 대해 판단하고 생존의 가능 여부를 평가하고 이들에게 생존할 권리를 뺏을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혹은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은 난민들의 삶이 우리와 닿아있음을 인식하고 그들이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함께 힘쓰는 일입니다. 전 세계의 평화를 방해하는 무기가 한국에서도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국의 무기 개발과 무기 수출에 반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패한 정부로부터 박해받는 난민들을 위해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를 꿈꾸며 함께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난민들이 더 안전한 공간에서 삶을 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일 것입니다. [더인디고 The Indigo]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본지에 글을 보내준 돌멩이(이지연) 활동가는 수원이주민센터에서 15년째 활동하고 있고 현재는 세계시민성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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