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 칼럼] 시대를 역행하는 장애인 혐오 표현, 왜?

  • 차별 표현의 근본적 원인과 근절 대책은 없는가!

[더인디고 조성민 대표] 혐오와 비하, 조롱, 모욕 등의 공통점은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적 표현이다. 의미의 차이는 있지만 이를 포괄하는 것으로 ‘차별 표현’을 쓴다. 차별 표현의 대상은 주로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과 난민 등 사회적 소수 집단이다. 그중에서도 정신적, 지적, 감각적, 신체적 손상을 가진 장애인이다.

차별 표현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인간의 사고 원인은 무엇일까?

경제적 능력과 건강한 신체, 아름다운 외모를 중시해 온 사회다. 관리의 등용 원칙이기도 했던 ‘신언서판’이 과거의 유물만은 아닐 것이다. ‘장애’는 여전히 개인적이고, 가난하며, 불편한 언어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라고는 하지만 ‘장애인’을 떠 올리는 누군가에게는 두렵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자화상’이다.

역사와 사회문화적으로 뿌리내린 차별과 편견은 법치와 인권의 시대를 맞아 제거될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바꾼 지 30년이다. 아동권리협약이 제정된 지도 30년이다. 여성차별철폐협약은 40년이나 흘렀다. 차별과 학대는 물론이고 차별 표현도 그대로다. 언제라도 잠복했다가 틈만 나면 쏟아진다. 그것도 정치인의 입에서 말이다.

정치인의 역할은 ​공감이다. 불평등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정치인의 몫이다. 그 역할을 잘 수행해도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것이 정치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장애인 비하 표현은 그 자체도 차별인데다, 주권자 시민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들의 언어는 미디어 등 유통 구조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더욱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변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정체성인 ‘장애’를 부정당할 때, 이는 사회적 차별로 연결되며 심리적 물리적 피해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주권자 시민의 선택에 따라 정치인의 역할과 책임이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장애인 등 소수집단을 상대방 공격에 동원하는 것은 비겁하며 무책임한 행동이다.

‘차별 표현’ 자체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구조를 허물 방안은 없을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과 소송, 그리고 인식개선 활동 등도 다양하게 전개해 오고 있다. 법 제정과 인권 감수성 교육이 대단히 중요한 수단이지만 근본적 대책이라고 자신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수 집단에 대한 ‘시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전담기관 등을 통한 국가의 개입은 여전히 강력한 힘이다.

차별 표현의 대상은 특정 개인보다는 집단적 혐오 표현이 흔하다. 그러나 장애인차별금지법과 현행 형법 체계에서는 제재 자체가 쉽지 않다. 집단적 혐오와 모욕에 대해 처벌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 개정 등 법 테두리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독일에 이어 지난해 7월 프랑스 하원의회의 ‘온라인 혐오 표현 근절법’ 채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원 의회 통과가 관건이지만, 일명 ‘아비아(Avia)법’이라고 불리는 본 법의 골자는 ‘검색 엔진이나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혐오 표현이 담긴 콘텐츠를 24시간 안에 삭제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최대 16억 원의 과태료를 징수’한다. 여기서 혐오 표현은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 집단뿐 아니라 종교 등의 이유로 혐오, 차별, 폭력행위를 유발하는 메시지 등을 포함한다.

참고로 ‘아비아법’은 오랜 기간 인종차별과 혐오 표현으로 고통을 겪은 당사자이자 프랑스 변호사 겸 하원 의원인 ‘레티시아 아비아(Laetitia Avia)’의 이름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법 개정이나 새로운 법 제정까지는 공론화 과정 등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 이전이라도 미디어와 검색 엔진 및 출판 등 다양한 유통 채널을 대상으로 한 ‘차별 표현 금지 캠페인’도 생각해볼 일이다.

언론 및 표현의 자유와는 상충되겠지만 유통 채널, 특히 미디어와 검색 엔진은 파급속도와 영향력에서 중요하다. 우리나라 대표적 검색 엔진인 ‘네이버’의 경우, 국립국어원 표준 대사전을 인용한 것일까. 장애인의 정의도 경쟁사와 다르거니와 심지어 네이버는 장애인의 비슷한 말을 장애자, 불구자로 표기해놨다. 또한 집집마다 꽂혀 있는 국어사전을 들춰보면 불구자는 있어도 장애인의 정의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뿐인가. 법제처가 수차례 정비했지만 헌법, 형법, 민법 등에는 장애인 차별 표현이 그대로 있다. 국민투표법 제59조(기표절차)에는 ‘맹인 기타 신체의 불구’라는 조문까지 있다. 법은 장애인을 ‘불완전한 인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시대와 현실을 반영하는 문학적 표현까지는 어찌 못하더라도 미디어뿐 아니라 국어사전과 법전, 그리고 성경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언어가 바뀌면 유통 채널도 사람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언어는 습관의 반영이라고 했다. 우리의 언어 습관은?

정치인들의 혐오 표현은 그들의 사회적 책임과 영향력 때문에 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에 불과하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 표현이 아니더라도 지나친 동정과 친근감에서 툭 던지는 ‘선택 장애’와 ‘성격장애’라는 표현이나 혹은 애쓰지 않고 거저 얻을 수 있는 돈이 있을 때 ‘눈먼 돈’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소수 집단에 대한 비하 혹은 특정 계층을 우대하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어리석고 어리석은 뜻의 한자어 ‘치매 癡呆’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노인한테 쉽게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아닐 것이다.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을 정신대나 위안부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가? 연예인이나 재벌 등이 일반인과 사귄다는 표현은 적절한 것일까? 아니면 오늘날 ‘부부’의 개념을 ‘결혼한 한 쌍의 남녀’로 정의해도 되는 것일까? 사회적으로 통용된다고 생각하는 비하나 모욕적인 표현 등을 우리도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문제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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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star10@hanmail.net'
스타
11 months ago

칼럼 읽고 공부 많이 합니다. 일상에서 표현에 신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

Admin
이창길
11 months ago
Reply to  스타

응원과 의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