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희의 창문너머] 자식과 함께 죽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으랴!

[더인디고 이문희 논설위원] 매번 명절을 지낼 때면 두 가지 맘이 늘 교차된다. 우선 기쁜 마음이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을 회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모두 이북 출신이라서 친척이 별로 없어 명절이라도 북적이는 모습은 없지만 몇 안 되는 가족끼리 살아생전의 부모님을 기억하면서 얘기를 나누는 일은 늘 기쁘고 특별난 일이다.

이문희 논설위원

그 반대로 아픔도 있다. 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 작고하신 아버지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에 대해서 그리 많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에 대해서 기억이 별로 없고 더욱이 점점 그 기억마저 사라진다는 것은 아프고 슬픈 일이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하여 확실하게 기억하는 것이 있다. 625때 함경도 단천이란 곳에서 남하하신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그 어떤 말 한마디도 남기지 못하시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때 흘리신 그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뜬금없이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문희야 넌 엄마랑 같이 죽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리곤 나를 안으시고 한참을 우셨다.

자식과 같이 죽고 싶은 그런 어머니가 어디 있으랴?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홀로 장애를 가진 자식들을 키우면서 당한 그 고통과 아픔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아마 내가 안보인 곳에서도 한참을 우시고 밤잠을 또 설쳤을 것이다. ‘같이 죽는 방법‘은 언젠가 떠나야 하는 어머니로서 모든 사람들의 비난과 고통과 아픔도 불구하고 자식을 향한 가장 큰 사랑의 고백이었을 것이다. 40년 전에는 말이다.

수십 년이 지난 우리 사회에서의 모습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장애인 가족동반자살을 보면 펑 뚫린 복지사각지대 속에서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자식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해결책인 ‘같이 죽는 방법“이 묵인되고 방치되고 있다. 이것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18대 국회에서 입법된 장애아동지원법 제정과정에서도 이런 문제들이 논의되었지만 장애인가족지원 관련 내용은 법안의 내용에서 삭제되었다.

특히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52조의2항에는 장애인특별부양 신탁제도를 신설하여 스스로 재산을 관리할 수 없는 장애인을 위해 부모 등 후견인이 증여한 재산을 금융회사(신탁사)가 관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부모가 사망하더라도 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하였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데다 실제 계약건수도 거의 없는 편이다. 최대 5억 원 신탁기금의 제한으로 인한 이자 수입은 실질적인 생활비가 못된다.

6천만 원을 상속받았을 경우에는 기초수급자에서 제외될 뿐 아니라 의료수급계층에서도 탈락 된다. 큰 규모의 자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중도인출을 할 경우 그동안 면제되었던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문제까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언제나 해결될까? 해결하려고 맘만 먹었으면 진작 해결될 문제들이다. 21대 국회에 또 희망을 걸어야하나?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결코 장애인가족 동반자살은 발생하지 않는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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