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세상풍경] 무지가 권력이 되면 펼쳐지는 아찔한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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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 내 삶의 위치에서 보이는 열 가지 풍경, 아홉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위원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위원] 어린 시절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쫓아와 동전 몇 닢을 한사코 쥐어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아마 목발을 짚고 겨우 걷는 내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참 안쓰럽고 불쌍해 보였던 듯하다. 처음에는 그들의 무례한 호의를 한사코 거절하기도 하고, 동전을 길바닥에 내던지며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물어린 동정과 호의는 계속되었고 오히려 내가 지쳐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무지와 무례를 그러려니 씁쓸하게 웃어넘길 만큼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장애 혹은 장애인은 추레하고 불쌍하며 도와주어야 마땅한 존재라는 편견은 견고하다. 사람은 사물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스스로 아는 만큼만 보고, 들을 수밖에 없으며 또 그 만큼만 느낀다.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왜곡된 정보는 고정관념을 만들고 다시 편견을 키우며, 장애나 성별, 성적 지향 등 차별받는 계층에 대한 혐오로 웃자란다. 소위 ‘정상인’들의 무지(無智)가 고정관념과 편견을 동력 삼아 차별이란 엔진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매번 당하는 약자들 입장에서는 일일이 대응할 수도, 교정을 요구할 수도 없는 고되고 찜찜한 경험의 반복인 것이다.

무지를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지가 약자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공격에 세상은 비판 대신 슬쩍 자리를 피해 외면하거나 침묵으로 동조한다. 약자들에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하고 무서운 권력은 무지로부터 싹튼 폭력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볼 수 있는 거울은 무엇을 비추나

그런데 무지로부터의 권력자는 비슷한 처지의 약자인 경우가 더 많으며 이럴 경우 더욱 공고화되고 혐오와 폭력으로 쉽게 이어진다. ‘무식하다’라는 말은 지식의 많고 적은 잣대의 결과라기보다 무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구분되는데, 그 방식이 약자를 향할 때 무지는 권력을 지키는 완장이 되고 폭력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스스로를 드러내고 약자를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대구의 한 아파트에는 황당하면서도 무례하기 짝이 없는 벽보가 붙었다.

<[구청장 및 건설국장 면담 내용], 우리 요구 조건 전달. 1. XX 재건축 YY도 흡수 재건축 할 것 허가 취소 할 것. 2. 장애인 세대 전부 철수할 것 집값 떨어지고 한다고 이번 참석 못한 세대주는 다음에는 참석 부탁드립니다.> – 뉴스민 “집값 떨어지니 장애인 나가라” 벽보 붙은 대구 한 아파트(2020.06.22..)
http://www.newsmin.co.kr/news/50143/

이 황당하고 잔인하기까지 한 벽보는 이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붙였다고 한다. 그의 주장대로 실제로 ‘장애인이 살기 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장애인이 살기 때문에 집값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가능한 이유는 아파트 대표라는 권력이 ‘집값 하락’이라는 아파트 주민들 공통의 이익과 겹쳐지면서 꽤 그럴듯한 정보로 읽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살기 때문에 집값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집값 하락의 이유를 찾던 사람들에게는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꽤 그럴듯한 정보가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왜 어떤 무지는 부끄러움인데 어떤 무지는 권력이 되는가.

모르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고, 스스로를 볼 수 있는 거울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지를 통해 겪었던 실패의 경험이 쌓여야 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져야 하고, 공감은 모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니까 “어떤 지식은 모르는 게 약”이고 “어떤 지식은 아는 것이 힘”일 수 있지만, 무지는 배우고 공감하지 않아도 비판받지 않으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식’의 묵인이나 방조로 인정받았던 경험들을 핑계 삼아 권력으로 진화하고 권력은 이익이 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위한 상상력

장애인이 겪는 세상과 비장애인이 경험하는 세상은 각기 다른 이유로, 서로에게 무지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무지로 인해 누가 고통을 받을까?

‘무지’가 담긴 그릇을 ‘권력’이라는 불로 데우면 ‘혐오’가 추출된다. 혐오의 시작이 애초에 무지에서 기원한다는 이 단순한 도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작동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는 무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 무지를 자신이 속한 계급적 층위의 증거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 선한 얼굴을 한 사람들의 내면에 숨죽여 똬리를 틀고 있는 그것.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드는 그것. 못 본 척하고, 물러서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그것.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이 세 가지 그것은 무지로부터의 권력을 가능케 하는 방관자들의 그것이다.

우리가 무지로부터의 권력에서 해방되기를 선언하는 순간, 그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를 위한 상상력으로 발현될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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