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마음을 사로잡는 버튼,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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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결핍
ⓒPixabay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오신 어머니는 잃어버린 마늘 때문에 속상해 하고 계셨다. 그날따라 파격세일을 하는 그 곳에서 어머니는 윗집 아랫집 친구분들 물건까지 챙기시다가 상자 한 개를 잃어버리신 것이었다.

그리 비싼 물건도 다시 못 구할 보물도 아니긴 했지만 어머니는 너무도 속상해 보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 물건을 잃어버려 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어린 시절 연필 하나 잃어버리고 며칠 동안 속상했던 것은 그것의 값어치와는 상관없는 상실에 대한 본능적 발산이었던 것이다.

100원짜리 동전도 먹다 남긴 간식마저도 의도치 않은 상실은 절대로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그 대상이 방금 사서 만져보지도 못한 새것이라면 그 부정적 마음의 크기는 더욱 배가 된다.

난 어머니의 통장으로 마늘 값 정도의 금액을 송금했다. 큰 액수는 아니었기에 그것으로 어머니의 마음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심각한 고민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그만큼 잃어버리셨으니 내가 채워드리면 되지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입금을 확인하신 어머니는 나의 가벼운 생각과는 달리 너무나도 크게 기뻐하고 계셨다. 몇만 원 안 되는 돈에 대한 고마움이라기보다는 어머니 마음을 위로하려는 아들의 생각에 감동 비슷한 걸 느끼시는 듯 했다.

몇 번이고 말씀으로 그리고 또 메시지로까지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는 어머니 덕분에 내 행동이 오히려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난 너무도 적은 값으로 그날 어머니의 마음을 얻었다.

생각해 보면 어릴 적 어머니가 내게 해 주셨던 일들도 적지 않게 그런 일들이었던 것 같다. 작은 학용품들이나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들에게 어머니가 새로 사주신 물건들은 그 값으로는 별 것 아닌 것들이었을지 모르지만 세상을 잃어버린 것 같은 불안함을 느끼던 내게는 새 삶을 얻은 것만큼의 감동과 감사로 느껴지는 것들이기도 했다.

크레파스 같은 준비물을 깜빡했을 때 짝꿍이 빌려주던 몽당 크레파스에 담긴 마음이나, 땀 뻘뻘 흘리며 운동할 때 누군가 건네준 시원한 음료수 한 모금도 그 자체로 큰 것은 아니었지만 결핍을 채워주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진심으로 감동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음에 분명했다.

어떤 이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지나다 어르신의 짐을 대신 들어드리는 것이나 여러 사람이 모인 장터에서 멀리 보고 싶어 하는 꼬마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려주는 것도 그렇다.

난 시각장애라는 두드러지는 결핍을 드러내고 살아간다. 그러기에 그것을 채워주는 이들의 사소한 행동들이 결핍이 채워지는 이에게 어느 정도의 감사함으로 옮겨질 수 있는지 늘 체험하면서 살아간다.
몇 글자 읽어주는 것이나 처음 가는 낯선 길에서 몇 걸음 함께 걸어주는 것, 내 앞에 펼쳐진 장면에 대해 한 마디 설명을 덧붙여 주는 것도 나의 마음을 빼앗아 가기에 충분할 정도의 가치를 가진다.

젊은 남녀들이 서로의 다름에 끌리는 것도 서로가 어렵지 않게 채워줄 수 있는 부분들과 관련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채워주는 이에게 마음을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결핍은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버튼이다.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이번 주엔 학교 조리사 어머니들께 아이스크림 한 개라도 건네 드려야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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