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 1년, ‘진짜 폐지’ 위해 다시 전동(前動)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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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전장연, “장애등급제 폐지 1년은 예산중심으로 조작된 가짜 폐지”로 규정
  • 전국 장애인활동가 등 1000여 명, 진짜 등급제 폐지 촉구하며 전동 행진에 나서

[더인디고 조성민]
31년간 장애인의 몸을 낙인화해 온 ‘장애인등급제’가 폐지된 지 1년이 지났다.
정확히 지난 해 7월 1일, “진짜 등급제 폐지는 수요자 맞춤형 복지 제공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질적 예산 확충이다.”며 서울지방조달청(이하 조달청)에서 잠수교를 지나 서울역까지 총 7km의 전동 휠체어 행진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오늘, 단계적 폐지에도 불구하고 당시 장애계는 이를 계기로 장애인의 완전한 지역사회 통합과 참여를 기대했지만, 나아진 것이 없다며 다시 거리로 나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1일 조달청 앞에서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1년 규탄 집회’를 열고, ‘진짜 폐지 투쟁’을 위해 전동(前動) 행진에 나섰다. 전장연에 따르면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1년은 예산 중심으로 조작된 장애인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에 의한 가짜 폐지였다.

사진=더인디고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지난 해 7월 1일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에 따라 종전 1~6급의 장애등급을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했다.

기존 시행되던 ‘인정조사’도 ‘장애인 서비스지원 종합조사(이하 종합조사)’를 도입, 새로운 서비스 평가기준을 마련했다. 이어 장애인의 욕구 환경을 고려한 서비스 지원을 위해 활동지원, 보조기기 등 일상생활 지원 서비스부터 적용하기 시작했다. 기존 1~3급 장애인으로 제한했던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대상을 모든 장애인으로 확대하고, 1~15구간으로 나눠 서비스 신청인의 일상생활 수행능력, 인지·행동특성, 사회활동, 가구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하루 최대 16시간까지 지원하도록 했다.

또 종합조사의 문제점과 제도를 개선하고자 지난 해 10월, 복지부와 장애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종합조사 고시개정전문위원회’(이하 ‘고시개정위원회’)를 구성, 모두 6차례 논의를 이어 왔다.

장애등급제 폐지 1, 예산확충 없이 종합조사표 놓고 논쟁만 하다 끝나!

문제는 종합조사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급여량을 판정한 결과, 5명 중 1명이 활동지원 시간이 삭감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장연에 따르면 종합조사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급여량을 판정한 결과, 인정점수에서 종합조사 갱신자 중 6.6%가 1구간(월 30시간)에서 5구간(월 150시간)까지 하락하거나 구간 외로 탈락했고, 1구간 내(월 30시간) 하락자까지 합치면 19.52%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복지부는 3년에 한하여 하락한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산정특례로 구제했지만, 1회로 한정한데다 3년 후 문제 발생은 개인별 ‘이의신청’으로 해결하겠다는 것 이외 근본적인 대책은 밝히지 않고 있다.

결의대회를 여는 발언자로 나선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9개월 동안 고시개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장애인 맞춤형 서비스를 요구했지만 정부와 싸움만 하다 끝났다.”면서 “제대로 된 정보는 제공해 주지 않으면서, 이미 짜놓은 예산에 맞추라는 강요만 했다”고 현 정부를 규탄했다. 그러면서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해서는 자립생활 보장, 생계 보장, 주거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며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이동지원서비스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정부의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는 3단계(‘19. 돌봄서비스, ’20. 장애인이동지원서비스, ‘22. 소득・노동서비스)에 따라 10월부터는 특별교통수단, 주차표시 등 2가지 이동서비스 기준이 도입된다. 제6차 종합조사 고시개정위원회 자료에 의하면 종합조사 적용대상은 「‘보행상 장애 판정기준’에는 미달하나 장애인 주차표지, 특별교통수단 이용 등 이동지원 서비스가 필요한 자」로, 서비스 물량 한계를 고려해 현행 보행상 장애인 수의 5% 내외 범위에서 추가확대를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전장연은 “▲특별교통수단과 장애인주차표지 이용 시 휠체어이용자와 비휠체어이용자에 대한 욕구 반영 대책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을 통한 서비스 명시 ▲기획재정부의 예산반영 보장이 없이는 불필요한 예산 낭비와 유형별 갈등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약속은 어디로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는 문재인 대통령 후보시절의 약속이며 박능후 복지부 장관도 이를 뒷받침하겠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이 또한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 의해 가로막히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 됐다.

전장연은 “부양의무제기준은 주거급여에서는 폐지했지만,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는 단계적 폐지 계획만 밝히고 있다.”며 정부와 집권 여당의 책임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난 해 9월 복지부는 ‘제2차 기초생활 종합계획’에 ‘생계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등’을 담겠다고 언급하며, 의료급여에서는 부양의무자기준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3일에 열리는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첫 회의 결정에 따라 기본중위소득과 부양의무자기준폐지 등이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1~’23)에 어떻게 담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장애인 탈시설,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에서 출발해야

이날 규탄대회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탈시설의 중요성이 더욱 분명해졌다는 주장도 거셌다.

전장연은 “코로나19 재난의 시대에 가장 먼저 죽어간 곳이 바로 정신장애인 집단수용시설인 청도 대남병원이었다.”며 “이후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코호트격리’라는 실효성도 없는 격리와 감금 정책 강화를 통해 중증장애인을 철저하게 차별하였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장애인거주시설 정책을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지역사회에서 통합하여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실효성있는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의당 장혜영 의원도 연대발언에서 “청도대남병원 장애인 103명 모두 빠짐없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장애’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재난상황에서 장애인이 얼마나 차별 받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확인한 결과다.”며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었으면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도 지역사회 생활을 통해 코로나19로 돌아가시지 않아도 될 분들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5~6개월 지난 이제 처음으로 감염병 대응 매뉴얼이 만들어졌지만 장애 때문에 장애인이 죽었다는 것이 어떻게 매뉴얼이냐“고 비판했다.

사진=더인디고

이어 “약 3만 명의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방치돼 살아가고 있고, 재난 위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돌봄은 오롯이 당사자와 가족에게 남겨진 상태인데, 정부는 발달장애인 방과후 돌봄 예산을 깎았다.”며 “정부의 장애인식도 바꾸고, 장애인등급제 완전 폐지 등을 위해 나서겠다.”고 밝혔다.

진짜 등급제 폐지 위해, 다시 잠수교 향해 전동 행진

이날 참가자들은 1년 전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했지만 ‘31년만의 장애인정책의 변화’라는 정부의 입장이 무색할 정도로 장애인과 가족들의 삶에서 변화를 느끼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입장이었다.

사진=더인디고

서미화 전남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1년이 지난 후 등급제는 허울 좋은 형식에 불과하다보니 당사자들은 전혀 변화를 느낄 수 없다”면서 “여전히 정부는 최중증장애인마저 24시간 활동지원을 보장하지도 않고, 심지어 종합조사표 등급을 사정없이 쪼개놓다 보니 16시간에 해당하는 1구간에는 단 한명도 없다. 여전히 정부는 장애인을 시혜적이고 동정적으로 보면서, 더욱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규탄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도 마무리 발언을 통해 “1년간 종합조사 고시개정위원회를 통해 중증장애인 중심의 욕구반영과 예산을 요구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다. 죄송하다.”면서 그러나 “이 곳 서울지방조달청은 기획재정부가 국회 예산안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는 장소다. 다시 장애인의 욕구와 필요에 맞는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이다.”고 투쟁의 의지를 밝혔다.

한편 이날 결의대회를 마친 전장련 회원 및 전국의 장애인활동가 1000여 명은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장애인거주시설 폐쇄법 제정을 위한 투쟁의 행진을 잠수교까지 이어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당초 1박 2일 동안 마포대교와 국회까지 행진을 계획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잠수교에서 ‘3대 적폐 폐지 기원 및 차별금지법 발의 환영 문화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행사 진행 후 밤늦게 해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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