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가는 길과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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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고등학교 때 기숙사를 나와서 친구들 몇몇과 같이 살았던 적이 있다. 늦은 시간까지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보자는 것이 독립의 그럴듯한 목표였다. 10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모여 있던 기숙사를 나오니 학습 환경은 생각 이상으로 좋아졌다.

그렇지만 늘 문제는 예상 못한 곳에서 터지는 법! 학교에서 집까지 혼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문제였다. 지팡이 짚고 다니는 것이야 학교와 복지관에서 숱하게 배우고 연습했던 것이긴 하지만 훈련과 실제의 차이는 작은 것이 아니었다. 내 걸음으로 십분 남짓 걸리는 등하굣길은 처음 눈 감고 걷는 도전자에겐 그리 만만한 코스가 아니었다.

오래된 주택가의 골목은 반듯하지도 않았지만 이 골목도 저 골목도 다 거기서 거기처럼 보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는 아직 완벽한 독립을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같이 살던 친구들의 도움으로 한두 달 정도는 큰 어려움 없이 학교를 오갔다. 그리고 매 번 등굣길마다 지형지물을 익히고 지팡이로 혼자 가는 연습도 했다.

방학이 되고 친구들과 나의 보충수업 시간이 달라지는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잔뜩 긴장했지만 반복된 훈련은 효과가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다닐 때보다는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지만 학교를 지각하지 않고 찾아오는 데에는 무사히 성공했다.

밤늦도록 이어지는 수업을 마치고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하굣길에 올랐다. 오른쪽으로 꺾었던 갈림길에서는 왼쪽으로 꺾고, 나왔던 골목에서는 들어가고, 들어왔던 골목에서는 나오고 하는 식으로 머릿속 지도를 등굣길에서 하굣길로 열심히 변환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신중히 옮겨가면서 등굣길에 이은 두 번째 홀로걷기를 진행했다. 처음도 아닌 두 번째였으므로 발걸음의 속도도 조금은 빨라지고 있었다. 그런데 몇 분 가지도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 분명히 이쯤에 내가 가야 할 골목이 있어야 하는데 막다른 길이었다. 혹시 장애물이 생겼나 주변을 두드려 보아도 골목 같은 것은 없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서 학교에서부터 하굣길을 다시 시작했다.

아까 찾지 못했던 골목은 다행히 찾았는데 이번엔 갈림길이 나오지를 않았다. 할 수 없이 또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재도전을 했다. 출발하고 돌아가기를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를 쯤이 되었을 쯤엔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결국 학교로 돌아가는 길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동네를 지나던 어르신들 그리고 함께 살던 친구들에게까지 도움을 청하고 나서야 길고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과 오는 길은 그냥 거꾸로 생각하면 되는 정도의 다름이 아니었다. 골목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고 다시 그 골목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똑바르지 않은 갈림길에서 왼쪽과 오른쪽이라는 단순한 방향 전환만으로는 원래 왔던 길을 찾을 수도 없었다. 바늘귀에서 실을 빼는 것과 넣는 것은 완벽히 다른 것이듯 가는 길을 배웠다고 오는 길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오만한 착각이었다.

산을 처음 오르는 사람들은 올라갈 때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다.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과 다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가는 길에만 집중하느라 돌아오는 길을 놓쳤던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성적을 올리는 것은 알았지만 성적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고 만남을 위해 나아가는 법은 알았지만 예쁘게 헤어지고 돌아오는 법은 몰랐다.

삶은 늘 오르고 내리고 또 가고 오는 것을 반복하는 과정이다. 책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이 다르고 일어서는 것과 넘어지는 것이 다르듯 우리는 가는 길과 오는 길 모두를 알아야 한다. 인생은 순환선 열차가 아니다. 열심히 달리고 있다면 돌아올 길에 대해서도 꼭 생각해야 한다.
가는 길과 오는 길은 다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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