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거리 턱 없애 달라” 36년 전 목숨 던진 김순석 열사…기념관 건립 논의 촉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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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서울화면캡쳐

# “시장님, 왜 저희는 골목골목마다 박힌 식당 문턱에서 허기를 참고 돌아서야 합니까. 왜 저희는 목을 축여줄 한 모금의 물을 마시려고 그놈의 문턱과 싸워야 합니까. 또 우리는 왜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지나는 행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도움을 호소해야만 합니까”

“택시를 잡으려고 온종일을 발버둥치다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읍니다. 휠체어만 눈에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고 마는 빈 택시들과 마주칠 때마다 가슴이 저렸읍니다.”

“장애자들은 사람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대우를 받아도 끝내는 이용당합니다. 조그마한 꿈이라도 이뤄보려고 애써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는 저를 약해지게만 만듭니다.”

-1984년 9월 22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고 김순석 열사 유서 중-

지난 5월 26일 서울특별시 ‘민주주의 서울(democracy.seoul.go.kr)’에 “36년 전 한 장애인의 목숨을 던진 호소에 이제는 시장님이 답을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시민제안이 올라왔다. 장애주류화포럼 김동호 대표의 청원 글이다.

김 대표는 “김순석 기념관과 김순석 동상을 건립해 달라”며 “그의 희생은 마치 노동운동에 있어 전태일 열사와 같다. 그는 우리나라 장애인운동을 여는 횃불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직 그를 제대로 기념하지 못하고, 그의 고결한 외침에 답을 못하고 있다. 시장님께서 이제는 답을 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썼다.

김순석 열사는 36년 전 당시 서울시장 앞으로 ‘서울 거리 턱을 없애 달라’는 편지지 5장의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했다.

김순석 열사는 누구인가

1984년 9월 22일자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김순석 씨는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5살 때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를 절게 됐다. 18세가 되던 1970년에 서울로 올라와 금은세공 공장에서 기술을 배웠고 공장장에도 올랐다. 그러다가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는데 80년 10월 경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중증장애를 갖게 되었다.

ⓒ조선일보

3년 동안의 투병생활을 거쳐 강동구 마천동 월세방 옆에 금은세공 작업장을 마련했고 남대문시장에 머리핀, 브로치 등의 액세서리를 납품하며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주문을 받거나 물건 값을 받으러 4~5일에 한번 꼴로 시내로 가야했고 그때마다 휠체어를 원망했다고 한다.
리어카와 좌판이 가득한 시장 골목에서 휠체어를 몰며 비집고 들어설 때마다 상인들의 모멸과 신경질을 참아야 했다. 어느 날은 공구를 빌리러 나섰다가 횡단보도 턱 때문에 무단횡단을 했다가 경찰단속에 걸려 하룻밤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까짓 신경질과 욕설이야 차라리 살아보려는 저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다져보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지 않는 서울의 거리는 저의 마지막 발버둥조차 꺾어놓았읍니다. 시장님, 을지로의 보도블록은 턱을 없애고 경사지게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밖에는 시내 어느 곳을 다녀도 그놈의 턱과 부딪혀 씨름을 해야 합니다. 또 저 같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화장실은 어디 한군데라도 마련해 주셨습니까.”

검은색 볼펜으로 빽빽하게 채운 유서에는 30여 년 동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살아온 장애인의 ‘희망마저 버릴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서울시, 장애계와 공감대 형성 필요

서울시는 “김순석 기념관 및 동상 건립 건은 그간 서울시가 추진해 온 장애인 관련 사업 등과 같이 장애계와 긴밀한 소통과 범사회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사항”이라며 “사회적으로 고 김순석님의 뜻을 기리고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장애인 당사자 및 단체 등과 함께 소통하고 숙고하여 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시민제안 당사자인 김 대표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서울시가 취지에는 공감했으니 범장애인단체가 중지를 모아, 서울시측과 구체적인 추진방안을 조속히 협의해 나가기를 바란다.”며 “구체적인 방안으로, 서울시가 강서지역에 건립 추진 중으로 알려진 (가칭)어울림장애인센터의 이름을 ‘김순석 기념관’으로 하고, 그 안에 동상을 세우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김순석 열사 등 장애해방열사들을 매년 추모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공동상임대표도 “적극 환영한다. 이 기회에 장애계가 화합해서 준비위원회 구성 등 논의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더인디고 The Indigo]

20년 넘게 과학교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1년간 더인디고 기자로 활동하며 사회적 소수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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