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권력과 거대공룡을 넘어서는 알권리의 선 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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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더인디고 이지은 집필위원

[더인디고=이지은 집필위원]  요즘 대세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예능과 리얼리티 쇼를 결합하여 각종 직업을 체험해 보는 ○○○일 것이다. 거기서 전직 아나운서였던 장성규와 김민아는 직설적인 질문이나 발언을 예상치 못하는 상황에서 과감히 던지는 캐릭터를 설정하여 시청자의 관심과 흥미를 이끌어낸다. 아니, 어쩌면 설정이 아니라 그들의 실제 성향이 프로그램 의도와 잘 맞아서 설정이라는 의혹마저 가시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만히 잘 생각해보면, TV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 틀 안에서만 ‘선 넘기’가 허용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만약 우리가 더 말을 잘 듣고 무한대로 ‘착해지기를’ 요구하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아님, 의사의 권위적인 지식과 발언이 고통을 겪는 환자인 우리의 경험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상황이 유난히 일상적인 그 의료적인 만남에서 우리가 선을 넘어 버린다면?

약 두어 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몸 전체가 돌아가며 무엇이 찌르듯 저릿저릿했고 그게 심할 때면 통증으로 느껴져 아팠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증상이라 당황해하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레 사라져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난 이런 통증을 다루는 의학 분야가 신경과임을 검색하여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대형병원 의사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 신경과의사는 상투적인 질문 몇 개를 던졌고, 혈액검사를 지시했다.

며칠 후, 검사결과에 대해 듣기 위해 다시 종합병원 신경과를 찾았다. 그 신경과 의사는 혈액검사 결과로는 내 통증의 원인을 알 수가 없으나 결과상 내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무 높고, 이는 젊은 나이임에도 언제고 심장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대단한 위험요소이기 때문에 당장 약을 복용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문제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작년 말에 종합검진을 해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내게 중요했던 통증의 원인도 여전히 모르는 채 고작 이 말을 듣자고 검사비로 생돈을 날린 것 같아 허무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뒤로 하고, 난 의사에게 약의 부작용은 없는지 물었고, 그는 “그런 약은 존재하지 않고 근육통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나 득이 실보다 많으므로 콜레스테롤 조절을 위해 내가 그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고만 말했다.

대부분의 순응하는 환자처럼 난 아무 생각 없이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집에 오는 길에 약국에 들러 약을 탔지만 약 봉투에 쓰여 있던 약의 성분과 효과를 읽고서 제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약을 검색하여 약의 부작용과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에 대한 나의 알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엔 (내 콜레스테롤 수치 결과에 대해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의학적인 지식은 있되, 환자를 존중하며 내 앞에 있는 사람의 경험과 세계관에 따라 비의료적인 접근도 충분히 취할 용기가 있는 누군가와 의논을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사람은, (물론 그가 그 정도로 열려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멈추지 않는 기침으로 몇 번 만났던 내과 의사다. 그는 내가 만난 모든 다양한 의사 중에 가장 인격적이었다. 그 의사를 만나러 동네병원에 도착했지만 간호사는 그 의사가 더 이상 거기서 일하지 않으니 그 병원의 다른 의사를 만나라고 했다.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간호사의 충고를 받아들여 다른 의사를 만나 의견을 물었다.

앵무새처럼 들려오는 대답인즉슨,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매우 위험한데 신경과 의사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좋은 약을 처방해 주었으니 약을 잘 먹으라는 것”이었다. 내가 “콜레스테롤 수치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하던데요!”라고 하자, 그는 출처를 물었고, 난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정색을 하며 “약의 효과는 임상적 연구를 통해 다 입증된 것들인데, 하여간 한국 사람들은 의사를 너무 안 믿어서 문제”라고 툴툴거렸다. 이번엔 내가 그에게 “어디 한국 사람들이 의사를 안 믿어서 문제인가요? 너무 잘 믿어서 문제지!”라고 대꾸했다.

(그리고 속으로 ‘누굴 바보로 아나? 어떤 연구였는지에 따라 약의 효과가 입증이 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데 단지 ‘연구’나 ‘임상테스트’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처럼 보이고 싶은 거지!’라고 생각했다.) 도움이 전혀 되지 않은 그 몇 분 사이에 또 진료비를 날리고 집에 들어온 난 유튜브를 통해 기능의학적 접근을 하는 의사를 찾았지만 전화해 물어보니 강남에서 개인병원을 하는 그 의사는 내년 2월에야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발만 동동 구르다가 내가 찾을 수 있는 정보를 통한 최선의 결정을 했다. 즉 신경과 의사가 처방해 준 통증완화 약도 콜레스테롤 약도 먹지 않으리라는 것.

지금도 미약하게나마 몸의 통증은 계속되고 있으며, 난 여전히 비의료적인 접근을 하는 ‘전문가’를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설상 그런 도움을 찾을 수 없다고 할지라도 콜레스테롤 수치에 대한 것은 좀 더 장기전으로 공부하면서 제약회사의 평생 소비자가 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으로 내게 이해가 되는 ‘건강성’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내가 보유하고 있는 영미서적 중에도 ‘거대공룡’이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일컬어지는 제약회사의 다양한 마케팅 수법과 의사들의 이해관계에 대해 저술된 것들이 있었다. 심지어는 콜레스테롤 약에 대한 챕터도 있었다. 또, 인터넷을 검색하니 한국어로 출판된 ‘콜레스테롤 수치에 속지 마라’는 책도 있어 주문하여 읽기 시작했다.

난 목숨이 당장 위태로워서 누가 무슨 조치를 해 주어야 숨을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이상, 내 몸에 화학적인 무엇을 집어넣을지 말지를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나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삶의 경험과 맥락에선 내가 알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중요했다. 또 의사가 날 위한 최선의 결정을 한다고 가정하고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닌, 오히려 의사가 다양한 방식의 설명과 치료책을 제공하고 내가 삶의 시각에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접근을 취하도록 돕는 것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작은 삶의 사건을 통해 또다시 깨닫게 된 것은 불충분하게 주어지는 정보, 의사-환자 관계에서 힘의 불균등, 의사들을 교육시키는 제약회사의 슬기로운(?) 마케팅전략, 그리고 환자들의 두려움을 조장하여 제약회사의 약을 팔아주는 의사들의 눈물겨운 노력, 더 나아가서는 대안적인 접근을 취하는 의사들의 부재 속에서 나의 알 권리를 비롯하여 더 나은 몸의 상태가 되기 위해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최선의 방책을 찾을 권리는 행사하기가 어려웠다. 권리 행사는커녕, 순응적인 환자만을 기대하는 의사 앞에서 내 목소리를 내고 질문을 제기하는 것조차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의사가 환자의 인권을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소리인가. 온갖 사회적 지위와 특권을 가진 입장에서 이해하는 “전 당신(환자 분)의 처지를 공감합니다”는 단순히 논리적 비약인 것을! 일반 의료계가 이럴진대, 편견과 온정주의로 얼룩진 정신의학과 의사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정신보건 서비스를 받는 입장이 어떤 것인지를 ‘환자’의 입장에서 들어보고, 배우고자 할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아는 분의 페이스북 글에 따르면 착한 목사들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교회를 망친 자들이 목사라면 그들이 교회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고 평범한 성도들이 그 일을 앞장서서 해야 한다. 정신보건 시스템 개혁에서 ‘조력자’로 힘을 실어 줄 정신보건 전문가들은 필요하지만 그들이 만들었고 이득을 보고 있는 이러한 환경에서 그들은 결코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TV 프로그램의 안전한 선 넘기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대신에, 난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위험한 선 넘기를 거침없이 해도 안전한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 의료 권력과 마주함에 있어서 이 땅의 더 많은 장성규와 김민아가 등장하여 자신들의 알 권리를 주장하며 판을 바꾸길 간절히 희망한다. 그게 바로 내가 오늘도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앉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캐나다 위니펙 대학에서 유일무이하게 ‘정신의학 생존자 운동과 정신보건 시스템의 개혁’을 주제로 전공을 만들었고, 토론토 대학에서 Equity Studies로 교육학 석사를 마쳤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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